침략자 일본을 향한 저항의식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28년 전인 1896년 3월 9일, 백범 김구(1876~1949, 향년 72세)가 칼로 무장한 일본군인을 처단한 ‘치하포 의거’가 발생했다.
치하포 의거는 백범 김구가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서 일본 군인 스치다 조스케(출생연도 미상~1896)를 타살한 일을 말한다.
당시 시대 상황은 일제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조선을 향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1895년 10월 8일 민비(1851~1895, 향년 43세)를 시해한 을미사변을 시작으로 1895년 12월 30일 단발령 공포,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사건들로 조선 백성들은 일제를 향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이에 김구 선생은 치하포에서 칼을 찬 일본군인 스치다를 처단한다. 이후 김구 선생은 “스치다를 조선인으로 위장한 일본 육군 장교로 판단해 타살했다”라는 내용과 자신의 거주지와 성명을 기재한 포고문을 썼다.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를 보면, 스치다는 조선말을 쓰며, 흰 두루마기 밑으로 칼집을 숨기고 있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일본영사관에 의해 체포되고 진술 과정에서 “국모의 원수에 대한 복수를 하고 나라의 수치를 조금이나마 씻고자 스치다를 돌로 쳐 넘어뜨리고 칼을 빼앗아 죽였다”라고 주장했다.
치하포 의거는 당시 조선을 식민지화 하려는 일제를 향한 조선인의 반일감정과 투쟁의식을 보여줬다.
또 국모(민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건 김구 선생의 의거는 침략자 일제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저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