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인천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활용방안 4. 군산의 개항장 근대문화유산 보존과 활용

자주적 개항, 일제의 수탈로 이어져…치열했던 항일 역사

1899년 5월 1일, 대한제국은 전라북도 군산항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허용했다. 고종이 1898년 5월 26일 군산ㆍ마산ㆍ성진의 개항을 자주적으로 결정한 뒤 1년 여만에 실제 개항이 이뤄졌다. 1897년 개항한 목포항과는 다른 형식의 개항이었다.

당시 고종은 제국주의 열강 간 세력 균형을 맞추고, 상업으로 국가 발전을 이루기 위해 개항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산항 개항은 결국 군산이 일제에 종속되게 하고, 왜곡된 성장을 겪게 했다. 해방 전까지 쌀 수탈과 토지 침탈 등 호남지방 경제의 일제 종속 심화를 초래했다.

일제의 수탈에 맞선 치열한 저항운동도 일어났다. 군산항의 상인들은 옥구군산항민단을 결성해 다양한 항일활동을 펼쳤다. 옥구군산항민단이 세운 금호학교는 1901년 폐쇄되기 전까지 국권회복운동을 펼치는 등, 군산의 대표적 민족교육기관으로 자리했다.

1919년 서울에서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군산에서도 3월 5일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인 전킨 목사가 세운 영명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군산시내로 행진했다. 이 만세운동의 인파는 삽시간에 1000여명으로 늘었다. 3월 29일에는 임피시장에서 장날을 기해 다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군산 노동자와 농민들도 항일운동을 펼쳤다. 부두 하역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노동조합은 1920년대 일제에 저항하며 노동운동을 했고, 일본인 지주의 가혹한 수탈에 맞서 저항한 농민들은 1927년 11월 옥구 서수면 이엽사 농장에서 옥구농민항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개항 이후 군산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들

호남관세박물관으로 활용 중인 옛 군산세관.

개항 후 군산에는 조계지(외국인 거주 지역)가 설정돼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들의 거류지가 형성됐고, 격자형(가로ㆍ세로를 일정한 간격으로 직각이 되게 맞춰 바둑판 모양으로 짠 형식)의 계획도시가 탄생했다.

조선 정부는 개항장 등의 사무를 관리하기 위해 옥구 감리서를 설치했고, 경무서ㆍ재판소ㆍ세관ㆍ우체사ㆍ전신사 등도 설치했다. 일제는 목포영사관 군산분관과 일본우편국 군산출장소 등을 설치했다.

1910년을 전후해 거류지가 모두 매각됐고, 전주~군산 간 도로와 함께 호남선을 비롯한 군산선(철도)이 개통됐으며, 군산항은 1918~1921년에 2차 축항 공사로 확장됐다. 확장 뒤 미곡 가공과 저장ㆍ유통 등을 위한 시설이 건설되면서 개항 당시 설정된 거류지의 외곽까지 시가지가 됐다.

1926년 10월 26일에는 시가지 중심부와 서쪽 해망동 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해망굴을 개통했다. 이어서 1938년까지 4차 축항 공사를 진행하면서 군산 내항 뜬다리와 같은 접안시설과 대형 창고를 건립했다. 이렇게 근대도시로 형성되면서 관공서ㆍ상가ㆍ주거시설 등 근대 건축물이 건설됐고, 이들 중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근대건축문화유산을 형성하고 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현황

군산 내항에 설치된 부잔교.

군산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옛 군산세관 본관 건물이다. 독일인이 설계한 이 건물은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을 수입해 유럽 양식으로 건축했는데,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존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다. 대한제국은 군산항을 개항한 후 바로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했고, 1906년에 인천세관 군산지사를 설립했다. 1908년에 준공한 이 건물은 현재 군산과 호남 일대의 세관과 관세 부과 등의 역사를 알리는 호남관세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고, 1890년 인천에 처음으로 문을 연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현재 근대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건물 뒤편에는 금고로 사용된 창고가 아직 있으며, 금고 안에는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문구로 당시 일본 제18은행의 만행을 알리고 있다.

현재 근대건축관으로 활용 중인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1922년에 완공됐다. 건물 벽과 기둥 등 일부를 과거 그대로 보존하고 노출한 채 건물을 복원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1909년 11월 경성에 있던 본점과 동시에 개업했는데, 처음에는 일본 제일은행 군산출장소를 인수해 조선은행 군산출장소로 출발했다. 1920년 건물과 사택을 짓기 시작해 1922년 완공했다.

이밖에 군산 내항에 들어오는 배의 수출입 화물작업을 위해 수위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부잔교(뜬다리),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1926년 완공한 해망굴, 신흥동에 거주했던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과 농촌 수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100년 된 근대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에 군산의 항일운동사를 알 수 있게 전시한 군산항쟁관, 1913년 신축한 건물로 현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군산지역 최초로 건립된 천주교 본당 건물인 둔율동 성당, 1936년 건립으로 추측되는 군산지역 철도 역사인 임피역사, 1920년대 한식과 일식, 양식이 모두 섞인 독특한 건축물의 형태를 띠는 이영춘 가옥 등이 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 활용

근대미술관으로 활용 중인 옛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군산이 근대문화유산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은 호남관세박물관 옆 8347㎡ 대지에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건립 계획을 세우면서부터다. 지난 2002년 4월 비안도에서 해저유물이 발굴되자, 군산시는 시립박물관 건립 계획을 수립했는데, 근대문화유산이 많은 점을 반영해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건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2011년 9월 문을 연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해양물류역사관, 1930년대 군산 거리를 만날 수 있는 근대생활관, 군산의 독립 운동가를 만날 수 있는 독립영웅관, 기증자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등을 갖췄다.

군산시가 근대건축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계획을 세운 것은 2000년대다. 2001년 등록문화재제도가 도입되면서 개별적으로 관리하던 근대건축유산의 체계적 관리를 시작했다. 개인 소유였던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을 문화재로 등록한 후 시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고,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을 시에서 매입하는 등, 개별적으로 소유ㆍ관리되던 근대 건축물들을 모아 근대역사문화 환경을 조성했다.

경관법 제정으로 2008년엔 군산 경관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도시 전반의 경관 계획과 근대역사문화 경관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그해 군산시 경관조례를 제정했고, 내항지역(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위치)의 근대문화 벨트화 사업과 원도심의 근대역사경관조성 사업을 구체화했다.

군산시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비롯해 근대건축물 8개가 있는 지역을 근대문화벨트로,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동국사 등이 있는 원도심 지역을 군산시간여행마을로 명명했다.

군산시간여행마을에는 일본인 집단거주지역의 가옥을 복원해 체험할 수 있는 숙박시설(고우당과 여미랑 등)을 설치했고, 편의시설로 작은 공원과 근린생활시설을 조성했다.

군산시는 근대문화도시 조성 사업으로 근대역사 체험 공간 조성, 테마거리 조성, 근대건축 문화유산 복원을 추진하며 원도심 지역 근대건축문화유산 정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실태 조사로 근대건축물 170여개가 있는 것을 파악하고 2014년부턴 도시재생사업도 근대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원도심지역 공가에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게 해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이게 지역 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 군산시의 평가다.

최근 문화재청이 도입한 ‘선(線)ㆍ면(面) 단위 문화재’ 등록에 부잔교 등이 위치한 내항 지역 일부가 ‘군산 근대 항만역사문화 공간’으로 예고돼, 곧 이 지역 핵심 시설의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예정이다.

군산시 관계자는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은 일제 수탈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치열했던 항일 역사를 보여줘 호응을 얻고 있다”며 “시간여행마을 등 근대문화유산 활용과 도시재생에 박차를 가한 이후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16년 100만명, 지난해엔 300만명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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