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활용방안 6
일본 요코하마시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요코하마 개항의 역사

일본의 수도인 도쿄와 전철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가나가와현 동부에 위치한 현청 소재지 요코하마시는 에도 말기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항만도시다. 일본에서 도쿄에 이어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로, 인천과 묘하게 닮았다.

요코하마는 미국이 일본을 중국 진출의 중간 기지로 삼기 위해 파견한 페리 제독이 1854년에 상륙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한 곳이다. 이 조약에 따라 요코하마는 1859년 7월 1일 개항했다.

페리 제독은 당시 에도(현 도쿄) 지역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 상륙하길 요구했지만 에도 막부는 이를 거절했고, 협상 끝에 도쿄와 가까우면서도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정박하기 쉬운 요코하마에 상륙했다.

페리 제독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상륙한 개항 광장 옆에 있던 나무는 페리 제독 상륙 당시의 기록화에도 그려져 있는데, 이 나무는 현재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에 보존되고 있다.

개항 전 요코하마는 100세대 500명 정도가 사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개항 후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개항 초기 미국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서양 나라 국민들의 거류지가 생겼고 근대 건축물도 많이 들어섰다.

1923년 관동대지진에도 파괴되지 않은 가나가와현립 역사박물관.

개국 일본과 신생 일본의 상징이 된 요코하마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전국 각지에서 선진 산업이나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막부가 설치한 공물을 상납하는 세관을 중심으로 북쪽은 일본인 거주지, 남쪽은 외국인 거류지가 됐다.

외국인 거류지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뿐 아니라 중국인의 상관(=큰 규모의 상점)이 들어섰다. 현재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은 이 중국인 상관을 기원으로 한다. 일본인 거주지는 요코하마 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는 데, 1889년 4월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코하마시가 탄생됐다.

이에 앞선 1872년 10월에는 신바시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가 개통됐으며, 현재는 요코하마역 근방에 가나가와역과 쓰루미역이 개설돼있다. 당시 무역의 주도권을 가진 외국 상관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 무역상들은 1873년에 생사개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1881년 생사하예소 설립, 1887년 수도 설치, 1890년 공동 전등회사 설립, 1891년 만전 병원 설치, 1895년 생사검사소와 상업회의소 설치 등으로 상업을 발전시켰다.

요코하마는 인구가 점점 늘어 1889년에는 인구 12만명의 대도시로 커졌다. 이후 간나이라고 불리던 외국인 거류지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하지만, 1923년 일본 관동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당시 들어섰던 많은 근대 건축물들이 파괴됐다. 외국 상관도 대부분 도쿄와 오사카로 이전했다.

이후 지진 재해 부흥 사업을 진행해 도로를 확장하고, 야마시타공원을 조성했으며, 현재 요코하마 3탑으로 불리는 가나가와현 청사와 요코하마 세관 청사 등을 지었고, 요코하마는 1929년에 옛 모습을 거의 회복했다. 그 이후 요코하마는 기계류ㆍ금속ㆍ철강 등의 무역을 담당하는 항구로 성장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말이던 1945년 요코하마 대공습이 일어나 중심 시가지가 다시 파괴되기도 했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사령부에 의해 요코하마의 발전은 더뎠지만, 연합국 점령 체제가 끝난 후 1956년엔 한국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됐고, 1964년엔 열차 노선인 네기시선이 개통했다.

요코하마는 1985년에 인구 300만명 도시로 커졌고, 1990년에는 도심부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요코하마역 주변 지구와 간나이지구를 잇는 미나토미라이21지구 정비가 본격화됐다. 아카렌가창고가 위치한 미나토미라이21지구는 현재 요코하마에 연간 40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근대문화유산과 보존 정책

야마테 서양관 지역에 있는 엘리스만 저택.

니시카와 다케오미(63)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장은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외국인 거류지에는 많은 근대건축물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은 페리 제독이 일미화친조약을 맺기 위해 상륙한 곳에 세워졌다. 1870년 영국 영사관이 들어섰다가 관동대지진으로 무너져 1931년에 다시 세웠고, 1981년엔 영국 영사관 건물은 보존한 채 그 옆에 새로 건물을 지어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니시카와 관장은 “영국인들이 도쿄로 이사하면서 영사관도 도쿄로 이전했다”며 “영사관 이전 이후 영국 정부가 건물을 일본 정부에 넘기면서 교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장소로 활용을 요구했고, 협의 끝에 요코하마시가 건물을 인수받아 개항과 근대화 교육의 창구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관동대지진으로 건축물이 많이 파손돼, 요코하마의 오래된 건축물 대다수는 관공대지진 이후 지어진 것들이다. 파손된 것을 다시 복원한 건축물도 많다.

대표적인 게 요코하마 3탑이라 불리는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 가나가와현 청사, 요코하마 세관 본관 청사다. 모두 탑이 있어 탑 꼭대기에 올라가 요코하마 시내 경치를 볼 수 있다.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은 1909년 개항 50주년을 맞아 시민들이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해 1917년에 완공했다. 처음에는 개항 기념 요코하마 회관으로 불렸다. 관동대지진으로 전소된 후 1927년 같은 모습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요코하마 개항 관련 역사 자료가 전시돼있으며, 시민들의 공회당(집회나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공공시설로 주로 다목적홀 용도로 쓰임)으로 활용 중이다.

가나가와현 청사는 대지진으로 소실된 후 설계 공모 과정을 거쳐 1928년에 새로 지었다. 현재도 현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요코하마 세관 본관 청사는 1885년에 만들었던 세관 건물이 대지진으로 무너진 후 1935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현재 세관 본관과 함께 세관박물관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관동대지진에도 파괴되지 않은 건물도 있다. 1904년 독일식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요코하마 쇼킨 은행 본점 건물이다. 1968년 가나가와현립 역사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이밖에 야마테지구에 가면 1910년부터 1930년대 사이에 지어진 외국인 주택들이 모여 있는 야마테 서양관 지역이 있다. 이곳에는 요코하마시 지정 문화재나 요코하마시 인정 역사 건축물인 저택 아홉 개가 있다. 영국 무역상의 저택인 베릭홀처럼 무료로 관광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시민들이 전시실이나 회의실로 이용할 수 있는 야마테 234번관, 일부를 카페로 이용하는 엘리스만 저택 등이 있다.

이밖에 동아시아 차이나타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400개가 넘는 다양한 상점과 음식점들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요코하마시는 개항 이후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적극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1988년에 ‘역사를 살린 마을 만들기 요강’을 시행했다. 소유자의 협조를 얻어 주로 건축물의 외관을 보존하면서 활용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며, 요강에 맞게 ‘등록’이나 ‘인정’을 추진하고 있다.

‘등록’이나 ‘인정’으로 공인된 건축물은 외관의 보수와 유지 관리를 지원받을 수 있으며, 1997년부터는 구조 보강 비용도 지원받는다. 소유자나 관계 부처와 협조해 시가 건축물을 취득하고 시민 이용시설로 정비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4월 말 현재 요코하마시에 등록된 근대문화유산은 205개, 인증된 근대문화유산은 93개에 달한다.

요코하마의 관광 중심지가 된 아카렌가 창고

요코하마시 관광 중심지인 미나토미라이21지구에 있는 아카렌가 창고 1호관.

개항 이후 요코하마항 취급 화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 건축이 부두 건설과 함께 시작됐다. 1907년 착공해 1911년 완공한 창고가 현재 아카렌가(붉은 벽돌) 창고 2호관으로 쓰이는 창고다. 1호관은 1908년 착공해 1913년 완공했다. 당시 1호관은 일본 최초로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스프링클러, 방화문 등을 갖췄다. 하지만, 1923년 대지진 후 많은 벽돌이 무너져 절반 크기로 축소됐다. 1930년 내진 보수 공사가 진행된 후 1945년부터 미군이 사용하다 다시 1956년부터 1989년까지 창고로 사용됐다.

1992년에 요코하마시가 창고 대지와 건물을 매입해 ‘보존ㆍ활용검토위원회’를 설치했고, 1999년엔 ‘항만의 활기와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창고 사업 콘셉트를 정했다. 내부 공사 후 2002년에 1호관은 홀과 전시 공간을 갖춘 문화시설로, 2호관은 레스토랑과 상점 등이 모인 상업시설로 문을 열었다.

아카렌카 창고의 홀과 전시 공간은 요코하마시예술문화진흥재단이 시민들의 공연과 전시 등을 위한 공익적 시설로 운영하고 있으며, 나머지 상업시설은 (주)요코하마아카렌가가 임대ㆍ관리하고 있다.

(주)요코하마아카렌가는 초기엔 요코하마 지역 기업인 맥주 회사 ‘기린’이 많은 지분을 가지고 참여했지만, 현재는 ‘삿포로’와 ‘미츠비시’ 등 여러 기업이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

새롭게 탄생한 아카렌가 창고로 미나토미라이21지구는 대관람차 등 놀이기구가 있는 코스모월드, 요코하마 시내 전망을 볼 수 있는 랜드마크타워와 대형 쇼핑몰 등이 결합해 요코하마의 관광 중심지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아카렌가 창고에만 관광객 650만명이 방문했고, (주)요코하마아카렌가의 매출액은 470억원이 넘었다.

(주)요코하마아카렌가 직원인 이시이 토모코(35)씨는 “아카렌가 창고가 창고의 기능을 잃고 나서 시민들의 보존ㆍ활용 목소리가 높았다”며 “‘기린’ 등 지역의 기업들이 지역사회 공헌의 의미로 적극적으로 나섰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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