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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인천시가 인천시사편찬원 역할과 정체성 확립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인천시는 오는 13일 오후 2시에 인천시청 나눔회의실에서 ‘인천시사편찬원 역할과 정체성 확립 방안 모색’을 주제로 제25회 인천 역사 학술회의(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인천시사편찬원 설립은 시민이 민선 8기에 제안한 공약이다. 올해는 인천시사편찬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시는 그간 축적한 역사 문화 자료를 관리하고 활용해 인천시 역사편찬 총괄기관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인천시사편찬원 설립 토론회를 진
사회
박규호 기자
2023.09.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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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인천 옹진군(군수 장정민)과 인천문화재단(대표이사 최병국), 인천시립박물관(관장 유동현)이 인천의 섬을 조사·연구하는데 협력키로 했다.인천문화재단 문화유산센터(센터장 정학수)는 옹진군, 인천시립박물관과 ‘섬 조사·연구와 섬마을박물관 조성’ 협약을 한다고 9일 밝혔다.당초 세 기관은 협약식을 9일 옹진군청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 협약으로 대체했다.세 기관은 협약에 의해 매년 섬지역 한곳을 선정해 연구를 진행하고,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다. 주요 협약내용은 ▲도서지역 조사·연구·구술·채록
사회
이서인 기자
2021.12.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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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의 성곽은 궁성, 외성, 중성 순으로 축조사료에 ‘강도중성’은 황성이나 내성에 해당해향토유적 제2호 ‘강화중성’의 성격은 강화도성명칭을 ‘강화중성’ 아닌 ‘강화도성’으로 불러야‘강도중성’ 위치와 범위는 조사해 다시 정해야인천투데이 |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최근 강화군 향토유적 제2호 ‘강화중성’의 서남쪽 구간을 발굴조사 하다가 문지(門址)를 확인했다. 몽골이 전쟁을 끝내는 조건으로 강도의 내성과 외성을 파괴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고려의 강화천도(江華遷都) 28년째인 1259년(고종 46)에 고려 군사들이 성곽을 허물었다. 몽골
해불양수
인천투데이
2020.11.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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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김갑봉 기자 |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정학수 센터장)가 한국전쟁 70년을 기념한 다섯 번째 역사총서 ‘인천과 한국전쟁이야기(글누림 출판)’를 펴냈다.저자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냉전평화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전갑생 연구원이다. 책은 ‘한국전쟁 70년 평화를 묻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인천문화유산센터는 한국전쟁 70년을 기념한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계간 황해문화(새얼문화재단 발간)에 실린 전갑생 선생의 연구논문을 보고, 출간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저자는 19
교양
김갑봉 기자
2020.10.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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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고, 좋은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산을 유람하려는 사람은 천마산과 성거산 경치부터 찾아본다는데, 그 이유는 “더할 수 없이 높고 커서 만물이 나란히 할 수 없는 것을 천(天)이라 하고, 더할 수 없이 신령스럽고 조화로워서 그 공이 천(天)과 견줄 수 있는 것을 성(聖)이라 한다. 천하에 천과 성보다 존엄한 것이 없는데, 두 산이 천과 성으로 이름을 삼았으니 뭇 산과 다를 것은 따져보지 않아도 분명
칼럼
인천투데이
2019.12.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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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올해는 고려가 개성에 도읍을 정한 지 1100년이 되는 해다. 왕건은 42세 때인 918년 6월, 궁예를 몰아낸 후 철원성 포정전(布政殿)에서 왕위에 올라 ‘고려’를 열었다. 이듬해 정월에는 자신의 고향이자 세력 근거지인 송악군으로 도읍을 옮겼다. 당시 송악은 철원보다 해상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선전됐다.왕건은 도읍이 위치한 군현의 행정 편제와 명칭도 고쳤다. 신라 때 송악군의 치소(治所)에 도읍을 두면서도 군현 조직을 개편해 인근 개성군도 관할 영역에 포함했기 때문에, 그 지위는 군(郡)보다 높
칼럼
인천투데이
2019.09.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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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자랑하는 꼴만 봐서야 되겠는가?” 「동국여지승람」편찬에도 참여한 조선 전기 문신 유호인(?好仁, 1445∼1494)은 32세 때인 1476년(성종 7년) 가을 채수ㆍ허침ㆍ권건ㆍ 양희지ㆍ조위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됐다. 이들은 삼각산 장의사에서 책을 읽다가 다음해 늦은 봄에 개성 유람을 기약했다.하지만 약속한 날짜에 유호인과 양희지는 갑자기 일이 생겨 같이 가지 못했다. 채수 등이 3월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간 개성 유람을 마치고 돌아와 시 100여 편을 지었노라고 자랑하자, 유호인은 양희지에게 “저 친구들
칼럼
인천투데이
2019.06.17 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