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67)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 정책에 따라 1도 1사를 전제로 하는 언론통폐합이 실시되고, 경기도에는 경기일보, 경기매일신문, 연합신문이 통폐합돼 경기신문이 창간됐다.

경기신문은 주간인천을 모태로 탄생한 인천신문이 군사 정권의 탄압으로 인천에서 수원으로 본사를 옮겨가며 제호를 바꾼 연합신문이 주도적으로 창간했다.

허합의 인천신문은 1968년 8월 15일에 경기연합일보로 제호를 바꿨고, 곧이어 허합은 정치적 탄압을 받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1969년 2월 7일에 불이무역의 이현수가 경기연합일보를 인수해 사장으로 취임했다. 경기연합일보는 인천을 떠나서 1969년 4월 28일에 수원으로 본사를 옮겨갔다. 그리고 1970년 10월 1일에는 연합신문으로 다시 제호를 바꿨다.

이현수는 수원출신 국회의원이던 이병희와 관계를 맺고 신문사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연합일보는 이현수가 인수하자마자 곧 수원으로 본사를 옮겨갔는데, 그 배경에는 이병희가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병희는 1926년 8월 1일 용인에서 태어나서 수원에서 국회의원으로 7선을 했다. 육군사관학교 8기로 김종필과 동기이다. 경기일보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류승원도 같은 육사 8기 출신이고 쿠데타 세력이었으니, 서로 묘한 인연이다.

이병희는 5.16 군사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육사 동기인 김종필이 중앙정보부장이 되자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으로 부임했다.

대령으로 예편한 후, 수원에서 민주공화당으로 6대에서 10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후 부정축재자로 몰려 정치 규제를 당했다.

여러 측면에서 인천의 류승원과 겹치는 이력이다. 규제가 풀린 후 수원에서 13대와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총 7선을 했는데, 수원의 최다선 국회의원이다.

경기매일신문 사옥의 모습.
경기매일신문 사옥의 모습.

이병희는 6대 국회의원 시절 삭발까지 하며 서울 광화문에 있던 경기도청을 수원으로 이전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경기도청 이전의 유력한 후보지는 당시 경기도 최대 도시였던 인천이었으나, 수원으로 이전이 결정된 것은 이병희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인천과 비교할 수 없는 시세였던 수원으로 경기도청이 이전하게 된 것은 정치적 배경이 없었다면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막후에 이병희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추론은 설득력이 있다. 언론통폐합도 같은 맥락에서 수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또한 합리적인 추론이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김종필과 육사 동기로서 정치적 실세였던 이병희가 수원에도 언론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따라서 경기연합일보를 인수해 수원으로 본사를 옮기게 만든 장본인이었다는 견해는 많은 인천인들이 정설로 인정하고 있는 견해이다.

인구로 보나, 경제적 위상으로 보나, 당시에 인천에 본사를 둔 신문사가 수원으로 본사를 옮겨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허합 사장이 물러난 후, 경기연합일보를 인수한 불이무역이 급하게 수원으로 본사를 옮겨간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그 원인을 정치적 배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수원으로 본사를 이전한 경기연합일보는 1970년 10월 1일부로 제호를 다시 연합신문으로 바꾸고, 사장으로 홍대건이 취임한다.

그리고 1972년 박정희 정권은 전국의 언론사를 통폐합했고, 1도 1사의 원칙에 따라 경기도에서는 인천에 위치한 경기일보, 경기매일신문, 그리고 인천에서 본사를 수원으로 옮겨간 연합신문의 3개 언론사가 통합해 경기신문이 창간됐다.

통합 과정은 연합신문이 주도하였고 결국 3개사가 통합해 창간된 경기신문의 본사는 수원으로 결정됐다.

경기연합신문이 갑자기 수원으로 본사를 옮겨간 과정이나, 통폐합 과정에서 수원의 연합신문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보면 경기도의 언론통폐합은 처음부터 수원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천 언론계였지만, 인천에 본사를 둔 신문사가 한 곳도 존재하는 않는 암울한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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