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향한 소통을 찾아서 ⑥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4- <반송사람들>

<편집자주> 지역공동체를 꿈꾸고 일구는 데서 지역 구성원간의 소통 즉, 항상, 정기적으로 뜻과 뜻이 맞닿을 수 있는 대화의 조건을 견고히 구축하는 것은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이 소통하고 지역공동체를 일구는 데서 풀뿌리 매체(=언론)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순│서

1. 지역에서 소통과 풀뿌리매체
2. 인천지역 풀뿌리매체의 현황
3.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1 - 만석신문
4.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2 - 과천마을신문
5.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3 - 공동체라디오
6.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4 - 부산 반송동사람들
7.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5 - 구·군단위 지역신문
8. 지역공동체의 동반자 풀뿌리매체

넉넉하지 않지만 꽤나 유명한 마을, 반송동

▲ ‘희망세상’ 상근자들. 사진 가운데가 김혜정 사무국장이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1·2·3)동은 60~70년대 수정동을 비롯한 부산시 곳곳에서 철거된 판잣집 주민들이 단체로 이주해 정착한 마을이다. 여기에 80년대 후반 임대아파트 단지가 형성되면서 새로 이주한 사람들이 함께 산다. 인구수는 대략 5만명이다.

같은 자치구에 속해 있는 휘황찬란한 해운대하고는 버스로 1시간 넘게 떨어져있다. 반송동은 집값도 높지 않고, 문화시설도 많지 않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이다.

이런 반송동이 전국적으로 꽤나 유명하다. 여러 신문과 ‘박원순의 희망탐사’에서도 이 마을을 소개했다. 전국주민자치센터박람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으며, 지난 3월에는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가 추진하는 ‘살고 싶은 시범마을’로 선정됐다.

철거민 집단 정착지에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마을공동체로 이름을 날리기까지, 그 과정이 어떠했을까? 더구나 마을신문이 있다고 해서 궁금증을 안고 마을공동체를 일군 시민단체 ‘희망세상(옛 반송동사람들)’을 찾아갔다.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식지 <더부러>

▲ 느티나무도서관 입구에는 성금을 기탁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수년 전만해도 반송동은 철거민 집단촌으로 불리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됐다. 주민들 스스로도 이곳에 사는 걸 부끄러워했다.

이 마을이 고향인 고창권(현 해운대구의회 의원)씨가 의대를 졸업하고 내려와 의원을 개업할 때까지 만해도 그랬다. ‘희망세상’의 김혜정 사무국장이 해운대에 살다가 이 마을로 이사 올 때까지 만해도 그랬다.

김 국장에 따르면, 고 의원이 이 마을에 의원을 개업하면서 마을에 변화가 시작됐다. 고 의원은 주민들이 열심히 사는데 삶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주민들을 마을의 주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맘먹었다. 그 뜻에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이 만드는 <더부러>라는 소식지가 있었는데, 이 소식지는 고씨 등이 주민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넓히는 매체의 뿌리가 됐다. <더부러>는 주변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독거노인 등을 지원하고, 그 소식을 후원자들에게 알리는 소식지였다.   

김 국장은 “후원금을 받았으니 어디에 썼는지 보고해야지예. 거기에 고 의원이 제안해 동네일을 조금씩 싣기 시작했어예. 동네일을 싣는데 주부들이 참가했고요, 주부들이 소식지 만드는 일에 함께하다보니 글을 잘 써야겠다는 욕구가 생겼지예. 그래서 글쓰기 강좌를 열었고, 의외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더”

김 국장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활동하려면 근거지가 있어야죠. 그래서 공간(사무실)을 마련했지요.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모였고, 그래서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단체가 생겼습니더”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희망세상’을 만들다

1998년 만들어진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단체 안에 여러 소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가 하면, 마을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6년이 넘으면서 ‘희망세상’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반송동을 넘어 부산 전역으로 회원을 확대했다.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 시절에 운영한 재활용가게인 ‘행복한 나눔가게’는 많은 주민을 만나는 공간이 됐다. 나눔가게 한 귀퉁이에는 4~5평 규모의 어린이도서관도 있었다. 이 도서관은 지난해 10월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건립한 ‘느티나무도서관’의 씨앗이 됐다. 나눔가게를 들르는 주민들이 좁은 도서관을 보고 ‘우리 지역에도 아이들이 맘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기적의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단체 운영진은 회의를 통해 도서관 건립을 결정하고 주민들의 정성을 모았다.

느티나무도서관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에 도서관 건립에 기금을 낸 3000명의 명단을 볼 수 있다. 4층짜리 도서관 건물 1층에는 허브카페(북카페)가 있어 주부여성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차가 준비돼 있으며, 한 잔에 겨울엔 1000원, 여름엔 얼음 때문에 1500원 정도 받는데, 수익금은 도서관 책 사는 데 쓰인다.

또한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어린이날 행사는 주민 1만명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마을의 큰 잔치가 됐다.
허브카페 운영지기 정화언(여)씨는 1회 어린이날 행사를 보고 반해서 희망세상의 회원이 됐다. 4년 전부턴 단체에서 상근을 한다.

그는 “2년 살고 이사 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벌써 고3이 됐네예.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문화생활이 어려웠는디, 지금은 아이들 데리고 기행 가고 문화생활하고 부족하지 않아예. 청소년 농촌체험도 있고, 리더십캠프도 있고, 좋은 아버지모임에서 다양한 체험도 진행합니더”라고 말했다. 

주민이 만들고 배포하는 신문, <반송사람들>

▲ <반송사람들> 최근 호.
‘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든 후 소식지 <더부러>도 마을신문 <반송사람들>로 변모했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소식지가 아닌 마을신문을 만든 것은 주민들이 마을 일을 알아야 적극 나설 수 있어섭니더. 주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신문에서 하니 주민들이 많이 좋아했어예. 내가 내 이웃이 마을신문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주민들에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더”

그는 덧붙여 “활동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활동하게 되대예”라며, “마을신문이 주민들에게 단체의 활동을 알리고, 주민들이 활동에 참가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더”라고 말했다.

마을신문은 단체가 행사를 벌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단체 활동이 주로 사무실이 있는 반송2동에 집중되다보니 반송1, 3동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단체에서 매년 어린이날 행사를 크게 벌이는데, 마을신문을 내는 단체라고 소개하면, ‘응! 그 신문’ 한다. 신문과 단체, 어린이날 행사가 일치되는 것이다. 

마을신문은 편집부원 10명 정도가 월 초 편집회의, 취재와 기사쓰기 역할분담, 교정교열, 인쇄 등의 절차를 거쳐 한 달에 한 번 발행된다. 한 번에 4000부를 인쇄하는데, 배포는 단체 회원들이 맡는다. 12~13명이 퇴근 후에 모여 신문을 들고 맡은 구역으로 향한다. 아파트는  우편함에 한 집 걸러 넣고, 단독주택과 상가는 모두 배부한다. 재정은 단체 회비와 광고로 충당한다.

지역에서 궁금한 사항은 거의 모두 기사화돼 신문에 실린다. 사람이야기, 단체 소식도 빼놓지 않는다. 최근에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고촌이라는 곳에 폐기물처리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기사를 실었는데, 이를 보고 ‘우리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냐?’는 주민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느티나무도서관’을 건립했는데, 신문에 도서관 소식도 싣다보니 신문을 보고 도서관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한다.

반송의 과거와 현재이자 미래인 <반송사람들>

‘희망세상’ 사람들은 반송동을 공동체마을로 가꿀 수 있었던 것은 운동이라는 개념보단 생활이고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생활 속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오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느티나무도서관 개관도 주민들이 필요로 했고, 주민들이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김 국장은 “공기가 변한다고 하잖아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는 순간 많이 변한 모습이 보이는 것이 성과지예. 정말 소중한 것은 사람입니더. 반송동의 공동체? 다른 지역에서도 일반화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더. 그러기 위해선 그걸 바라는 사람들이 거기에 살아야 하고, 그 동네에서 소비해야 하고, 만나서 교류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더. 2~3년 안에 성과 안 나예. 길게 봐야지예”라고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덧붙여 그는, 주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한데, 마을신문이 큰 역할을 한다며, <반송사람들>은 곧 반송동 사람들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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