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산업 파산 후 노동자 ‘288명’ 퇴직금 모아 설립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함께 걷는 100년 기업될 것”

인천투데이=서효준 기자│인천 서구 가좌동 옛 인천교 인근에 노동자가 주인인 기업이 있다. 바로 ‘키친아트’다.

키친아트는 냄비‧프라이팬‧에어프라이기 등을 비롯해 주방용품 4000여 가지를 판매한다. 국내 부엌용품으로는 딱히 다른 회사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회사다.

:인천시 서구 장고개로118번길 5 
:인천시 서구 장고개로118번길 5 

키친아트의 시작은 1960년 설립된 ‘경동산업’이다. 경동산업은 국내 최초로 서양식 식기를 생산한 기업으로 1980년대 직원이 35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경영진의 횡령,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19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퇴출 명령을 받아 회사는 파산했다.

이후 퇴직금과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한 노동자들은 퇴직금‧위로금 등 76억원 대신 키친아트 브랜드를 양도받았다. 이후 노동자 288명이 ‘키친아트’를 상호로 퇴직금 등 8억원을 자본금으로 출자해 노동자 자주관리회사를 2001년 설립했다.

박노해 시인 ‘손무덤’ 배경‧‧‧ 아픈 ‘키친아트’ 역사

키친아트 사옥 앞에는 추모비가 서있다. ‘경동산업 노동열사 추모비’다. 추모비에는 고 강현중 열사, 고 김종하 열사, 고 최웅 열사 이름이 적혀 있다.

경동산업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하루에 손으로 만개가 넘는 숟가락을 만들어내던 직원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됐다. 작업 공정상 프레스를 다루는 일이 많았지만 안전장치는 부실했고, 사고는 빈번했다.

이종화 키친아트 이사는 “정규시간 외 근무인 잔업‧특근으로 한 달에 200시간을 채웠다. 근무환경은 말도 못 했다. 잘려나간 손가락은 셀 수 없었다. 박노해 시인 손무덤이 바로 경동산업 이야기”라고 전했다.

1980년대 경동산업에서도 노동운동이 시작됐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겪었다. 저임금과 노동 착취가 심한 경동산업에서도 노동자들의 저항이 격렬하게 이어졌다.

급기야 1989년 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1989년 9월 4일 강현중·김종하 열사가 분신해 사망했다. 강현중 열사는 당시 어용노조에 반대해 노동자들이 꾸린 사내 모임인 '디딤돌'의 회장이었다.

이종화 이사는 당시 분신 현장에 있었고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이 이사는 “당시 경동산업에는 어용노조가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친목회인 ‘디딤돌’을 만들어 활동했다. 당시 사측은 디딤돌 활동을 막기 위해 부당한 징계 등을 했다”며 “그날도 사측의 부당한 징계에 맞서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을 기리는 비가 회사 내에 서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희생하며 일궈온 일터는 결국 2000년 파산했다. 파산 당시 회사 빚만 1000억원이 넘었고, 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고 회사를 나와야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가 망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퇴지금 대신 당시 브랜드명인 ‘키친아트’를 넘겨받고 그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경동산업 노동열사 추모비와 이종화 키친아트 이사, 이 이사는 1989년 분신 현장에서 전신 화상을 입었다.
경동산업 노동열사 추모비와 이종화 키친아트 이사, 이 이사는 1989년 분신 현장에서 전신 화상을 입었다.

“협력사는 같이 걸어가야 할 대상”

채기석 키친아트 대표는 “협력사는 갑을관계가 아닌 같이 걸어가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키친아트는 주방용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4000여 종에 이르는 제품은 전부 협력업체가 생산한다.

키친아트는 OEM 방식 즉, 두 회사가 계약을 맺고 A사가 B사에 자사 상품의 제조를 위탁해 생산하고 제품을 A사 브랜드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채 대표는 “키친아트가 직접 제조를 안하다보니 관공서‧공공기업 등에 납품이 어렵다. 지자체 등이 발주할 경우 대부분 지역 제조업체에 대해 우선권을 주기 떄문이다. 직접 제조할 경우 수익면에서 더 좋아질꺼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같이 온 협력업체를 버릴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협력업체는 같이 가야 하는 대상이다. 단기적인 수익만 바라보며 회사를 운영해선 안된다”며 “협력사가 어려워지면 키친아트도 어려워지고, 키친아트가 어려워지면 협력사가 어려워지는 공생구조다”라고 덧붙였다.

채기석 치킨아트 대표.
채기석 치킨아트 대표.

“지역과 함께하는 걷는 100년 기업 될 것”

‘소유의공동, 공동책임, 분배의 공정"라는 사훈을 회사 건물에 내건 키친아트는, 주주 배당금의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채기석 대표는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 키친아트는 주주 배당금의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매년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에 공익기금을 전달하고, 제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노동자와 연대를 위해 투쟁현장도 지원했다. 기륭전자‧콜드콜텍‧KTX승무원노조 등과 연대했다. 투쟁현장을 찾아 생활용품과 기부금을 지원했다. 올해 전태일 51주기 추모 문화제에도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경동산업은 1960년 설립됐다. 해로 보면 62년째다. 키친아트는 주방용품 전문기업에서 ‘생활용품 기업’으로 변화하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며 “지역사회와 함께 걷는 100년 기업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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