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㉝ 동구 ‘제일기름집’
홀로 4남매 대학 뒷바라지한 어머니 가게 이어받아
“어머니가 45년 지켜온 철칙으로 정직하게 가게 운영”
“지금처럼 손님 신뢰 잃지 않고 가게 운영하고 싶어”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인천 동구엔 듣기만 해도 고소한 참기름과 들기름을 팔면서 동네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인천 동구 화수동 266-64에 위치한 ‘제일기름집’이다.

제일기름집은 51년 째 동구 화수동 골목길을 지키고 있다. 고 류옥년 씨가 1972년 4월에 시작한 가게를 딸인 이인숙(56) 씨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인천투데이>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제일기름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숙 씨를 지난 3월 23일 인터뷰했다. 이 씨는 남편 은종인(56)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인숙 씨(왼쪽)와 남편 은종인 씨.
이인숙 씨(왼쪽)와 남편 은종인 씨.

기름집 운영하면서 4남매 대학 뒷바라지 한 어머니

류 씨는 서민들이 많이 사는 동구 화수동 골목길에 제일기름집을 차렸다. 주로 동네 사람이 방문해 기름을 사갔고, 근처 동일방직에 다니는 노동자도 퇴근길에 박카스병에 든 참기름을 사갔다.

이 씨는 “우리 가게에 오는 동일방직 노동자는 돈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참기름이나 깨소금을 하루 먹을 만큼 소량으로 팔았다”며 “고깔모양으로 접은 종이에 깨소금을 넣어 팔았다. 또, 당시엔 기름병의 규격이 정해지지 않아 기름을 소주병에 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름집이 바빠지면서 아버지가 인천제철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왔다. 그리고 참기름뿐 아니라 석유도 팔고, 고추도 빻으면서 가게 4칸을 운영했다”며 “그러다 아버지가 1987년에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혼자 가게를 운영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다”고 부연했다.

이 씨는 어머니 류 씨가 홀로 기름집을 운영하면서 4남매를 4년제 대학까지 졸업시킨 대단한 분이라고 존경심을 표했다.

이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오빠는 군인, 셋째는 고등학교 3학년, 막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내가 휴학하고 어머니를 도와야하나 고민했지만 어머니는 대학 공부를 마치라고 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겨울철 석유장사를 접고, 떡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돈을 벌어야 자식을 키울 수 있기에 겨울에도 놀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는 7남매 종갓집 종손며느리로서 1년에 제사 13번을 지냈고, 친척들을 챙겨야했다. 정말 뼈가 부서지게 일했다”며 “그러면서도 가게 문여는 시간과 문닫는 시간을 어기지 않으며 손님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정말 대단하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헌신한 것에 대해 상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된다” 말했다.

제일기름집.
제일기름집.

“어머니가 45년 간 지켜온 철칙으로 정직하게 가게 운영”

이 씨는 4남매 중 유일한 딸로서 어머니와 자주 통화하면서 가게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애정이 담긴 가게를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이 씨는 “어머니가 기력이 떨어져 힘들어하면서도 가게를 없애면 안 될 것 같다고 넌지시 말했다”며 “제일기름집은 어머니가 애정을 가지고 한평생 가꾼 인생의 전부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해 원래 하던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함께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어머니의 철칙을 물려받아 정직하게 장사하고 있다. 철칙은 최소 마진을 남기더라도 좋은 재료로 손님들과 신뢰를 지키는 것이다. 또, 가게 문도 매일 아침 7시에 열고 있다.

이 씨는 “어머니의 장사 철칙은 ‘정직’이었다. 손님들은 어머니를 말은 별로 없지만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며 “재료는 무조건 신선하고 좋은 것을 쓰고, 기름을 짜면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손님에게 줬다. 어머니가 가게를 물려줄 때 최소 마진을 남기더라도 재료만큼은 제일 좋은 것을 써야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서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고 철칙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산과 중국산 깨 모두 가격이 울랐다. 기존에 거래하던 국내 참깨 생산자 분들이 나이가 들다보니 깨농사를 안 짓기도 한다”며 "좋은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마진을 적게 남기더라도 좋은 재료를 찾아서 쓴다. 참기름 1병 팔면 200~300원 마진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제일기름집에 손님이 찾아온 모습.
제일기름집에 손님이 찾아온 모습.

‘제일기름집’ 못 잊어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들

이 씨는 어머니가 운영했을 때 찾아오던 단골들이 멀리 이사가서도 제일기름집을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코로나19 이전엔 가게 앞에 의자 10개가 있어서 이웃과 손님들이 모여 함께 얘기하고 교감하는 재미도 있었다. 제일 기름집이 동네사랑방 역할을 한 셈이다”며 “여기 살다가 송도, 서울 등 각지로 이사간 단골 손님들은 계속 찾아온다. 90살이 다된 손님도 우리 기름이 아니면 안 먹는다며 지팡이를 짚고 온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손님들이 멀리서 오면서 귀한 것을 가져와 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며 “이는 어머니가 여러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골고루 사랑을 나눠줬기 때문인 것 같다.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존경한다. 어머니처럼만 성실하고, 진실하고, 멋지게 살다가자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지금 제일기름집을 운영하며 손님들과 교감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이 씨는 “50년 동안 청소년 공부를 가르치면서 지내다가 나이많은 손님을 만나니까 처음엔 적응이 안됐다. 지금은 어른들과 있으면서 사랑을 주고 받으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행복하다”며 “좋은 곳에서 좋은 옷, 좋은 가방보다 사람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면서 사는 게 좋다. 그래서 지금 삶에 만족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제일기름집 옛 간판 앞에서 이인숙 씨가 가게 허가증을 들고 있다.

“지금 이대로 손님 신뢰 잃지 않고 가게 운영하고 싶어”

이 씨는 제일기름집을 운영하는 동네가 재개발될 예정이지만, 힘 닿는 데까지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이 씨는 “지금 이대로 정직하게 손님들의 신뢰를 잃지 않고 가게를 운영하는 게 목표다. 멀리서 오는 손님이 계속 찾아오는 동안 가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가 재개발 될 예정인데 조금 더 가게를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대로가 너무 좋다. 가게를 이전해야한다면 갈 데가 없다”며 “사람들이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 동네를 국가차원에서 지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많은 동네 화수동의 모습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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