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55)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한국전쟁은 해방 직후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다. 일본의 압제와 수탈에서 해방돼 국가의 기틀을 잡으려는 시점에 일어난 전쟁은 국내 곳곳을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신생 독립국가의 인프라와 산업 기반을 초토화 시킨 재앙이었다. 일제에 의해 35년간 지배 받으며 수탈당해 가뜩이나 허약해진 국력이었는데, 해방되자 또 다른 외세인 미국과 구소련(러시아)가 벌인 이념 전쟁에 의해 국토가 반분되고 극심한 좌우 갈등을 빚으며 혼란을 겪게 됐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해방 직후 벌어진 이념적 갈등은 결국 남북 간 전쟁으로 이어졌고, 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렵게 오래 지속되는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종전선언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휴전 상태가 오래 지속하다보니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에 종전선언을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쟁은 사회 모든 곳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언론의 역할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역사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필연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적절한 대처를 촉구했어야 할 언론의 역할이 부재했다는 것도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전쟁의 조짐은 이미 전쟁 발발 이전부터 널려있었다. 38선에는 남북 간 무력 충돌이 잦았고 이승만은 공공연하게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등 북측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은 일반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적 측면은 있었겠지만 현실을 전혀 무시한 허황된 주장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된 철로의 모습.(출처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된 철로의 모습.(출처 전쟁기념관)

당시 남측의 군사력은 북측과 비교해 턱없이 열세였지만,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언론은 없었다. 전쟁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사회 분위기가 전혀 조성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언론의 안일한 보도 행태가 초래한 측면이 크다고 보겠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직후에 이뤄진 국내 언론의 보도는 엉망이었다. 특히 외국 언론과 비교했을 때 국내 언론의 보도는 언론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쟁 발발을 최초로 보도한 언론은 외국 언론인 UP통신이었다.

UP통신은 25일 오전 9시 50분에 북측이 전 경계선에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남측 1사단 사령부가 소재해있던 개성시가 9시에 함락됐고 춘천에서도 북측 전차대가 출현했다고 보도했다. UP통신의 제1보는 당시 주한 미대사가 본국에 보낸 보고보다 앞섰다고 했다.

반면 국내 언론은 6월 26일자 신문에 전쟁 발발 기사를 1면에 실었으나, 그 비중이 크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경우 6월 26일자 1면 기사의 30% 정도가 전쟁 발발 관련 기사였고, 다른 내용의 기사들 비중이 컸다. 사설도 백범 1주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는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발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 관련 내용도 6월 25일 정오에 이선근 국방부 정훈국장이 발표한 담화를 검증 없이 다룬 것에 불과했다.

담화의 내용은 ‘북한이 25일 아침 5~8시 사이에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남침을 시작했지만, 우리 군이 이를 격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담화가 발표된 시점에는 이미 개성이 함락됐던 시점이기에 결과적으로 담화 내용을 검증 없이 받아쓴 언론은 결과적으로 터무니없는 오보를 한 것이었다.

6월 27일부터는 전쟁관련 기사가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전쟁이 심각하게 다뤄지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사실과는 동떨어진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국방부가 발표한 허위 내용을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한 결과였다.

<동아일보>는 27일 1면 ‘국군 정예 북상 총반격전 전개’라는 헤드라인 밑으로 국군이 해주시를 완전 점령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도 ‘국군 일부 해주 돌입/적 사살 1580명, 전차 등 격파 58대’라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도 거의 동일한 보도를 했다. 26일 이미 북측 군인이 의정부를 점령하고 피란민들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27일자 기사에는 국방부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될 정도로 전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언론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보도를 했고, 이는 당시 다수 서울시민들이 피란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만들었다.

물론 정부가 허위 발표를 지속적으로 한 것이 근본적 원인이었지만,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던 언론의 책임은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언론의 취재 환경이 열악했다고는 하지만, 일개 외신 기자가 진즉에 파악한 사실을 전쟁 발발 며칠이 지나도록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정부 발표를 받아쓰기만 했던 언론의 무능은 한심하기만 하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기술과 환경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현재도 유독 한국 언론의 행보는 당시와 비교해서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보이니 유감스러운 일이다. 과거 언론은 열악한 환경이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작금에는 언론의 의도된 오보를 의심해야 하는 지경이니, 이것은 오히려 퇴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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