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⑨ 중구 인현동 '성신카메라'
1970년대 '기념사진' 유행··· 남녀노소 모두 찾아
'걸어다니는 기업' 체증반 활동 가장 기억에 남아
"추억이 있는 사람들 찾아올 수 있게 자리지킬 것"

인천투데이=박소영 기자│카메라는 ‘기억하는 눈’이다. 반세기 넘는 인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 있으니 중구 인현동 성신카메라다. 이준석(76) 사진사는 53년 간 카메라 렌즈에 담아온 세월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준석 사진사는 황해도 신천 출신이다. 그의 가족들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충청도 서천군 비인으로 터를 옮겼다.

그의 인생을 바꾼 사람은 선교차 온 프랑스 신부님이었다. 어렸던 그는 신부님이 갖고 있던 카메라가 그토록 신기했다. 신부님에게 부탁해 사진 기술을 배우고, 그는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준석 사진사는 1968년 인천 중구 인현동 중앙시장 근처에 사진관을 차렸다. 처음엔 사진관 운영이 힘들었다. 

그는 장사가 잘되는 근처 다른 사진관을 살펴봤다. 그러다 사진 촬영도 하면서 카메라와 커피 등도 같이 파는 곳을 발견했다. 

이준석 사진사는 중앙시장 한 카메라 취급 업체에 취직해 카메라 중개일을 배웠다. 물론 사진 찍는 일도 병행했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페트리(Petri)라는 카메라가 중고로 많이 나왔고, 이를 팔면 제법 쏠쏠했다고 한다. 

이준석(76) 사진사.
이준석(76) 사진사.

1970년대 '기념사진' 유행··· 남녀노소 모두 찾아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1973년 지금(중구 인현동 20-2) 자리에 성신카메라를 차렸다. 그 당시엔 사진 촬영이 대세였다. 놀이문화가 없다보니, 사람들은 자주 사진을 찍으러 왔다.

특히 근처 동일방직, 성냥공장, 선미사 노동자들은 성신카메라에 ‘우정 사진’을 찍으러 오곤 했다. 

이준석 사진사는 “노동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작전을 짰다”며 “각 공장 노조위원장에게 사진을 찍어서 외상을 해줄 테니 수금을 해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그 공장 사람들은 다 여기로(성신카메라) 왔다”고 말했다.

이준석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다가 생긴 재밌는 일화를 물었다. 그는 “한번은 마마자국이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러 왔다. 얼굴은 정말 잘생겼는데, 마마자국이 많았다. 최대한 잘 찍어달라고 하길래 사진 수정 기술로 마마자국을 없애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 시간이 좀 흘러 어떤 중년 여성이 찾아오더니 대뜸 제 따귀를 때렸다. 어안이 벙벙해 뭔 일인가 했더니 그때 찍어줬던 사진이 중매사진이었다”며 “여자쪽 어머니였는데, 남자와 여자가 중매날 밤에 만났는지 당일 애가 들어서 결혼하게 돼버렸다고 따지더라. 내 탓도 아닌데 억울했다“며 웃었다.

아울러 “그리고 나선 부부가 사과를 하러 찾아왔다. 그의 아내가 남편이 마마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도 좋아서 결혼까지 한 것이라고 이실직고했다”며 “그 후로 부부는 자식까지 낳아 아직도 사진 찍으러 온다”고 말했다.

이준석 사진사(76)
이준석 사진사(76)

'걸어다니는 기업' 중부경찰서 체증반 일 가장 기억에 남아

이준석 사진사는 걸어다니는 기업이었다. 성신카메라 일 말고도 외부 행사사진을 부탁받아 사진을 찍었고, 관공서 위탁을 받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중부경찰서에서 했던 체증반(증거수집반) 일이라고 했다.

이준석 사진사는 “그 때 당시엔 체증반이 따로 없어 사진사를 불러다 사진을 찍게 했다. 사건 사고 현장을 많이 봤다”며 “1978년도였나, 한번은 아는 경찰이 새벽에 경기도립병원으로 불렀다. 소주 한 병하고 오징어 다리 하나 주더니 먹으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 땐 술을 잘 못해서 안 먹는다고 했더니 '오늘 술을 안 먹으면 사진을 못 찍는다'고 했다”며 “그래서 먹고 들어갔더니, 부검실이었다. 당시 청년이 누워있었다. 사인은 음독사라고 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준석 사진사가 그동안 찍어 놓은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준석 사진사가 그동안 찍어 놓은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준석 사진사가 찍은 1980년대 동인천역.
이준석 사진사가 찍은 1980년대 동인천역.
이준석 사진사가 찍은 1970년대 율목풀장.
이준석 사진사가 찍은 1970년대 율목풀장.
이준석 사진사가 찍은 1970년대 인하대학교 시위현장.
이준석 사진사가 찍은 1970년대 인하대학교 시위현장.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굳건히 자리지킬 것"

1990년대 중반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했고,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폰이 보급되자 사람들은 점점 사진관을 찾지 않았다. 이준석 사진사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왔던 것처럼 변화에 익숙하게 대처했다.

이준석 사진사는 디지털카메라 촬영 방법을 배웠고, 포토샵도 독학했다. 그는 자신이 아날로그 카메라·디지털카메라 촬영기술, 카메라 역사까지 알고 있는 것을 강점으로 삼아 카메라 역사 강연을 나가기도 했다.

이준석 사진사는 “옛기억에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 반갑다. 시대는 변하지만 추억은 남아있다”며 “큰 아들이 사진일을 하는데, 가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곳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언제든 성신카메라를 찾아올 수 있게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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