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활용방안
3. 목포의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1897년 개항 이후 목포 모습.

조선시대 목포진과 개항의 역사

전라남도 목포는 개항 이전의 조선시대 역사와 개항 이후 근대 역사의 흔적과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도시다. 조선 초기부터 지리적 여건 때문에 수군의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세종 때인 1439년 처음으로 해상을 지키는 거점으로 목포진지 설치가 추진됐고 1502년 성의 모습을 갖춰 완공됐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유달동 등 여러 동에 걸쳐 있는 유달산의 거석봉우리인 노적봉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활용해 왜군을 물리쳤다는 일화가 있다.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엉을 엮어 바위를 덮었는데, 군량미를 덮어 놓은 노적처럼 꾸며 군량미가 대량으로 비축돼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 노적봉 주위를 계속 돌게 해 마치 대군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게 했고, 이는 나중에 강강수월래로 발전했다는 전설도 있다.

목포진은 개항을 앞둔 1895년 7월 군사제도가 근대식으로 개편되면서 폐지됐다. 목포시는 유적비만 남아있던 만호동 언덕에 역사적 고증을 거쳐 일부를 복원하고 2014년 목포진역사공원을 건립했다. 목포시는 지난해부터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문화제와 학술대회, 수군행진 등을 펼치는 ‘이순신 수군 문화제’도 열고 있다.

조선시대 주요 군사요충지 역할을 했던 목포는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에 의해 1897년 10월 1일 개항했다. 부산ㆍ원산ㆍ인천에 이어 네 번째로 개항한 것이다.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목포는 고종이 칙령으로 필요에 의해 개항한 최초의 항구다. 대한제국은 목포와 증남포의 추가 개항으로 관세 수입을 늘려 정부재정을 확충하고자 했다. 목포 개항과 함께 무안감리서와 목포해관도 설치했다. 당시 목포는 무안에 속해 있어 무안감리서가 설치됐고, 감리서는 개항장 내 외국 영사관과 외교ㆍ통상 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내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다.

영국ㆍ러시아ㆍ일본 등이 목포에 영사관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 영사관을 설치한 나라는 일본뿐이었다. 1897년 10월 26일에 목포 일본영사관이 설치됐고, 같은 해 12월 이주해온 일본인들의 통신 연락을 위한 무안 우체사도 개국했다.

개항 후 기독교와 천주교, 일본 불교인 동본원사가 전파됐으며, 일본인 자녀 교육을 위한 공립심상소학교, 목포여자중학교, 조선인을 위한 문태중학교가 개교하는 등, 종교ㆍ교육ㆍ문화 등 다양한 외래 문물이 전파됐다.

외래 문물을 받아들인 목포에는 중심지였던 오거리 주변에 동본원사ㆍ호남은행ㆍ양동교회ㆍ일본인 가옥 등 여러 근대건축물도 세워졌다. 1906년에는 목포 앞바다 섬인 고화도에서 면화를 우리나라 최초로 재배해, 목포는 삼백(쌀ㆍ목화ㆍ소금)의 고장으로 명성을 알리며 국내 6대 도시로 성장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영사관과 함께 동양척식주식회사ㆍ목포형무소ㆍ목포경찰서 등이 설치돼 억압을 받았으나 1919년 4월 8일 만세운동, 청년운동, 부두노동자운동, 신간회운동 등 항일운동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오거리문화센터로 활용 중인 일본의 불교사원인 옛 동본원사 목포 별원.

목포의 근대문화유산 현황

목포의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은 만호동과 유달동 일원이다. 개항 이후 목포에 격자형 도로망이 생기고 근대적 계획도시로 변모하는 과정과 당시 생활상을 아직도 엿볼 수 있다.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인 옛 목포 일본영사관은 일본 영사 업무를 위해 1900년 1월에 착공해 12월에 완공한 건물이다. 이후 영사관ㆍ목포이사청ㆍ목포부청사 등으로 활용됐고, 해방 후에는 목포시청ㆍ목포시립도서관ㆍ목포문화원으로 활용됐다.

현재는 2014년 3월 개관한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운영 중이다. 목포의 역사와 개항의 역사, 개항기 목포 모습 재현 조형물, 목포의 항일운동, 영사기와 축음기 등 서양 근대문화물 등을 관람할 수 있다. 근대역사관 뒤편에는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방공호도 있다.

일본의 쌀 수탈 상징이었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1921년 신축된 건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해군 목포경비부가 창설돼 사용하다, 목포해역사 헌병대가 사용한 후 장기간 방치됐다. 2006년 개ㆍ보수 후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이 됐다. 개항과 관련한 목포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일본의 끔찍한 만행이 담긴 사진이 전시돼있다. 수탈한 쌀을 넣어뒀던 금고도 아직 남아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활용 중인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일제강점기 일본 자본에 대항해 호남지역 인사들이 설립했던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은 1929년 11월 준공됐다. 현재는 목포문화원으로 활용 중이다. 1929년 일본인 자녀 교육을 위해 목포에 처음 세워진 심상소학교의 강당은 현재 유달초등학교 건물로 남아있다. 2006년까지 과학실과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03년 미국 남장로교가 설립해 1911년 개칭한 정명여학교는 전라남도 여성교육기관의 효시로, 1919년 3.1운동 때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본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했다가 광복 후 다시 복교했다. 이 학교의 선교사 사택은 1990년까지 정명여고의 교장 사택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100주년 기념관과 음악실로 사용되고 있다.

1925년 건립돼 일제강점기 목포 청년들의 항일운동 근거지였고 <조선 청년>이란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던 옛 청년회관은 2010년 리모델링해 연극 전용극장인 남교소극장으로 활용 중이다.

1898년 4월 세워진 일본의 불교 사원인 옛 동본원사 목포 별원은 목포심상고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일본인 소학교로 운영되다가, 해방 이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1957년부터는 사찰이었던 곳이 목포중앙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다. 목포시는 2010년 1월 오거리문화센터로 개관해 각종 문화행사와 전시회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898년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이 양동에 설립한 장로교회인 목포양동교회는 목포 최초의 서구적 교회다. 1911년 준공된 양동교회의 예배당은 1982년 증축과정을 거쳐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에 지은 옛 화신백화점, 1908년 조성된 북교동 문익수 가옥(한옥), 1920년 지은 일본식 목조주택인 중앙동 적산가옥 등, 목포에는 120개가 넘는 근대건축문화유산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활용 중인 옛 목포 일본영사관.

목포의 근대문화유산 활용

문화재청은 지난달 말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선(線)ㆍ면(面) 단위 문화재 등록을 예고됐다. 근대건축문화유산이 많은 만호동ㆍ유달동 일원 11만 4038㎡ 규모의 부지와 건축물 등이 문화재 등록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근대건축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어 보존ㆍ활용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지역에 있는 옛 복전농업주식회사 사택, 옛 목포화신연쇄점, 옛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옛 목포부립병원 가옥 등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 16개 동은 별도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예정이다.

목포시는 개항과 근대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을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으며, 2009년부턴 옛 동본원사 목포별원을 오거리문화센터, 옛 청년회관을 남교소극장으로 활용했다.

2011년에는 국가나 도 지정문화재를 제외한 120여개의 근대문화유산 자료를 수집하고 순차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개항 이후 생겼던 극장이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옛 평화극장의 부지에 근대문화예술인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공연장을 설치, 근대역사문화예술공원을 조성했다.

2017년부터는 현존하는 근대건축물에 관한 일제조사를 진행해 역사적 보존가치와 관광 상품성이 있는 군대문화유산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으며, 근대건축자산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을 시작했다.

목포시는 근대역사문화자원을 관광자원화하는 시범사업을 중앙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올해부터 3년 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2019년까지 목포근대역사관 2관 근처에 일본가옥과 다다미방 등을 복원하는 게스트하우스 11개동과 정원 등을 건립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도시재생사업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이 확정되면 이 사업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두 개 사업은 어떻게 녹여낼 지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시 관계자는 “근대문화유산이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 목포는 도심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근대문화유산을 보전하고 활용하는 사업이 도시의 미래와 발전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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