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ㅣ지난 4일 인천 연수구 소재 한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에서 일하던 장애인 활동가이자 민주노총 다같이유니온 조합원 A(52)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장애인을 위해 일하던 사람이 정작 장애인지원기관에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A씨의 유족과 다같이유니온 등이 구성한 A씨 사망대책위는 장례 절차를 중단하고 시신을 인천적십자병원 영안실에 안치 중이다. 유족과 대책위는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 인허가와 관리감독 기관인 인천시와 연수구에 엄정한 후속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준엄한 문책으로 A씨의 극단적인 선택에 억울함이 없게 해야 한다.

A씨는 4일 오전 10시께 자신이 활동지원팀장으로 일하던 기관이 입주한 인천 연수구 소재 건물 8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A씨는 투신 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투신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알리는 “대표의 괴롭힘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이렇게 떠나서 정말 미안하다”는 유서를 가족에게 남겼다.

A씨 사망 후 고인의 유가족이 고인의 휴대폰에서 찾은 두 번째 유서엔 “단체 이사 C씨가 9월 25일에 그만두지 않으면 이사회를 열어 형사고발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제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다.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A씨가 조합원으로 활동한 민주노총 다같이유니온과 유가족은 A씨가 사망한 다음날인 지난 5일 대책회의를 열고, 장례절차 전면 중단을 결정하고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기 전까지 A씨의 시신을 인천적십자병원에 안치하기로 했다.

유족과 대책위가 지난 6일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남편 B씨는 “A씨가 그 동안 직장에서 심한 괴롭힘을 받았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해 허망한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통탄한다”며 “A씨의 시신을 인천적십자병원에 안치한 채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황윤정 다같이유니온 위원장은 “‘장애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한다고 명시한 이 단체는 한 노동자를 지속적인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단체 설립 취지를 역행했다”고 비판했다.

A씨는 하반신마비 장애가 있으며, 지난해 11월부터 해당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에서 활동지원팀장으로 일했다. A씨는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게 아니다. A씨는 주안공단에서 라이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부도로 실직했고, 계양구에 있는 문서파쇄기 공장에서 일하다가 노동운동 때 겪은 트라우마로 하반신 마비를 앓게 됐다.

A씨는 자신의 장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장애인이 된 사실을 받아들이고 당사자 운동인 장애인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을 돕고,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단체와 기관에서 일했다.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일하다가, 그것도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기관에서 ‘대표 와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을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A씨는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그러다 장애인이 돼서는 장애인의 권리 확대와 차별철폐에 맞섰다. 그런데 정작 장애인 권익을 지원하는 기관은 A씨를 사지로 내몰았다. 장애인을 돕는다는 곳이 A씨에겐 이승에선 투신해야 벗어날 수 있는 지옥이었던 셈이다.

A씨의 사망이후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왜곡된 부분이 있기에 몇 가지 객관적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고 했다.

그 대표는 “본인은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고인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준 사실이 없고 업무환경을 악화시킨 적도 없습니다. 다만, 업무상 미숙한 부분이나 잘못한 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때론 주의를 준 사실은 있다. 이 번 상황에 대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고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는 객관적 조사를 통해서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진작에 조문을 하려고 했지만 유가족의 거부로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표이사로서의 거취는 모든 조사가 끝난 후 밝히겠습니다.”라고 했다.

자신은 괴롭힌 적이 없고, 다만 업무상 미숙한 부분이 있어 주의 정도만 줬다고 했다. A씨는 이 기관에서 일하기 전에도 다른 장애인단체와 기관에서 일하며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었다. 업무상 주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은 책임 회피나 다름없다.

설령 업무상 미숙함이 있어 주의를 줬더라도 A씨가 남긴 두 번째 유서에 “단체 이사 C씨가 9월 25일에 그만두지 않으면 이사회를 열어 형사고발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제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다.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주의 정도가 아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관의 반인륜적인 행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A씨가 사망한 다음날인 지난 5일 이 장애인활동서비스지원기관은 A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채용 공고를 했다. 발인하기도 전에 채용공고를 냈다.

이를 두고 민주노총 다같이유니온 위원장은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운운하며 공동장례를 제안한 지 하루 만에 본색을 드러내고 인륜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엄정한 수사로 진실을 규명하고, 수사결과 이후 인천시와 연수구는 준엄한 행정처분으로 A씨의 억울함을 풀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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