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강화 유적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제고 방안 ⑥ 등재한 곳에서 배운다-백제역사유적지구

<편집자 주>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역사문화 유적이 많다. 인천시는 강화의 역사문화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기본계획을 지난해 11월 수립했고, 올해 1월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세부추진계획을 수립,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강화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대상은 관방유적(진ㆍ보ㆍ돈대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진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인천시민은 많지 않다. 이에 <인천투데이>은 추진 상황은 물론 세계유산 등재의 목적과 의의, 세계유산 선정 기준과 절차 등을 보도해 시민 관심도를 높이고자 한다. 아울러 현재 국내에선 서울 한양도성, 한국의 서원 등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타 지역의 사례를 취재해 강화와 비교해보고,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등의 등재 추진과정과 등재 후 관리방안 등을 취재해 강화 유적의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등재 후 관리방안 등 향후과제도 살펴보고자 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기획취재] 강화 유적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 제고 방안

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가치 재창조
② 강화 유적 세계유산 등재 추진, 어디까지?
③ 강화 해양관방유적의 역사ㆍ학술적 가치(상)
④ 강화 해양관방유적의 역사ㆍ학술적 가치(하)
⑤ 등재한 곳에서 배운다-남한산성
⑥ 등재한 곳에서 배운다-백제역사유적지구
독일 본(Bonn)에서 열린 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 7월 4일 ‘백제역사유적지구(Baekje Historic Areas)’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세계유산위원회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 교류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 백제의 내세관ㆍ종교ㆍ건축기술ㆍ예술미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특출한 증거라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전반적인 관광 관리 전략과 유산별 방문객 관리계획을 완성하고, 공주 송산리ㆍ부여 능산리 등의 고분 안에 있는 벽화와 내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 주기를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나라 외교부와 문화재청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우리나라 고대국가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새롭게 조명될 기회가 될 것이며, 관광 활성화와 더불어 우리 문화유산의 세계화와 문화강국으로서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해 남한산성 등재 이후 1년 만에 달성된 것으로, 이로써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총12건 보유하게 됐다.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 증거
문화 전통·문명의 특출한 증거

▲ 부여 정림사지.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 5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ICOMOS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에 대한 평가 결과보고서’를 ‘등재 권고’로 해 5월 초 유네스코에 제출했던 것이다. ICOMOS는 민간 전문가 기구로서, 세계유산 등재 신청 유산에 대한 신청서 심사와 현지 실사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기술적 요건의 충족 여부를 심사하고, 등재 가능성을 판단해 평가 결과보고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ICOMOS의 평가 결과보고서를 보면,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 등재기준 열 가지 중 두 가지를 충족했다. 등재기준 (ii)와 (iii)인데, (ii)은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 계획 등에 있어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이고, (iii)은 ‘문화적 전통 또는 문명에 관한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한국ㆍ중국ㆍ일본의 고대 왕국들 사이의 상호교류로 백제가 이룩한 건축기술 발전과 불교 확산을 보여준다는 점 ▲수도 입지 선정, 불교 사찰, 성곽과 건축물의 하부구조, 고분과 석탑을 통해 백제의 역사ㆍ내세관과 종교ㆍ건축기술ㆍ예술미를 보여주는 유산이자 백제의 역사와 문화의 특출한 증거라는 점 등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효과적인 법적 보호 체계와 보존 정책을 비롯해 현장에서 체계적인 보존관리로 유산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은 요인이 됐다.

따로 또 같이, 등재추진단 공동 설립

▲ 공주 공산성.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 공산성ㆍ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ㆍ부소산성ㆍ능산리 고분군ㆍ정림사지ㆍ나성, 익산 왕궁리 유적ㆍ미륵사지로 구성됐다. 유적이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 전라북도 익산에 분포해있다 보니,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충청남도와 공주시ㆍ부여군, 그리고 전라북도와 익산시 등 지방자치단체 5개와 문화재청이 서로 협력하고 보조를 맞췄다.

이를 위해 2012년 5월, 다섯 개 지자체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라는 재단법인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2010년 1월, ‘공주ㆍ부여 역사유적지구’와 ‘익산 역사유적지구’가 별도로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1년 4개월 만에 둘을 통합해 하나의 유적지구로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본격화한 것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추진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전에 시작됐다. 1994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을 잠정목록으로 등재했다.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뒤 2006년 7월 충청남도 도지사로 취임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백제의 왕도인 공주ㆍ부여의 유적을 세계유산에 등재시키자’며 시책사업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잠정목록 등재를 위한 학술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익산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목적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그렇게 둘은 따로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2011년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 대상을 정하면서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둘을 통합할 것을 권고했고, 다섯 개 지자체는 이를 따라 2012년 문화재청과 협약을 체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설립된 것이다.

“내가 발견한 가치 세계인이 공감해줘”

▲ 송산리 고분군.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의 이해문(47ㆍ학예사) 팀장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이 한마디로 ‘피 말리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등재 신청서(국문)를 새로 작성한 것을 들었다.

“등재신청서(국문) 작성을 위한 용역(기간 2012.5.~2013.8.)을 발주한 뒤 납품을 받았는데, 한마디로 탐탁하지 않았다. 백제역사유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게 썼다. 일반적 수준의 교양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하는데, 보편적 가치보다 탁월한 가치에 치우쳐 작성했다. 백제역사유적을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이게 왜 세계유산이 돼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세계유산 등재를 미뤄야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2013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등재신청서 보완 작성을 이 팀장이 직접 맡았다. 2013년 9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에 그를 파견한 것이다. 그는 2007년 말 부여로 발령을 받았고, 2008년 초 부여로 가 백제역사체험단(현 백제문화단지)에서 궁궐 복원 등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에 파견될 때 ‘거짓말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없는 이야기 지어서 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내 새끼(=문화재)를 내가 예뻐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그대로 전달하면 가치를 부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발견한 가치를 세계인들이 공감해줬다는 것에 감사하다”

등재신청서를 작성할 때 유의할 점을 물었다. 이 팀장은 “추측이나 가능성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사실을 가지고 작성해야한다. 추상적 표현도 삼가야한다. 또한 비교ㆍ연구가 필수다. 먼저 이미 등재돼있는 것과 비교해 탁월한 점을 찾아야한다. 남한산성을 보면, 산성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아이콘이다. 여러 산성이 있는데, 남한산성이 탁월하다는 것은 ‘행궁’ 덕분이다. 국가의 중심인 왕이 거처했던 행궁이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점이 있을 경우엔 우리가 뛰어나다는 증거를 찾아야한다. 그 다음에 잠정목록과도 비교ㆍ연구해야 한다. 우리나라 유적은 대부분 보존 상태(condition)가 양호하다. 문제는 관리이다. 과도한 복원은 문제가 된다. 이게 진정성 문제다. 탁월성은 문헌(서류) 심사로 평가하고, 진정성은 현지 실사로 평가한다. 현지 실사 평가항목 8개 중 5개 정도는 좋다는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없는 문화재는 의미가 없다”

▲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마지막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남한산성의 경우 산성 내 마을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다. 각종 개발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익산의 유적들은 도심과 많이 떨어져있고, 공주와 부여는 시가지에 위치해있다. 이미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있어, 규제 문제는 거의 없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고 해서 추가로 규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1000여년 전 왕도 민의 후예로서 당연히 보존해나가야 한다’는 주민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많은 주민이 알고 있었고, 많이 도와줬다”

7월 29일 오후 부여를 방문했을 때, 곳곳에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한 식당 주인은 등재 이후 방문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끝으로 문화재 보전ㆍ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이 없는 문화재는 의미가 없다. 죽어버린 것과 같다. 그래서 함께 보존하고 가꿔나가야 한다는 주민의식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문화재로서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세계유산을 보존ㆍ관리하는 데 주민 일자리 창출을 연계할 계획이다”

한편,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의 현재 인력은 11명이다. 이중 7명은 각 지자체에서 파견한 공무원이다. 원래 공무원은 5명이었는데, 등재를 신청한 올해 업무가 많아 2명을 추가로 배치했다. 올해 예산은 경상비와 사업비를 합해 약 16억원이다.

▲ 능산리 고분군.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 나성.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 익산 왕궁리 유적.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 미륵사지. <사진제공·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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