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의 전설
신라 예술의 극치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252년 전인 772년 1월 27일,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는 성덕대왕신종이 탄생했다.

성덕대왕신종은 남북국시대 때 만들어진 통일신라의 종으로, 경덕왕(~765)이 아버지인 성덕왕(~737)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주조를 시작해 혜공왕(758~780, 향년 21세) 때인 771년에 완성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위치한 에밀레종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국립경주박물관에 위치한 에밀레종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종의 높이는 3.75m, 지름은 2.27m다. 무게는 약 19톤이다. 2008년 전까지 한국 최대 종이었지만,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에 위치한 세계평화의종공원에 '세계평화의 종'이 들어서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성덕대왕신종이 만들어졌을 때는 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시기였다. 종소리뿐만 아니라 화려한 문양과 조각 수법은 시대를 대표했다.

종의 맨 윗부분에는 종을 매어 달 수 있게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용의 모습을 한 고리)가 용머리 모양으로 웅대하게 위치한다.

종의 어깨 부분에는 여덟가지 음을 상징하는 여덟 송이의 연꽃무늬가 있다. 이 연꽃은 보상화라고도 부르는데, 보상화는 극락정토에 피는 상상 속의 꽃을 일컫는다.

종의 어깨 밑에는 네 곳에 대칭으로 네모꼴의 연곽이 있다. 그리고 연곽 안에는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이 새겨져 있다.

몸체 앞면, 뒷면 두 곳에는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종에 새겨진 글씨(종명)에는 종의 내력이 담겨 있다. 때문에 성덕대왕신종은 신라의 종교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자 자료로 평가받는다.

에밀레종의 전설 

봉덕사(신라 수도 경주에 있던 사찰)에서 종을 만드는 일이 계속 실패하여 걱정이 많았다. 그때 한 승려가 민가를 돌며 재물이나 쇠붙이를 보시 받으러 다니다가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아낙을 만났다.

승려가 시주를 청하자, 아낙은 집안이 가난하여 시주할 것이 없으니 어린아이라도 가져가라고고 농을 했고 승려는 그냥 돌아갔다.

주종 작업에 계속 실패를 거듭하자, 아이를 바쳐야 종을 만들 수 있다는 계시가 있었다.

승려는 다시 그 아낙의 집을 찾아 아이를 데리고 와 쇳물에 넣었다. 마침내 종이 완성되었는데, 종을 치면 그 아이의 원혼 때문에 ‘에밀레’ 하고 소리가 났다.

이 설화는 신성한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설화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부처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종을 주조하는데,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기본 교리와 상충해 논란이 있다.

설화는 신성한 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큰 희생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주종 사업에 따른 백성들의 원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달리, 1998년 종 성분을 분석해 보니 인체 성분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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