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강수진 길병원지부장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김영숙 시민기자 |

사람의 사회 관계는 노동하는 데서 시작하고, 모든 재화와 서비스는 노동이 만듭니다. <인천투데이>가 노동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노동 현장에서 연결되고 어우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그래서 ‘노동하는 우리는 같이’입니다. 월 2회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약속 장소인 노조 사무실 앞에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도 강수진(53,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장) 씨와 정진희(48,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전 조직국장) 씨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정진희 전 조직국장은 강수진 지부장이 길병원에 다시 민주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투쟁할 때 함께 했다. 정 전 국장 손엔 김밥이 담긴 검정 봉투가 들려있었다. 지하 1층 길병원노조 사무실로 들어가자 강수진 지부장과 정 전 국장이 과자와 음료수를 주섬주섬 챙긴다. 늘 사람을 챙기는 품성이 몸에 밴 듯했다.

인터넷 공동체, 폭발적인 직원들 반응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는 2018년 7월 결성됐다. 2017년 12월, 당시 건물을 관리하던 시설관리팀 직원들이 일반직에서 감시단속직으로 일방적으로 업무가 변경됐다. 고용이나 급여 등 노동조건도 나빠졌다.

노조결성을 고민하던 직원 몇 명이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를 방문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999년 길병원에 민주노조 건설을 추진했던 사람 중 한 명을 소개했다. 그 사람이 바로 현재 강수진 지부장이었다.

1999년에는 길병원에 노조가 없었다. 노조 게시판도, 조합원도, 노조 총회를 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었다. 1997년 대학을 졸업한 강수진 지부장은 그해 길병원에 입사했다. 당시 민주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민추)에 뒤늦게 합류했다. 노조 결성 때 부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강수진 지부장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강수진 지부장

“작전명이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8월 25일 노조를 설립하고 신고했으나 신고증이 반려됐다. 관할 구청과 사측이 짜고 유령노조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기존 노조가 있다는 게 반려한 이유였다. 조합원 명단에 있는 직원은 자기는 가입한 적 없다고 하고 위원장도 자신이 위원장인지 몰랐다고 했다. 우리는 노조 설립 대신 기존 노조 가입을 시도했고 조합원 자격을 두고 1년 넘게 싸웠다.”

시간이 흘러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가능하게 노동법이 개정됐다. 1999년 때처럼 기존 노조가 있다고 노조설립이 반려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노민추에 함께한 회원들은 퇴사하거나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여전히 직원을 위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반면, 2018년 당시 1000명 넘는 직원이 소통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공개 단체 대화방)이 생겼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연일 대화창은 뜨거웠다.

“부서장의 ‘갑질’ 폭로부터 내부비리 등 그동안 말하지 못 했던 길병원 내 온갖 부당한 내용이 쏟아졌다. 누군가 얘기를 시작하면 ‘우리 부서도 그렇다’며 서로 공감해주니까 더 많은 얘기가 오갔다.”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지역본부 조직국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느 부서 전화번호를 묻는 등 작은 질문에도 바로 답이 왔다. 출·퇴근할 때 비가 오면 우산 챙기라고, 어느 지역에 사고가 났다는 둥 여러 소식을 공유했다. 퇴근할 때 야경을 찍어 올리는 직원도 있었는데 정서적인 교류까지 가능한 인터넷 공동체였다.”

길병원 직원들의 단체 채팅방은 노조 결성과 파업투쟁 때 더욱 강한 힘을 발휘했다. 노조 홈페이지가 없어서 채팅방에 소식지나 노조 가입서를 올리면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강 지부장 등 다시 민주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이들이 출력해서 홍보하거나 노조가입을 권유했다. 그러고 나면 ‘노조 간부가 우리 부서에 금방 다녀갔다’며 실시간 현장 분위기가 채팅방에 그대로 전해졌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 노조 설립에 대한 직원들의 열망은 뜨거웠다. 그러나 정작 강수진 지부장은 본인이 노조 지부장을 하는 게 맞지 않다고 했었다.

“기존 노조와 차별화를 하려고 우리 노조를 새노조라고 불렀다. 이름처럼 새로운 사람이 지부장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날 보면 옛날 일들이 떠오를 텐데 좋을 거 같지 않았다.”그러나 정진희 전 조직국장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처음엔 노조의 틀을 잘 잡아야 할 때라 사측 타협에 안 통하는 강직한 사람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병원 측의 부당노동행위로 노조 탈퇴서가 엄청 들어왔다. 간부들이 열 받아 있을 때였다. 지부장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 네. 우리 윗집에서 불났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봤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웃기는지 강 지부장과 정 전 국장은 한참 웃었다. 그러더니 강 지부장의 별명이 ‘강 투사’라는 팁을 주기도 했다.

1999년, 길병원에서는 노민추 회원들을 쫓아내기 위해 교수와 수간호사가 그들에게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수시로 부서이동을 시켰다. 그때 길병원에서는 ‘사람을 자르지 않는 대신 그만두게 만든다’는 말이 돌았다.

길병원 사측은 당시 강수진 간호사를 인천에서 철원으로 발령을 냈다. 강 지부장은 출근을 거부했다. 자신이 그만두지 않으면 자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출근 거부투쟁을 하고 나니 사측이 ‘3개월 근무하면 다시 인천으로 부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20년 후 노조 지부장으로 살아 돌아왔으니 병원 측에서는 불사조라고 놀랐다.”

정 전 조직국장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한 강 지부장은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병원에 돌아왔더니 사람들이 말을 안 시키더라. 연차가 한참 올랐는데 후배한테 선임을 맡게 하고 나를 경력자로 대우하지 않았다. 가장 열 받는 것은 밤 근무를 혼자 시켰다는 것이다. 나이트(야간) 근무가 끝나고 수간호사랑 싸웠다. 능력이 없어서 선임을 안 시키는 거면 나이트 때 능력이 안 되는 거니까 사람 더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같은 부당한 대우는 노민추 회원들을 그만두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2018년 9월 가천대길병원 노조 파업 당시 모습.
2018년 9월 가천대길병원 노조 파업 당시 모습.

파업하는 지금이 가장 자랑스럽다

2018년 초. 다시 민주노조를 설립하고 몇 달 후 길병원지부는 파업에 돌입했다. 선언적 파업이 아니라 실제로 병원에서 노동자가 일을 멈췄다. 여러 병원 파업을 경험했던 정 전 국장도 그때가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라고 했다.

“보통 병원에서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병동별로 순차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길병원지부는 몇 날 오전 7시에 파업을 시작한다는 지침을 내리자 조합원들이 현장을 싹 비우고 나왔다. 파업 장소인 병원 로비로 집결하라고 했지만 얼마나 내려올까 조마조마했다. 그때 조합원들이 몰려오는 장면을 봤는데 그때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로비에 사람들이 불어나면서 오픈 채팅방에 글도 늘었다. 야간 근무 끝나고 합류하려는데 수간호사가 못 내려가게 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어느 병동인지 알려주면 노조 간부들이 찾아가 수간호사와 싸우고 조합원들이 파업에 합류할 수 있게 했다.

길병원 사측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파업 시작 몇 주 전부터 미리 사측에 공문을 보내 환자들을 이송조치하라고 알렸었다. 하지만 사측은 아무런 대응도 안 했고, 사측 교섭 담당자는 파업이 시작되고 사흘 동안 잠적했다.

파업이 직원들의 호응을 받을 수는 있지만 환자와 시민의 입장도 직원들과 같았을까?

“비난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없었다. 오히려 힘내서 길병원을 정신 차리게 하라고 했다. 직원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의사들도 감사하다고 했다. 길병원 다니면서 지금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표현한 교수도 있었다. 후원금도 많이 들어왔다.”

이처럼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정 전 조직국장은 길병원의 구시대적인 시스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리 제보를 엄청 받았다. 병원 비리를 많이 접해봤지만 길병원처럼 구시대적 비리는 처음이었다. 병원은 위생 상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길병원은 비용을 절감하려 재활용을 했다.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심지어 직원 인사시스템에 호봉표가 없었다. 직원들이 자기 월급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병원이 주고 싶은 데로 받는 거다. 직원들이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전에는 소문인 줄만 알았는데 임단협 교섭을 하면서 사측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더라.”

정 전 국장은 길병원이 다른 곳과 다른 게 또 하나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 지역본부에서 일하니까 대형병원 노조 간부를 많이 만났다. 그들 중엔 대형병원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목에 힘이 들어간 사람이 있기도 하다. 반면 길병원 노조 간부들은 순수하다. 노조 활동에 진정성을 가지고 일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노조 간부들은 처음 봤다. 비록 시스템은 옛날 분위기이지만 정이 많고 가족적이고 풋풋했다.”

정 전 국장의 이 같은 말이 민망해서인지 강 지부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병원에서 안 챙겨주니까 우리끼리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다. 내가 힘들어서 그만두면 다른 사람 힘드니까 참고 같이 일한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강수진 지부장(왼쪽)과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강수진 지부장(왼쪽)과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원칙과 유머가 공존하는 사람

정진희 전 조직국장을 길병원 직원으로 알고 있는 조합원이 많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천성적으로 사람과 대화할 때 재밌고 기분 나쁘지 않게 한다. 교섭장에서 웃을 일은 정 전 국장 때문이다. 실수는 시원하게 인정하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교섭에 안 나타나면 병원 측에서 왜 안 오냐고 찾기도 했다.”

강 지부장의 정 전 조직국장에 대한 칭찬이 더 이어졌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기억력이 좋다. 집회 사회를 보다가 ‘선생님 오셨네요’라거나 유인물 나눠줄 때도 ‘그때 간담회 때 봤죠?’라고 인사를 한다. 병동 순회 때 다른 노조 간부들은 가끔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데 정 전 국장은 길병원 직원인 줄 알고 거리감이 없다. 그러면서도 원칙적이다. 누구라도 옳지 않은 언행을 하면 분위기가 싸하더라도 넘어가지 않는다. 원칙과 유머가 공존하는 사람이다.”

원래 이런 사람인지 길병원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지 정 전 국장한테 궁금했다.

“유독 애정이 갔다. 길병원 노조 간부들의 순수함에 감동받고 감염됐다. 노조 결성 후 6개월간 최면 상태로 투쟁한 기분이다. 다들 시너지가 엄청났다. 그런 경험은 지금까지 없었다. 유쾌한 싸움이었고 힘들었지만 굉장히 재밌었다. 심각해도 웃으며 유머와 농담으로 슬기롭게 버텼다.”

정 전 국장의 이 같은 말에 어려운 파업 중심에서 분위기를 만들었던 게 이 사람이라고 강 지부장이 말을 보탰다.

정 전 국장은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본부에서 미조직 전담으로 활동하다가 2020년 초에 조직국장을 그만뒀다. 본부 활동을 정리했을 때 길병원지부 간부들에게 미안했지만 지금도 연락하고 있다. 정 전 국장은 현재 사회복지 관련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강수진 지부장(왼쪽)과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강수진 지부장(왼쪽)과 정진희 전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조직국장

누군가를 돕는 일, 계속하고 싶어

이 둘은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 앞으로도 자신이 하는 일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두 사람의 계획이 궁금했다.

“지부장 임기가 끝나고 나면 현장에서 간호사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 정년까지 간호 분야 일을 잘 배워서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하고 싶다. 요양사업이든, 요양사업이 아니어도 비슷한 일을 하기 위해 현장에서 더 일을 익혀야 한다. 노민추 사람들이 쫓기듯 나간 것을 보면서 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그게 병원에 남아 있는 이유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한국어시험 교원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언젠가 이주 노동자와 이주민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 한국어 강사를 하면서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지금도,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이들은 또 다시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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