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미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

얼마 전 KBO 한국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LG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LG팬들뿐만 아니라 모든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신문에서는 그동안 ‘꼴쥐’ ‘헬(hell)쥐’란 비아냥을 들었던 LG트윈스의 우승 비결을 대서특필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중 한 언론에서는 각별한 야구 사랑과 고객 중심, 미래투자라는 키워드를 뽑아냈다.

이렇게 기쁜 일이 국회에서도 있었다. 지난 11월 9일이다. 20년간 국회 캐비닛에 잠들어 있던 ‘노란봉투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입법까지 참 오래 걸린 이 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지키는 아주 최소한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건의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렵게 통과된 법안은 도루묵이 되어 버릴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다시 통과 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을 기억한다면, 20년 만에 빛을 본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노사관계에 적용하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3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서 일하던 노동자가 부당 해고를 당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 대표가 부당해고에 대해 책임이 있는 ‘진짜 사장’이라는 법원 판결을 받는 데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법원 판결 이후에도 다른 회사라고 발뺌하며 현대중공업이 교섭에 나오지 않은 기간은 더 길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3년이나 된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받았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진짜 사장과 교섭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로 사용자 범위가 확대 돼 원청 사장과 하청업체 노동자 간 직접 교섭이 가능해진 길이 열린 것이다.

또한 쌍용자동차 노조의 경우는 2009년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47억원이라는 손해배상 청구 폭탄을 맞았다. 그 후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대법원이 최종 파기 환송하는 데 13년이나 걸렸다. 이 시간 동안 고통 받으며 죽어간 노동자와 그 가족만 30여명에 달한다.

전에는 노동자가 단체협약 미이행, 노동법 위반, 정리해고 반대 등을 이유로 단체행동권에 해당하는 파업을 하면 불법에 해당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발효되면 이제 합법 파업으로 인정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해당하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이젠 법이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발효되면 쌍용차, 현대차 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등의 사례를 통해 보았듯 부당한 일을 당해도 손해배상 청구 폭탄 때문에 말 한마디 못했던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가 가능해지고, 손배 폭탄도 막을 수 있다.

민주노총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국민의 생각과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11월 16일 국민 1013명에게 전화면접조사(CATI)를 실시했다. 그 결과 “노동조합법 2조 개정 필요했다”는 의견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의견 보다 5배 이상(필요했다 77.4% | 필요하지 않았다 14.4% | 모름.무응답 8.1%) 높게 나타났다.

또한 “노란봉투법 개정 필요했다”는 의견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의견 보다 3배 이상(필요했다 69.4% | 필요하지 않았다 22.1% | 모름·무응답 8.5%) 높게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의 거부권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적절하다"는 의견 보다 2배 이상(부적절하다 | 63.4% / 적절하다 : 28.6% | 모름·무응답 8.0%)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국민 다수가 노란봉투법은 꼭 필요하고 대통령의 거부권은 부적절 하다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법원에서도 노란봉투법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에 하청택배노동자들과 직접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쌍용차, 현대차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렸다.

또한, 1953년 제정된 노동조합법은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제정됐고 70년간 유지된 시대와 동떨어진 낡은 법이다. 이젠 특수고용, 간접고용 등 다변화된 고용형태을 고려해 사용자와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정의가 법에 담겨야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노란봉투법은 국제 협약에도 부합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이 2022년 4월부터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는 것으로 발효됐다. 이 협약 이행을 위해 국회는 의무를 다했고, 이젠 정부의 의무 이행만 남았다.

지난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5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무려 53년이 넘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현실은 53년 전 상황과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옳다’라는 말만 하지 말라. 시대에 역행하고 입법부의 권한을 무시하는 거부권 행사를 접고 국민과 국회와 시대의 명에 따라 노란봉투법 시행을 바로 천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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