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향한 소통을 찾아서 ②

<편집자주> 지역공동체를 꿈꾸고 일구는 데서 지역 구성원간의 소통 즉, 항상, 정기적으로 뜻과 뜻이 맞닿을 수 있는 대화의 조건을 견고히 구축하는 것은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이 소통하고 지역공동체를 일구는 데서 풀뿌리 매체(=언론)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재│순│서 
1. 지역에서 소통과 풀뿌리매체
2. 인천지역 풀뿌리매체의 현황
3.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1 - 만석신문
4.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2 - 과천마을신문, 샘터마을신문
5.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3 - 공동체라디오
6.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4 - 부산 반송동사람들
7. 지역공동체와 풀뿌리매체
사례5 - 구·군단위 지역신문
8. 지역공동체의 동반자 풀뿌리매체


풀뿌리 매체(=언론)란 무엇인가?

지난번 첫 번째 연재에선 ‘지역에서 소통과 풀뿌리 매체’라는 제목으로 공동체 형성의 기본 전제로서의 소통, 그리고 그 소통을 위한 풀뿌리 매체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다. 이번 두 번째 순서에선 인천지역의 풀뿌리 매체의 현황을 살펴보고자한다.

그런데 이에 앞서, 풀뿌리 매체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풀뿌리매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풀뿌리민주주의만이 나올 뿐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풀뿌리민주주의는 민중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대중적 민주주의를 말한다. 아울러 또한 대의제에 기초한 간접 민주주의와 달리 시민운동, 주민운동 따위의 방식을 통해 주민들이 정치 행위에 직접 참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풀뿌리 매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더 살펴보자. 풀뿌리하면 지역 또는 지방을 떠올린다. 그런데 지역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으로 풀뿌리(운동)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한국의 풀뿌리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하승우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가 작성한 글은 이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준다. 일부를 인용했다.

“풀뿌리운동을 공간적 차원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어려움은 이론적 면에서도 존재한다. 지방 혹은 지역이라고 할 때 어느 정도의 규모를 풀뿌리라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히 행정구역 단위나 인구규모만으로 풀뿌리를 정의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공부방이나 놀이터처럼 행정구역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되는 운동도 있고, 지리산권역처럼 여러 행정구역에 걸쳐 진행되는 운동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지역이라는 규모를 물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풀뿌리를 공간적 차원으로 파악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풀뿌리운동을 정의해야 할까? 공간적 차원 외에 많이 쓰는 방법은 풀뿌리를 주체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다. 주민운동의 관점에서 풀뿌리운동을 바라보는 이호는 주민을 ‘권력을 지닌 자나 전문가들로부터 대변을 받아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이끌어가야 할 주체’(이호, 2002)라 명명한다.

그러면서 ‘주민자치운동은 특정한 이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를 통해 평가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기준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는가,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를 과정으로서 개념 지었듯이, 주민자치운동 역시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이호, 2002)고 주장한다.

하승수는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자신의 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규정하고, 중요한 것은 ‘단지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치능력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힘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이고, 주체를 형성해나간다는 것은 풀뿌리운동의 실천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풀뿌리운동의 목적’(하승수, 2006)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풀뿌리운동의 주체를 주민이라 부르지만, 그 주민의 범주를 분명하고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풀뿌리운동을 주체의 문제로 정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풀뿌리 매체 역시 공간적 차원보다 주체의 문제,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파악해야 할 듯하다. 달리 표현하면, 매체가 주민이나 시민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과 의사를 반영하고, 또한 그 과정에 주민 또는 시민이 주인으로 참여할 때 풀뿌리 매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 다양한 실험과 도전 있었지만…

▲ 인천 동구 <만석신문>(위)과 부평구 청천2동 마을신문.
인천은 여느 지역과 다르게 지역색이 거의 없다.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고 서울에 인접해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 지역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풀뿌리 매체가 자리 잡기 위한 바탕이 척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인천에서 풀뿌리 매체에 대한 실험과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 차례에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지만, 전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동 신문’을 10년 넘게 꾸준히 만들었던 동구 만석동의 <만석신문>이 있다. 1996년 창간해 월 1회 발행한 <만석신문>은 최근 발행이 중단된 상태지만, 규모는 작아도 주민의 목소리를 가까이 싣는 ‘동 신문’이 만들어가는 희망찬 공동체의 모습을 그동안 보여줬다.

부평구 산곡동에도 <산곡동신문>이라는 ‘동 신문’이 있었다. 2001경 창간해 산곡동 가가호호에 배포되다 폐간된 지 오래다. 비슷한 시기에 갈산동을 배경으로 <갈월신문>이 한때 발행됐으며, 때를 같이해 연수구 선학동과 서구 석남동에서도 ‘동 신문’ 창간이 준비되기도 했다.

당시 ‘풀뿌리매체에서 희망을 찾는다’라는 주제로 기획 취재를 했던 김정국 전 월간 <아름다운청년> 편집국장은 “당시 <만석신문>은 창간된 지 5년 됐는데, 동 신문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며 “연수구 선학동과 서구 석남동, 부평구 산곡동에서 동 신문을 만들려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덧붙여 “그때 창간하고 지금까지 유지했으면 큰 성과와 함께 여러 가지 평가할 점들이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김정국씨를 통해 인천시라는 광역단위를 범위로 하는 풀뿌리 매체에 대한 모색과 시도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기억 따르면, 그는 2000년 3월경 <인천시민신문> 전 편집장인 이문일씨를 만나 <인천시민신문>에 대해 이야길 들었다. 언론사 기자 출신인 이문일씨는 당시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시민을 위한 바른 신문을 만든다는 보람에 어려움도 잊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결국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약 1년 6개월 정도 발행하고 접었다. <인천시민신문>은 인천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시민사회단체 이야기들을 키워내는 것으로 승부를 걸려고 했다.

구 단위 주간신문도 있다. 연수구의 <연수신문>, 남동구의 <남동신문>, 계양구의 <계양신문> 등이 풀뿌리 지역 언론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수신문>과 <계양신문>은 폐간했으며, <남동신문>은 발행인 등이 바뀐 이후로 풀뿌리 매체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부평신문>이 시민주주 모집운동 등을 통해 창간돼 오는 10월이면 창간 5주년을 맞이한다.

주민자치위 발간 ‘마을신문’ 느는 추세

풀뿌리 매체라 하기에 부족하고, 지향점도 명확하지 않지만 최근에 주민자치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신문’이 늘고 있다. 주민자치위와 주민자치센터 활성화를 위한 기능이 주요하지만, 주민자치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체 형성에 일조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부평구 청천2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김오곤)가 분기별로 발행하는 <살기 좋은 청천2동>은 창간된 지 만 2년이 넘었다. 8명의 편집위원이 만드는 청천2동 마을신문은 한 번에 1만 6000부를 찍어 1만 4000여세대에 통반장을 통해 가가호호 배포하고, 나머지 2000부는 인근 동 상가에까지 배포한다.

창간 배경에 대해 김오곤 위원장은 “주민자치위 활동을 하다 보니 주민자치위가 생긴지 5~6년이 지났는데도 주민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것 같아 설문조사를 했더니 70~80%는 모르더라”며 “여러 활동 소식을 전하면서 그 존재부터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마을신문에 실릴 새로운 소식을 만들어야했고, 결국 주민자치위가 새로운 일을 자꾸 발굴하고 실천하는 효과를 낳았다. 김 위원장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실어줄 때 주민들이 좋아한다. 공단에 입주해 있는 기업과 주민 사이에 소통도 이뤄지고 유대관계도 형성된다”며 “발행횟수를 늘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6월 청천2동 주민 대상 설문조사(표본크기 500명) 결과, 70%는 마을신문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민 70%정도는 주민자치위의 존재는 물론 활동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며, 마을신문이 없던 때와는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부평구 삼산1동에도 마을신문이 있다. 역시 주민자치위원회가 준비해 올해 5월 <삼산1동 사람들>을 창간했다. 4명의 편집인이 분기별로 1만부씩 발행하고 있다.

고정환 발행인은 창간 배경에 대해 “그동안 주민자치센터가 공동체 사랑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단순히 문화프로그램만 개설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동네 공동체 형성의 밑거름이 되고 신명나는 마을 만들기에 초석이 되기 위해 마을신문을 창간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부평구 청천1동 주민자치위원회 등에서도 마을신문 창간을 고민하고 있다.

풀뿌리 매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 필요

언론이 갖는 영향력은 긴 말하면 잔소리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 매체의 주인이 바로 지역민이 될 때 세상은 좀 더 빨리 우리가 원하는 희망찬 공동체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 매체를 만들고 키우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앞서 살펴봤지만 풀뿌리 매체를 지향하는 많은 매체가 탄생했다가 사라졌다. 대부분 인력난과 재정난 탓이다. 풀뿌리 매체라는 지향점을 잃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지역민의 관심과 참여뿐이다.

이와 함께 풀뿌리 매체가 기존 거대 매체가 하는 방식을 쫓다간 망할 수밖에 없다. 단위가 작아질수록 더 생생하게 지역민들의 살림살이, 애환을 잘 잡아낼 수 있다. 동 단위로 생활권과 밀착된 매체, 아파트 단위의 매체가 우위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월간 <아름다운청년> 2000년 3월호에 실린 이문일 전 <인천시민신문> 편집장의 인터뷰 내용은 풀뿌리 매체의 잠재력을 말해준다.

“누구나 자기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는 쓸 거리가 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호응을 얻어가고 자기 지역의 현안부터 시작해서 점점 관심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가야지. 우리 동네, 우리 구, 우리 시, 우리나라. 작은 매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광역적인 문제까지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야. 작은 시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는 법이잖아”

*이 기사의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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