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120호 발간 기념 학술심포지엄
디지털 자본주의 성장‥값싼 노동력 낳아
디지털 자본 '노동을 수치화·비교' 경쟁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 노동자 희생 증가
나인투파이브 2년 싱글맘 대장암 사망

인천투데이=염은빈 기자│자본주의는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 입어 디지털 자본주의로 성장했다. 성장 이면에 전 보다 더 확대 된 노동 소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새얼문화재단은 8일 황해문화 120호 발간을 기념해 인하대에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 주제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다중재난 시대의 새로운 길찾기’였다.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다.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1부 세션 주제는 ‘다중재난을 어떻게 볼 것 인가’이며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가 '디지털 자본주의와 노동'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관욱 교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의미를 설명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디지털 자본주의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전 보다 더 확대 재생된 자본주의 체제를 뜻한다.

"디지털 인프라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야해"

김 교수는 “우리는 일상에서 각종 디지털 인프라에 의존하며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클릭 한 번으로 편리하게 극복하고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손안에 가져다준 편리함을 사용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뿐 사유(思惟)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0년 10월 택배기사가 갑작스런 흉통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022년 2월에는 어느 유투버가 ‘사이버 렉카’라고 불리는 악성 댓글에 힘들어 하다 극단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디지털이 변화시킨 우리 사회는 편리와 효율이라는 단순한 말로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앞서 (다른 발표자들이) 발표한 기후위기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심각한 세계 문제가 펼쳐지고 있지만, 손 안의 편리함에 익숙한 나머지 일상의 디지털 노동 문제까지 고민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자본주의 성장...값싼 노동력 낳아

김관욱 교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상징은 플랫폼이다. 디지털 자본주의 속에서 기업은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시장 생태계를 확장하며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며 “플랫폼은 더 많은 가입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 플랫폼은 노동 양식에 따라 호출형(대리운전, 음식 배달 등), 관리형(가사, 청소, 컴퓨터 출장 수리), 중개형(디자인, 번역, 문서작성), 전시형(유튜브, 웹툰, 웹소설 등), 미세작업형(자료 수집, 검수와 검증) 등으로 구분한다”며 “국내 플랫폼 노동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2%에 그치지만 앞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 현대 사회는 디지털 자본주의가 장악할 것”이라고 주창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은 고용 형태 변화를 넘어 노동 통제 양식까지 변화시켰다. 알고리즘 방식의 통치는 모든 노동 과정과 결과를 수치화 시켜 이것을 가시적으로 비교해 경쟁 양상을 만든다”며 “지능형 첨단 기술의 등장이 노동을 대체하기 보다는 고용 없는 질 낮은 일자리의 확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변화된 노동 시장 모습이 국제노동 연구자 휴즈의 ‘로그노동’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어 단어 log(로그)에서 차용한 로그노동은 디지털 자본주의 노동의 특징을 보여준다.

로그노동의 의미는 ▲노동자가 표준화된 업무에 통나무 잘려나가듯 파편화 돼 있고 ▲지속적으로 고용주와 고객에게 감시·기록 당하고 있으며 ▲디지털 플랫폼에 항상 연결(로그인, 로그아웃) 돼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노동자는 통나무처럼 쪼개진 업무에 홀로 배치되고 실시간으로 고용주에게 감시받으며 항상 웹에 접속해 대기해야 한다.

1부 세션 발제를 마치고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소  소장이 토론하는 모습이다(사진제공 황해문화)
1부 세션 발제를 마치고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소  소장이 토론하는 모습이다(사진제공 황해문화)

과로자살...사회의 불안정한 노동 현실 나타내

김 교수는 “디지털 자본주의로 발생한 많은 이윤을 노동자에게 알맞게 배분해야 하는데,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준 것보다 적게 돌려줘야 한다. 따라서 기업은 자본 축적을 위해 디지털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창출한 성과를 그 노동력에 알맞는 만큼의 임금으로 보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통신기술이 사회를 변화시켰지만 노동자 계급의 삶의 지위는 변화하지 않았다”며 “배송 기사는 택배 배달 차량에 GPS 추적 장치를 달아 7분 이상 정차하면 기사에게 전화를 하거나, 콜센터 상담사가 4분 이상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하는 등 디지털 기술이 개입된 새로운 노동 감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자 1인당 생산 속도를 측정해 실적이 낮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는 등 수치와 모욕감을 준다”고 덧붙였다.

김교수는 “노동이 디지털화 되며 노동의 가치가 숫자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의 디지털화는 성과 중심 체제로 이어지고 분ㆍ초 단위까지 노동자를 압박한다. 착취에 의존한 경쟁이 불안정노동으로 존재하며, 노동자의 고통은 과로자살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디지털 노동자들의 과로자살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해답은 ‘생체 정보의 디지털화’이다. 실시간으로 디지털 처리되는 생체 정보는 쓰러지기 직전에 신호를 주고 경고한다”며 “그런데 노동자의 생체 정보가 모여 하나의 빅데이터가 되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애초에 쓰러질 위험이 있는 디지털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 다시 디지털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긴장'과 '모욕'을 겪는 디지털 노동자들 

김 교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성장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희망’일지 그 속에서 노동자가 경험하는 ‘모욕’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친절한 콜센터 상담사를 요구했지만 오늘날은 전체 통화량의 빠른 순환을 위한 감정 ‘없는’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며 “전체 통화량은 이익의 지표이기 때문에, 상담사들은 수치에 대한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없고 수치가 떨어지면 공개적으로 망신과 모욕을 당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의사소통을 넘어 감정의 언어로

김 교수는 콜센터 내 '미진행'이라는 시스템을 설명하며 디지털 자본주의 이면에 심각한 노동소외 문제를 폭로했다.

미진행 시스템은 '나인투식스(9시 출근 6시 퇴근 체제)'가 아닌 '나인투파이브(9시 출근 5시 퇴근 체제)' 일하는 노동 형태다. 점심시간 없이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방식이다. 하루 1회 10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에 화장실에 가거나 간식을 먹는다.

한 시간이라도 일찍 퇴근하려고 많은 이들이 이 조건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만, 양육 등 어쩔 수 없이 이 노동 조건을 선택하는 노동자도 있다.

김관욱 교수는 "한 콜센터의 싱글맘 노동자는 혼자 있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미진행을 선택했다. 아이 혼자 저녁을 먹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려 그랬다. 그리고 2년 뒤 대장암 말기로 숨졌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극도의 긴장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나타난 결과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렇게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지금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보살펴야 할 이유를 찾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법과 제도보다도 타인을 공감하지 않는다. 서구에서 발생하는 묻지마 총기살인과 자살을 보고 있으면 인류가 절망에 빠진것처럼 보인다”고 통곡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 자본주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서로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를 하다보면 막막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는다고 한다. 오늘 심포지엄에 참석한 여러분도 ‘뭐라도 하고 싶다’는 의지로 모였다고 생각한다”며 발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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