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56)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한국전쟁이 발발할 당시 한국 언론의 취재 환경이 열악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외신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엉터리 기사가 지속됐기에 언론이 기본 책무를 방기했다는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이 발달한 작금의 언론 환경은 많이 변화했지만, 철저한 사실 확인에 기반을 둬 기사를 작성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언론의 원칙이 아직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한국 언론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국방군사연구소(당시 전사편찬위원회)가 1987년 발간한 ‘한국전쟁’에서는 당시 언론의 보도 태도가 그렇게 터무니없었던 것에 대한 해석으로 민심 안정을 꼽았다. 즉 당시 언론사들이 민심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보도를 했기 때문에 실제 전황과 동떨어진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옹진반도에 배치됐던 제17연대가 26일에 인천으로 철수했음에도, 17연대가 해주로 진입했다는 허위 보도가 지속된 것에 대한 변명인데, 민심 안정을 내세운 결과 대다수 국민들은 전세가 유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아 큰 피해를 입게 됐으니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언론의 허위보도는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1차 피해를 줬을 뿐 아니라, 이런 기사를 토대로 남측이 북침을 먼저 시도했다고 북측이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추가적 피해도 불러왔다. 언론의 허위 보도가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인도교의 모습.(출처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한강인도교의 모습.(출처 전쟁기념관)

6월 28일에도 언론의 허위‧축소 보도는 지속됐는데, 국군이 의정부를 탈환했다는 허위기사를 각 신문은 보도했다. 이미 27일 저녁에 북측 군인이 서울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고, 28일 새벽에 저지선이 무너지자 남측 군인은 새벽 2시 30분에 한강대교를 폭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8일자 신문은 여전히 남측 군인이 북측 군인을 퇴치하고 미국 공군의 원조로 패주하는 적을 맹추격 중에 있다는 보도를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에 맥아더 사령부의 지시로 미국 신예 전투기 P-38, P-51가 투입됐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수많은 국민들의 퇴로를 차단하여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게 된 한강다리 폭파가 이미 28일 새벽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28일자 한국 신문의 기사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자체적인 사실 확인 보도도, 전황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도 전혀 부재했고, 그저 정부 발표를 그대로 인용해 허위 사실을 전달했던 국내 언론과 비교했을 때, 해외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됐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언론은 한국 전쟁의 발발을 비중 있게 다뤘으며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6월 25일자 1면에 ‘북한군이 남침을 해 전쟁이 시작됐다’는 기사를 실었다. 하루 뒤인 26일에는 한국전쟁 관련 기사 32건을 게재했는데, 당일 한국 신문이 전쟁 관련 보도 비중이 고작 30%였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확한 사실 보도와는 별개로, 한국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심층 분석기사는 특히 돋보인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전쟁의 본질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정확하게 짚는 기사로 언론이 갖춰야 할 통찰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측의 배후에 소련이 있으며 한국전쟁의 핵심은 냉전을 유지하던 소련과 서방과의 세력 갈등이라는 것을 짚어내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 지도자들이 더욱 대담하게 동남아시아를 차지하려고 시도할 것이며, 만일 서방이 침략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면 공산주의 침공을 좌절시킬 뿐 아니라 아시아와 터키, 이란, 유고 등과 같은 주요 지역에서 반공산주의 정신과 저항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판단한 통찰력 있는 기사이다.

<뉴욕타임스>는 27일자 신문에 한국전쟁 기사 31건을 다뤘으며, 28일과 29일에 한국전쟁 관련 각 32건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하루에 30여건이 넘는 기사를 며칠 동안 계속 양산한 것인데, 이는 약 10개면을 할애한 분량의 기사였고 한국전쟁의 의미와 중요성을 적절하게 인지하고 중요하게 다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련이 47년부터 간첩을 통해 한반도의 지도를 작성하는 등 한국전쟁을 미리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는 분석기사도 내보냈다.

일본 언론도 한국전쟁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 <아사히신문>은 6월 26일자 1면에 ‘북한, 한국에 선전포고/서울 위기임박/침입군 임진강 돌파’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 기사에 ‘북한군은 25일 밤에 서울 북방 40km 지점 포천까지 진출했으며, 북한 공군기가 포항상공까지 날아왔고, 북한 선박이 포항 지역에 상륙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외국 언론이 비교적 정확한 전황을 바탕으로 심층 분석기사와 전쟁의 배후, 그리고 전쟁의 성격에 대한 분석까지 치밀하게 보도한 것에 비해, 한국 언론의 보도는 비교대상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당시 미국이나 일본의 정보력과 비교했을 때 한국 언론의 상황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피난민이 몰려들고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상황에서도 정부 발표에 따른 허위 보도를 이어갔다는 것은 기본적인 언론의 정도를 지키지 못했거나, 혹은 그릇된 언론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시 언론이 민심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판단해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면, 이는 한국 언론의 통찰력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에 기반을 둔 기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통찰에 기반을 둔 분석과 해석도 매우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다. 통찰력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 언론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질 중 하나이기에 그저 아쉽기만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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