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댄스컴퍼니, 23일 부평아트센터서 이미륵 추모공연

정규화 선생ㆍ유가족 인천에 기념사업회 설립

▲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 유족 대표인 이영래 선생.<사진제공·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2011년 12월 사단법인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회장 정규화)가 인천에 설립됐다. 이미륵 박사 연구와 알리기에 40년 넘게 힘써온 정규화(‘이미륵 평전 저자’, 전 성신여대 독문학과 교수) 선생과 이미륵 선생의 유가족이 애를 썼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것이다. 기념사업회가 인천에 둥지를 튼 것은 이미륵 박사의 큰누이 이의선씨의 외손자가 인천에 정착해 터전을 일궜기 때문이다.

이미륵 박사의 아버지 이동빈은 해주에서 첫딸 의선과 둘째딸 의정, 셋째 딸(미상) 그리고 막내아들 의경(=이미륵)을 낳았다. 이들 중 이의선은 인천에, 이의정은 서울 마포에 각각 정착했다. 셋째는 해주에 남았고, 이의경은 항일운동을 하다 일제의 검거를 피해 독일에 정착했다. 기념사업회 유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래(76) 선생은 이의선씨의 후손이다.

이영래 선생은 “이미륵 박사가 제 아버지한테 외삼촌 되는 셈이고, 이미륵 박사의 큰누이 이의선은 제 외할머니다. 외할머니는 1888년에 태어나 1973년 86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외할머니께서 ‘식구들이 인천에서 만세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고 얘기한 것으로 보아,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인천으로 이미 출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주거지는 현재 동구 창영동 13번지 일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할머니는 인천의 원씨 일가로 시집을 와서 외삼촌 원용희와 제 어머니 원숙녀, 이모 원숙열을 낳았다. 제 어머니는 선친 이병진과 결혼해 저를 비롯해 5남매를 낳았고, 이모 또한 인천에서 장씨 일가로 시집을 갔다. 외할머니는 외삼촌이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되면서 나중에 이모(=원숙열)와 함께 지냈는데, 일가가 모두 창영동 근처에 모여 살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의선씨의 자녀 삼남매 중 원용희는 행방불명이 됐고, 원숙녀는 1991년 78세의 일기로 작고했으며, 원숙열은 2010년 작고했다. 이미륵 박사의 작은누이 이의정씨는 서울에 정착했는데, 그의 후손은 지금 모두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영래 선생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외할머니로부터 이미륵 박사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미륵 박사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 “이날 아침에 나는 저 먼 고향에서 온 첫 소식을 받았다. 큰누님이 쓴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앓으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연이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소설 속 큰누님이 바로 이의선씨다.

▲ 이미륵 박사의 두 누이(왼쪽부터 이의선, 이의정).<사진제공·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이영래 선생은 “정규화 선생이 쓴 ‘이미륵 평전’에 이미륵의 첫째가 명주(1917년 생)인데 출생 3년 후 사망한 것으로 나오고, 아들 명기(1919년 생)는 한국전쟁 무렵 돌아가신 것으로 돼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고 한 뒤 “분단이 고착화되기 전 만해도 해방 직후 남북은 왕래할 수 있었다. 외삼촌(=원용희)이 해방 직후 해주를 찾아가 이미륵 박사의 아들 명기를 구월산의 어떤 절에서 만났는데, 요양 중이었고 머리를 기른 채 몰골이 많이 상해 있었다고 했고, 딸은 어느 은행의 사환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전해줬다. 아들보다 어린 딸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알 길이 없다. 외할머니는 또 이미륵의 딸이 분단되기 전 인천에 놀러와 우리 형제를 업어주기도 했다는데, 이 또한 알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영래 선생은 외할머니로부터 이미륵 박사에 대한 얘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어릴 때부터 시를 짓는 데 능숙했다고 한다. 이영래 선생은 “비바람이 치던 날 이미륵 박사의 아버지가 시를 한 수 지으라고 했더니, ‘비바람이 치니 나무가 술에 취한 것 같도다’ 했단다. 또 당시 집안에 서당이 있었는데, 서당 훈장이 ‘이미륵만 없으면 집에 일찍 갈수 있는데 못 간다’고 할 정도로 한학 공부에 열중했다고 외할머니가 들려 줬다”고 말했다.

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를 사단법인으로 전환했지만 그 구성원이 대부분 연로하다. 때문에 이영래 선생은 기념사업회가 지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는 “올해 한-독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앞으로 유가족이라는 말을 쓰기도 어려울 수 있다.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어서 내가 기념사업회를 맡아야겠다고 나섰는데, 이젠 저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이미륵 박사가 독일 망명 생활 중 삶과 문학으로 보여준 인간관과 세계관이 계승되고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많은 이미륵을 위해 기념사업회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세월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압록강은 흐른다’, 인천에서 춤으로 탄생

▲ 이미륵 추모공연 포스터.
이미륵 박사가 그의 언행과 작품으로 보여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분단으로 인한 갈등이 가장 첨예한 인천에서 더욱 그리웠던 걸까?

이미륵 박사의 유가족이 인천에 터를 잡아 기념사업회가 인천에 둥지를 틀었다면, 인천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를 기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구보댄스컴퍼니(대표 장구보ㆍ부평구 십정동 소재)가 오는 23일 부평아트센터에서 한-독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이미륵 박사 추모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춤꾼들이 ‘압록강을 흐른다’를 읽고 난 후, 각자 느낀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공연이다.

장구보 대표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니 춤꾼마다 표현이 다를 수 있다. 관객들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고 오면 교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 뒤 “공연은 이미륵 박사를 추모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이번 기획공연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륵 박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가 이미륵 박사 추모공연을 기획한 것은 그가 문화예술경영학 박사가 된 연유에서 비롯됐다. 장대표는 올해 1월 28일, 자신의 수첩에 ‘이미륵 박사’를 적어뒀다.

장 대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천의 첫 문화예술경영학 박사다. 그가 박사학위를 땄을 때 인천문화예술계의 한 인사가 ‘이미륵 박사를 기리는 작품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장 대표는 “아마도 제 창작활동의 영역을 문학 분야까지 확대해 역량을 키우라고 했던 것으로 본다. 그분이 책 ‘압록강을 흐른다’와 이미륵 박사 관련 다큐와 드라마가 담긴 시디(CD)를 건네줬다. 할 일이 늘 밀려있던 터라 사무실 한쪽에 두고 있었다. 당시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야하는 시기여서 이미륵 박사를 기리는 작품을 창작할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중에 알고 난 일이지만, 유가족 대표인 이영래 선생과 저에게 이미륵 박사 관련 공연을 제안한 분은 서로 친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 대표는, 이번에 이미륵 박사 추모 공연을 맡은 게 어쩌면 인천에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이자, ‘닮은꼴 인연’의 연장이 아닐까라고 했다.

장 대표는 지난 10월초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무용 보이첵’을 무대에 올렸다. 장 대표는 게오르크 뷔히너와 이미륵, 그리고 자신이 닮은 구석이 있다고 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지극히 짧은 기간에 몇 안 되는 작품을 창작했지만 독일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생애 동안 혁명가, 의학도, 자연과학자 그리고 작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독일의 자연주의와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그의 문학성을 기리기위해 1951년 ‘뷔히너상’을 제정했는데, 이 상은 괴테상, 쉴러상과 함께 전후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꼽힌다.

▲ 장구보 구보댄스컴퍼니 대표.
장 대표는 “청년 이상주의자 게오르그 뷔히너가 활동했던 183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엘리트교육을 받고 자란 사실주의이자 이상주의자로 불렸던 뷔히너가 어느 순간부터 내 작품생활에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이데올로기의 절대적 허구를 작품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이고자 했던 그의 철학적 신념과 예술적 열정이 내게 호감을 줬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어 “뷔허너와 이미륵 모두 의학도였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자연의학을 공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는 대체의학을 전공했는데, 자연의학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호감을 갖게 된 것일 수 있다”며 “이번 공연은 ‘압록강은 흐른다’를 재해석한 추모 공연이다. 공연을 통해 세월에 묻힐 뻔한 한 사람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깊이 있는 문화예술을 끌어올리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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