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에 ‘이미륵 박사 흉상’ 제막 독일에서 다섯 번째
함부르크에 ‘이미륵 박사 흉상’ 제막 독일에서 다섯 번째
  • 김갑봉 기자
  • 승인 2019.09.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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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운동가이자 독일인이 닮고자 했던 ‘동양의 현인’
사단법인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인천 남동구에 소재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독립 운동가이자 독일 최초 한인 문학가인 이미륵 박사(본명 이의경)의 흉상이 지난 8월 함부르크에 세워졌다.

인천 남동구에 소재한 사단법인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는 8월 31일 주함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관 관저에서 이미륵 박사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고 밝혔다.

제막식에는 신성철 주함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 재독 독도지킴이단 하성철 단장, 이윤덕 원불교 레겐스부르크 교무, 방미석 함부르크한인회장 등이 참여했다.

주함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관 내 이미륵 박사 흉상 제막(사진제공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주함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관 내 이미륵 박사 흉상 제막(사진제공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이미륵 박사는 독립 운동가이자 독일사람들이 사랑했던 전인적 인간이자 휴머니스트였으며, 독일사람들이 배우고 닮고자 했던 동양의 현인이었다.

이 박사의 대표적인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한국 교과서에 실리기 전에 독일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먼저 실렸다. 그가 ‘압록강은 흐른다’로 보여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전쟁 후 혼란과 도탄, 실의, 자괴에 빠져있던 독일인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지금도 독일 뮌헨 교외의 그래펠핑에 있는 이미륵 묘소에서는 해마다 그의 기일에 맞춰 독일인들이 한국식으로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미륵은 1899년 음력 3월 8일 황해도 해주 수양산 자락 서영정마을에서 성공한 상인 이동빈의 독자로 태어났다. 이동빈은 아들의 이름을 ‘의경’이라 지었고, 부인은 미륵불 은덕으로 점지된 아이라며 주변에 ‘미륵’이라 부르게 했다.

이미륵은 1917년 독학으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2기생으로 진학했다. 경성의대 재학 중 1917년 첫째 딸 명주를 얻었고, 1919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던 해 첫아들 명기를 얻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딸 명주는 3년 후 사망했고, 아들 명기는 건강이 악화 돼 한국전쟁 무렵 숨을 거뒀다.

경성의대 재학시절 이미륵은 3.1운동에 가담했다. 이미륵 역시 수배 인물로 지목돼 상해로 피신했다. 나중에 독일 망명 후 이미륵은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11월 27일 압록강을 건너 상해로 망명한 이미륵은 그곳에서 독일로 망명하기 전까지 대한적십자대원으로 발탁돼 임시정부의 일을 도왔다. 의학도였던 그는 간호사를 양성하는 일도 도왔다.

이미륵은 1920년 4월 상해를 떠나 5월 프랑스 마르세유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이미륵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안봉근과 함께 독일로 향했다. 가톨릭 집안이었던 안봉근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성 베네딕트회 빌헤름 수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미륵은 그의 도움을 받았다.

이미륵의 시와 소설, 국내 보다 독일 교과서에 먼저 실려

이미륵
이미륵

이미륵은 독일에서 끔찍한 1차 세계대전을 지켜보면서 지냈고, 망명 중 벨기에에서 열린 피압박민족세계대회에 참여해 일제의 부당한 침입과 조선의 독립을 역설했다. 나아가 반(反)나치세력과도 연대했는데, 그와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교수형에 처했을 때 그는 그의 가족을 보살폈다.

이미륵은 1928년 7월 뮌헨대학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미륵 박사는 1946년 5월 소설 ‘Der Yalu fliesst(압록강은 흐른다)’를 출간했다. 책이 나오고 3개월 후 독일에서 이름난 잡지와 지역신문에 찬사가 쏟아졌다.

훗날 그의 시와 소설이 독일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인들에게 한국사람, 한국 문화, 한국 역사를 고결하고 품위 있는 동경의 대상으로 각인시켰고,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고결하고 순수한 정신세계를 지키고 있었던 한국인 이미륵을 흠모하게 했다.

이미륵 박사는 1947년 뮌헨대학 동양학과에 한국어과 정식 교수로 초빙됐다. 그는 1948년 여름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과목은 한국의 언어와 역사, 논어와 맹자, 동아시아 문학사였다. 훗날 그의 제자 볼프강 바우어는 뮌헨대학 동양학부 교수가 됐고, 제자 권테 데본은 하이델베르크 동양학부 교수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12월 독일(당시 서독)을 방문해 총리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1897~1977)에게 간절히 차관(借款)을 요청했을 때, 독일 정부가 담보 없이 1억 5000만 마르크(당시 3000만 불)를 지원하기로 한 데는 이미륵 박사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신뢰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63년 한국 정부는 이미륵에게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하는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국가보훈처는 이미륵에게 독립유공자 훈장을 수여했다.

함부르크 대한민국총영사관에 세워진 이미륵 박사 흉상(조각작가 안재기)은 일곱 번째 흉상이다. 이 흉상은 총영사관 민원실 한국서적 조회 책상 위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독일에는 함부르크 총영사관을 포함해 주독일한국문화원(베를린), 도이칠란트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뮌헨), 주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총영사관(프랑크푸르트), 재독한인문화회관 파독광부 기념관(에센) 등에 5개가 전시돼 있고, 국내에는 국립중앙도서관과 인천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에 2개 있다.

이 박사 흉상 7개 중 5개는 이미륵 박사의 유족대표인 이영래(이미륵 박사 누님의 외손자) 선생이 사재로 제작했고, 나머지 두 개는 한국프르메재단(백경학 이사장)과 문현회(회장 양승현 전 동국대 교수) 회원들이 제작했다.

이영래 선생은 이미륵 박사의 첫째 누이 이의선의 외손이다. 이영래 선생은 “머나먼 독일에서 이미륵 박사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할아버지의 뜻을 기려주시는 데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이다”며 “흉상 제막에 도움을 주고 함께해 주신 함부르크로 총영사관을 비롯한 모든 분들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