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45)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보수 성향의 언론으로 오랜 시간 메이저 언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편향적인 정치 성향으로 종종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심치 않게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언론으로서의 공정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제의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또한 자의건 타의건 일제에 부역한 역사도 갖고 있는 신문이다. 두 신문이 해방 이후 자리를 잡는 과정을 보면, 현재 이 신문이 보여주는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방이 되고 난 직후,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정은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공식적 입장과는 달리 좌파 언론을 탄압하고 우파 언론에 특혜를 주고 육성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이런 미군정의 정책에 혜택을 입은 대표적 언론이다.

조선일보는 1945년 11월 23일에 속간됐는데, 속간사에 “우리 조선일보는 군정청의 우호적 지지와 이해 있는 알선에 의하여 오늘부터 재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동아일보도 1945년 12월 1일에 속간됐는데, “군정 당국의 호의로 경성일보사의 일부 시설을 이용케 되어 속간을 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인쇄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속간이 늦어졌던 두 신문이 미군정의 도움으로 다시 발간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건이다. 미군정이 두 신문에 호의적이었고 시혜를 베풀었던 이유는 물론 두 신문이 우파 신문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사주인 김성수, 사장인 송진우가 우파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인 한민당의 핵심 인물이었던 관계로 사실상 한민당의 기관지와 같은 신문이었다.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는 한민당의 수석 총무이기도 했기에 동아일보 건물은 한민당 당사의 역할을 했다.

언론이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넘어 특정 정당의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이니, 애초부터 언론의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불가능했다. 한국 언론사에 있어서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한민당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동아일보는 한국 근대 정치사에서 매우 치명적인 사건을 촉발한 기사를 내보냈는데,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객관성을 상실했을 때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신탁통치에 관한 찬탁과 반탁의 좌우 진영 대결을 꼽을 수 있는데, 당시 심각했던 찬탁과 반탁 갈등은 동아일보가 한민당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다 보니 발생한 오보로 인해 촉발됐다.

1945년 12월 28일에 연합국 3개국인 미국·영국·소련이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이 결정서에는 한국의 신탁 통치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 결정문이 발표되기 이전에 동아일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왜곡해 보도했고, 이는 좌파와 우파간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이 동아일보의 오보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추론도 가능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서에 담긴 내용은, 한반도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취할 조치이고, 신탁통치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임시정부와 협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신탁통치는 임시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결정될 일이었고, 만일 임시정부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면 신탁통치를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문이 발표되기 이전에 한민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 엄청난 갈등을 촉발했다. 동아일보의 기사는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한반도를 지배하려 한다는 것과,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과는 매우 동떨어진 왜곡 보도였다. 동아일보의 왜곡 보도를 다른 언론사가 받아쓰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조선일보는 “신탁보다 차라리 우리에게 사死를 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는 사설로 신탁반대 운동에 불을 붙였고 “죽음으로 신탁통치에 항거하자”는 호외까지 발행하는 등, 적극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한민당 등의 신탁 결사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자사의 오보를 더욱 확대시켰는데,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문이 정식으로 발표된 이후에도 신탁통치는 임시정부와 협의해 결정한다는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마치 신탁통치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보도를 계속 했다.

동아일보의 오보와 이에 가세한 조선일보 등 언론이 정치세력과 결탁해 반탁운동에 나선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기회를 박탈했고, 왜곡된 사실로 여론을 호도해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다.

만일 당시 동아일보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왜곡보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좌파와 우파 간 극심한 갈등은 없었을 것이고, 신탁통치에 관한 이성적인 논의와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서 수립된 임시정부가 합리적이고 적절한 대응을 해 한반도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수도 있다.

해방 직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보여준 행보를 보면, 현재 대표적 보수 언론으로 자리 잡은 두 신문이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이 정파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오버랩 되어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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