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동자가 만드는 맛있는 빵과 건강한 사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오연춘 수도권지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김영숙 시민기자 | 파리바게뜨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기업이 생산한 빵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자발적 불매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38) 파리바게뜨(이하 파바) 지회장과 오연춘(48)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수도권지부 조직국장을 만났다. 이들은 맛있는 빵을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게 사측의 부당한 노동행위에 맞서 7년째 싸우고 있다.<기자말>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파리바게뜨와 인연, 알바 그때도 불법파견

어릴 때 백수가 꿈이었다는 임종린 지회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업을 확장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했다. 그 식당에서 임 지회장도 설거지를 했다. 생애 첫 돈벌이였다.

대학 1학년 때 했던 아르바이트는 홈플러스 매대에서 전화기를 파는 일이었다. 그때도 파리바게뜨와 마찬가지로 불법파견 업무였다. 맥줏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던 임 지회장은 대학 친구의 권유로 다단계 판매에 빠지기도 했다.

“일주일 교육만 들으면 된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친구의 돈을 빌려 빚까지 지게 됐다. 친구가 일본 유학을 준비한다고 해 갚아야 했다. 돈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2006년 인천 서구청점에서 일을 시작한 임 지회장과 파리바게뜨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같이 일하던 제빵기사의 추천으로 서울에서 면접을 본 후 바로 12주 교육을 받고 인천 서구의 한 매장으로 배치됐다. 2007년 계약서를 작성했고 10년 뒤 파리바게뜨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내 인생의 비상구, 노동조합

같은 매장에 근무하던 남자 제빵기사가 임 지회장보다 입사가 늦었는데도 중간관리자가 됐다.

“노력했던 게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도 안 잡더라.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곳이다. 그럴 즈음 수당 문제가 발생했다.”

임 지회장은 2014년부터는 교육지원 기사로 근무했다. 신입 제빵기사가 매장에서 일할 수 있게 교육하는 업무였다. 그런데 지회장이 교육했던 신입기사 중 두 명이 각각 퇴사와 점포 이동을 해 교육수당으로 신입기사 각각 1인당 5만원씩, 10만원을 지회장한테서 빼갔다. 연장수당도 없이 늦게까지 교육하고 사비로 신입기사를 챙긴 적도 많았는데 본사의 일방적인 행태에 화가 났다. 2017년 4월, 무료로 상담하는 곳이 있대서 찾아간 곳이 정의당의 ‘비상구(비정규 노동 상담 창구)’였다.

“정의당 비상구 노무사랑 연락하다가 이정미 전 국회의원 정송도 보좌관을 만났더니 화를 내더라. 문제가 많았는데 왜 참았냐는 거였다. 다른 직원한테도 설명하고 싶다면서 10명 모을 수 있냐고 하더라. 10년 일했는데 그 정도로는 자존심이 상해서 50명 모으겠다고 큰소리쳤다.”

2017년 8월 17일 설명회에 42명이 참석했다. 8명은 본사에서 임종린이 부르는 곳에 가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먼저 승진한 중간관리자에게 노조 설립 1주 전, 정의당에 찾아간 게 자신이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게 회사에 전달돼 사측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비상구 방문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노조가 결성됐다. 그것도 전국에 흩어져있는 조합원들 대상으로 말이다. 산별노조의 힘일까? 오연춘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조직국장의 얘기다.

“파바 지회 몇 개월 전 대기업 패밀리 레스토랑 한 곳에서 임금체불 관련 문의가 들어왔다. 싸워서 돈은 받았지만 성과가 남지 않았다. 화섬식품노조 간부들과 얘기하면서 답은 노조 설립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이정미 국회의원실 정송도 보좌관이 불법 파견, 임금 체계 문제 등을 설명하고 바로 노조 결성식을 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 노조에 가입했다. 지회장으로서 임종린의 삶이 시작됐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오연춘 수도권지부 조직국장(오른쪽)과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오연춘 수도권지부 조직국장(오른쪽)과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멀고 험난한 사회적 합의

고용노동부는 불법파견이라며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라고 했다. 하지만 본사는 ‘해피파트너즈’라는 합작회사를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직고용 포기각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노조는 2017년 11월 처음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난 후, 인천공항공사가 자회사를 언급했던 게 모델이 됐다. 정규직을 요구한 건데 회사의 탄압으로 조합원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자회사안을 받아들였다.”

사측은 불법파견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처분한 과태료 500억원을 내야 했다. 회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합작회사(PB파트너즈)를 제안했다. 2018년 1월 양대 노총과 정의당과 민주당, 파리바게뜨 본사,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협의회, 시민사회단체대책위 등 7개 단위가 사회적 합의를 했다. 핵심 내용은 제빵·카페 기사의 노동조건을 3년 내 본사 수준으로 맞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무교섭에서부터 난항이 계속됐다.

“근로계약서 쓰는 것부터 문제였다. 해피파트너즈 때 있던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같은 회사니까 안 써도 된다고 우겼다. 합의 중에 가장 쉬운 근로계약서 문제조차 해결이 안 됐다.”

파리바게뜨 노조는 사회적 합의 1년만인 2019년 1월 다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를 위한 농성은 그해 초여름 6월까지 이어졌다. 사측은 노조 사무실을 제공해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개월 만에 SPC 계열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한남동 건물 앞에서 다시 농성을 시작했고 회사는 농성 40일 만에 약속대로 노조 사무실을 제공했다.

2021년 4월 본사는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 선포식을 했다. 화섬식품노조는 반발했다. 관련 자료를 요구했지만 거부한 채 이행했다는 일방적 주장만 반복했다. 더 큰 문제는 사측 관리자들이 불법으로 파바 노조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제보가 많았다. 민주노총 탈퇴시키면 1만원, 한국노총 가입시키면 1인당 5만원 수당을 책정해 지급했다고 관리자가 증언했다. 그해(2021년) 7월 다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오연춘 조직국장의 말이다. 조직국장은 그 투쟁이 2022년 단식투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달에 200명까지 탈퇴서가 들어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몇 년째 천막농성이 반복되지만 투덜대지 않고 재밌게 투쟁을 만드는 파바 지회 간부들에 대해 오 국장은 애정이 남다르다.

“노조 활동이 처음인데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 처음이어서 힘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징징거리지 않았다. 화섬의 다른 간부들도 ‘노조 설립 초기 조합원들이 있어 지금까지 투쟁할 수 있었다’고 칭찬한다. 투쟁은 힘들지만 모여 있으면 항상 깔깔대고 웃는다.”

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수도권지부 오연춘 조직국장
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수도권지부 오연춘 조직국장

산별노조의 힘

파바 임 지회장은 산별노조 화섬식품노조가 없었으면 이렇게 투쟁할 수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 시작할 때 정보도 없고 노조를 조직할 돈도 없었다. 고용노동부에 전화해서 불법파견인 거 같다고 하니까 회사랑 잘 대화해서 풀어보라고 하더라. 노조 설립하고 산별노조에서 대응하니까 고용노동부가 움직였다. 90% 이상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오연춘 조직국장은 파바 지회 건설과 투쟁의 산증인이다. 초창기 지회 간부들은 오 국장을 ‘마더’라고 불렀다.

“뭘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엄청 잘 챙겨줬다. 귀찮은 게 아니라 어떻게 엄마처럼 저렇게 할 수 있나 감탄했고 많이 의지했다.”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있었냐고 짓궂게 묻자 재밌는 일화를 들려줬다.

“목소리가 엄청 크다. 노조 결성했던 해 수도권지부 대표자 송년회가 있었는데 오 국장이 인사하러 오라고 했다. 위치를 잘 몰라 약속 장소 주변을 헤매고 있을 때 빌딩 어딘가에서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서 찾아갈 수 있었다. 민주노총 집회가 끝나고 방송차 안내로 거리행진을 한 적이 있다. 스피커와 마이크를 장착한 방송차 3대가 있었다. 오 국장은 1호차 안내를 했고 나는 3호차를 따라 행진을 했다. 그런데 3호차 안내자 목소리는 안 들리고 1호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오 국장 혼자 방송해도 되겠다고 했다. 뭔가 뚫고 나오는 목소리다(웃음)”

민망함을 감추려 웃어젖힌 소리가 임 지회장의 증언이 사실이었다는 걸 방증했다. 오 국장은 산별에 있으면서도 파바 투쟁으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젊은 조합원의 정서와 감각이 앞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도 했다.

“가입 대상이 국내 각지에 흩어져있다 보니 현장을 다 방문하는 게 불가능했다. 온라인 가입을 제안했는데 가능하더라. 온라인 가입은 파바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신규 노조 조합원 가입을 이 방법으로 많이 한다. 온라인 활용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많이 배웠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수도권지부 오연춘 조직국장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수도권지부 오연춘 조직국장

오 국장은 긍정적 에너지가 많은 파바 간부들이지만 볼 때마다 안쓰럽다고도 했다. 산별 간부로서 다른 사업장의 조합원도 많이 만났을 텐데 파바 간부들의 특별한 점은 무엇이었을까.

“초창기 간부들은 모두 일을 했다. 일 끝나고 밤늦게까지 회의하고 새벽에 출근해야 해 그냥 헤어질 때가 많았다.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빨리, 급하게, 많이 먹더라. 일할 때 못 먹는 경우가 많아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는다는 거다. 공기밥 하나로 나눠 먹자고 하면 ‘왜요?’라고 되묻는다. 여자 손님이라고 ‘여자밥(적은 양)’을 주는 식당에 가면 막 뭐라고 한다.”

오 국장의 말에 임 지회장이 덧붙인다.

“우리끼리 식당에 가면 내가 ‘메뚜기 떼’라고 부른다. 노조 초기에 돈이 없어 상급단체에서 많이 사줬다.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많이 먹는다. 눈치 보여서 그만 먹으라고 했더니 지회장이 못 먹게 한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이르더라(웃음)”

나비효과

오 국장은 파바의 ‘나비효과’를 강조했다. 파바 투쟁 이후 화섬식품노조에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 국내 플랫폼산업을 대표하는 IT 기업의 젊은 노동자들이 IT노조를 많이 조직했다.

“네이버 지회장이 ‘그것은 알기 싫다’라는 팟캐스트에서 파바 노조 소식을 듣고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타투 노조 등 젊은 직원이 많은 곳에서 정의당과 화섬식품노조에 많이 찾아왔다. 파바의 나비효과라고 생각한다.”

파바지회는 다른 직종 내 노조 건설뿐만 아니라 연대 투쟁에서도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임 지회장은 지난해 3월 23일부터 53일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노조 탈퇴 강요에 대한 사측의 사과와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를 위해서였다. 단식 때 많은 연대와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있었다. 시민들의 연대에 큰 역할을 했던 게 ‘단식일기’였다.

“조합원들 보라고 시작했다. 암만 열심히 써도 안 읽어서 간단하게 그림으로 보여주려 했던 건데 반응이 좋았다. 조합원들만 보기에 아깝다고 해서 SNS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기억나는 연대 투쟁 중 닉네임이 ‘슈가루’라는 트위터 운영자의 사연을 들려줬다.

“누군가 스티커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과 그림이 담겼다. 답신을 보내 감사하다고 했더니 예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베풀고 싶다고 했다. 단식일기에 멀리서 응원하지 말고 가까이서 응원해달라는 내용을 보고 가까이서 응원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사실 조합원한테 했던 말이었다.”

농성장 주변에서 시민촛불 문화제와 민주노총 집회가 열렸다. 근처 오피스텔에서 ‘집값 떨어진다. 화섬식품노조 물러가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그걸 보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종이와 펜을 준비해 ‘돈보다 생명’이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붙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15일 평택 소재 SPC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설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진 후 국민들의 불매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화섬식품노조 임종린 파리바게트 지회장이 단식투쟁에 들어갈 당시 모습.
화섬식품노조 임종린 파리바게트 지회장이 단식투쟁에 들어갈 당시 모습.

여전히, 민주노조

최근에 제빵·카페기사 1000여 명이 감원됐는데 신입사원 충원도 없다. 이유가 궁금했다.

“불매운동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맹점주들이 기사를 내보내고 본인이 기술을 배워 빵을 만든다. 예전에는 본사에서 통제했는데 지금은 안 한다. 점주가 고용하지 않아도 본사와 고용관계는 유지된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일하는 직원을 다른 지역으로 가라고 하면 갈 수 있나? 회사에서 월세를 지원한다지만 그런 조건에서는 일 못한다. 요즘 노조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민원이 직장 그만뒀을 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기사들이 전국에 5000명 정도였는데 최근에 4000여 명으로 줄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을 못 찾겠다.”

임 지회장의 어려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8일 다시 경기도 성남 소재 SPC 계열 샤니 공장에서 50대 여성노동자가 반죽기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틀 뒤 노동자가 사망했고 다음날 정의당 국회의원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지만 샤니 대표이사와 한국노총 소속 노조 위원장이 막았다. 사고 현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다.

“진상을 촉구하는 우리에게 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동료의 죽음을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고 한다. 소수의 인원이라도 민주노총 조합원이 있었으면 달랐을 것이다.”

언제쯤 돼야 파리바게뜨의 치즈케이크를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분간 동네빵집을 이용하더라도 이들의 투쟁을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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