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활용방안 5
일본 나가사키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일본 나가사키 개항의 역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 열었던 무인 정권인 에도 막부는 1858년 미국ㆍ네덜란드ㆍ러시아ㆍ영국ㆍ프랑스 등 다섯 국가와 수호 통상 조약을 맺었다. 이어서 이듬해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훗카이도현 하코다테시와 함께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도 자유무역항으로 개항했다.

나가사키는 개항 전인 1500년대부터 이미 중국ㆍ조선ㆍ포르투갈ㆍ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무역을 했던 곳으로, 일본에서 두 번째로 외국과 무역을 개시했다. 나가사키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처음으로 가톨릭을 전파한 곳이며, 에도 막부의 가톨릭 박해로 성인 26인 순교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1857년 순교한 성인 26인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세워진 오우라 천주당은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882년 세워진 시쓰 성당도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오래된 가톨릭 관련 문화유산이다. 1865년에는 약 250년간 박해를 피해 비밀리에 가톨릭 신앙을 계승해온 나가사키지역 신자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에도 막부는 가톨릭 포교를 막겠다며 나가사키 시내에 흩어져 살던 포르투갈 상인들을 한곳에 모아 거주시키기 위해 1636년에 데지마(出島)라는 섬을 만들었다. 부채 모양의 이 인공섬은 1만 5000㎡ 규모인데, 1639년 포르투갈 상인들이 쫓겨난 후 약 2년간 무인도가 되기도 했다. 1641년에 네덜란드 상관(외국인 상점)이 이전하면서 네덜란드 상인들의 거류지가 됐다. 이후 데지마는 개항을 결정한 1859년까지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양과 교역한 항구로 자리 잡았다.

메이지유신 이후인 1904년 항만 개량공사로 데지마 주변이 매립됐고, 데지마는 육지와 연결돼 원래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1996년 복원 사업을 시작해 건물 10여채를 복원했고, 섬 모양을 다시 갖췄다.

데지마 안에 있는 자료관에는 당시 일본에 살던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의 생활을 재현한 그림과 모형, 유물 등이 전시돼있다. 데지마는 1922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본 4대 차이나타운 중 하나인 나가사키 신치주카가이.

에도 막부는 네덜란드 상인들의 거류지를 데지마로 제한했지만, 중국 상인들에게는 나가사키 시내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러나 밀무역이 증가하자 1688년 나가사키 교외지역에 중국 상인의 거류지인 당인 저택을 세워 그곳에서만 거주하게 했다. 이후 화재가 발생해 중국인들은 나가사키 시내 신치(新地)지역에 창고를 세웠다.

1859년 개항 이후 중국 상인들은 당인 저택을 버리고 신치지역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이곳이 현재 일본의 4대 차이나타운 중 하나인 나가사키 신치주카가이가 됐다.

개항 이후 에도 막부는 서양인들에게 거류지를 제공하기 위해 공사를 세 차례 진행하기도 했다. 데지마 보다 남쪽에 있는 해안을 매립해 외국인 상점이나 창고를 세우게 하고, 배후 언덕을 조성해 중간에는 호텔ㆍ은행ㆍ병원ㆍ오락시설 등을, 그보다 전망이 좋은 높은 곳에는 주택ㆍ영사관을 짓게 했다.

이렇게 외국인 거류지인 히가시야마테(東山手)와 미나미야마테(南山手) 지구가 생겼다. 이때부터 나가사키에는 서양식 건축물이 다량으로 들어섰다. 1899년 수호 통상 조약이 개정돼 거류지는 폐지됐으나, 히가시야마테와 미나미야마테 지구에는 막말(에도 막부 말기, 1853~1868년)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년) 이후에도 서양식 건물과 돌계단 등이 보존됐다.

대표적으로는 미나미야마테 지역에 구라바엔(글로버정원)과 오우라 천주당, 옛 홍콩상해은행 나가사키지점 건물, 히가시야마테 지역엔 오란다자카(네덜란드 언덕)와 여러 서양식 주택군이 보존돼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나가사키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나가사키는 서양과 중국의 오래된 문화유산, 개항과 함께 세워진 근대문화유산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나가사키시의 근대문화유산과 보존 정책
 

나가사키시의 옛 서양인 거류지인 미니미야마테에 1863년 세워져 보존 중인 글로버 주택.
순교한 성인 26인을 기리기 위해 1864년에 세운 오우라 천주당.

서양인의 거류지였던 히가시야마테와 미나미야마테지역에는 막말부터 형성된 거류지의 구획을 나타내는 역사적 풍경과 함께 막말부터 메이지 시대를 걸쳐 세워진 서양식 건축, 석조 도로ㆍ계단ㆍ도랑, 수목 등이 하나가 돼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가사키시는 역사적인 이 거리를 지키기 위해 1990년에 히가시야마테와 미나미야마테 지역을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나아가 1991년에는 일본 정부가 국가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하기도 했다.

또한, 나가사카시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 보존 조례를 제정해 보존 지구 안에서 현상변경을 규제하고, 보존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정했다. 건물 소유자 등이 실시하는 전통적 건조물 등의 관리ㆍ수리를 보조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했다. 건조물의 방재 설비에 필요한 경비를 최고 200만엔까지 지원하고, 외관 수리를 위해서는 전체 비용의 3분의 2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히가시야마테 보존지구 안에는 러시아 영사관 등으로 사용된 히가시야마테 12번 관, 옛 영국 영사관 등이 있다. 일본인들이 서양인을 오란다상(네덜란드씨)이라고 부르고, 서양인이 다니는 길을 오란다자카(네덜란드 언덕)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한 오란다자카의 석조 길과 담장, 거대한 수목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미나미야마테 보존지구에는 오우라 천주당, 옛 라텐신 학교가 있다. 막말부터 메이지 시대를 걸친 서양식 주택으로 옛 글로버 주택을 비롯해 링가 주택, 오르토주택이 현존하고 있다.

또, 항구와 가까운 마쓰가에쵸에는 옛 홍콩상해은행 나가사키지점과 옛 나가사키 세관 사가리 마츠 파출소 등이 있고, 이것들은 모두 국보나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있다.

두 보존지구에 위치한 오우라 천주당, 개항 후 일본의 산업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가 1863년 세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양식 건축물인 글로버 주택 등 여러 서양 건축물과 정원이 함께 모여 있는 구라바엔ㆍ오란다자카 등은 나가사키의 최대 관광지로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근대건축물 남기기 운동

나가사키 시민들이 근대건축물 보존운동으로 지켜낸 옛 홍콩 상하이은행 나가사키지점.

1904년 세워진 홍콩상하이은행 나가사키지점 건물은 은행으로서 역할이 끝난 후 나가사키현이 인수해 우메가사키와 오우라의 경찰청사로, 이후에는 나가사키시가 인수한 뒤 시립 역사민속자료관으로 활용해왔다.

1987년 나가사키시가 시정 100주년을 기념해 이 건물을 ‘국제교류회관’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시민들은 ‘옛 홍콩상하이은행을 지키는 모임(이하 모임)’을 발족하고 건물 보존활동을 했다.

‘모임’은 건물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시에 제출했고, 이로 인해 시의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건물은 약 4년간 수복 공사를 거쳐 1998년에 ‘나가사키시 옛 홍콩 상하이은행 나가사키지점 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 그후 ‘모임’은 없어졌지만, 근대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나섰고 결국 지켜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나가사키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가치가 높은 역사적 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며 “히가시야마테지구와 미나미야마테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과 협력하면서 다음 세대에 귀중한 거리를 물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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