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일대 탐방(1)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

계양산 일대 탐방 코스

1990년대 향토교육연구회를 운영할 때 계양산 일대 탐방코스는 부평초등학교에 있는 부평도호부에서 모여 설명을 하고 출발했다. 이후 현재 경명대로를 건너 경인여대 옆에 위치한 백룡사에서 봉일사지 삼층석탑과 미륵불을 본 후, 뒤로 난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 계양산성 서쪽 성벽을 보며 현재 팔각정이 있는 곳으로 올랐다.

당시에 계양산성은 복원이 되지 않아 잡풀과 자잘한 나무로 뒤덮여 산성을 따라 돌 수 없었다. 주로 인천의 초등학생들을 안내했기에 팔각정 부근 공터에서 놀이를 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거쳐 계양산에 올랐다.

계양구 일대 탐방 지도.
계양구 일대 탐방 지도.

당시에 정상에는 군부대 초소가 있었고 천마산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내려오면 징매이고개 정상 부근에 중심성 초석이 하나 덜렁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중심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내려와 부평향교를 둘러보고 기행 안내를 마쳤다.

요즘은 계양산 일대 탐방은 두 코스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부평도호부에서 시작해 부평향교, 징매이고개 생태터널을 거쳐 중심성비, 계양산 삼림욕장(장미원), 이규보 선생 시비, 백룡사 봉일사지 삼층석탑을 끝으로 마감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 6번 출구를 나와 모여서 계양산성박물관과 산성 동쪽 아래 약수터를 거쳐, 계양산성 동문(남문)으로 올라 복원한 산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이다. 이 길을 이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계양의 지명 변천

1940년대 학교 건물로 사용된 부평도호부 관아(관아 내부에 전시된 사진).
1940년대 학교 건물로 사용된 부평도호부 관아(관아 내부에 전시된 사진).

부평도호부 관아와 부평향교가 부평구에 위치하지 않고 계양구에 있는 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의구심을 갖는다. 그래서 기행을 안내하다 보면 가끔 “계양도호부와 계양향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계양구의 지명 변천사를 살펴봐야 한다.

계양산 일대 지역의 지명이 역사에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고구려 장수왕 58년(470) 이곳에 ‘주부토군(主夫吐郡)’을 설치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신라 경덕왕 16년(757) ‘장제군(長提郡)’으로 개칭됐다가, 고려 태조 23년(940) ‘수주(樹州)’로 바꾸고 의종 4년(1150)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고종 2년(1215)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충렬왕 34년(1308)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했다가, 충선왕 2년(1310) ‘부평’부(富平府)로 바뀐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는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고 부평이라는 이름이 계속 유지됐으나 세 차례 부평현으로 강등되는 사건이 있었다.

부평도호부 관아 정면(계양구 제공).
부평도호부 관아 정면(계양구 제공).

이후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기자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전통적인 공동체적 행정단위를 개선하고 식민지 경영에 필요한 명령조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관제’, ‘조선총독부 지방관 관제’ 등을 공포한다.

이에 1913년 12월 29일에 제정 공포된 부령 제111호(1914년 10월 1일부터 시행)에 인천부의 관할구역은 개항장으로 축소를 하고 다른 지역은 전부 부평군으로 통합하고, 부평의 ‘부’자와 개항장 이외의 인천군 지역을 인천의 ‘천’자를 따와 ‘부천’을 신설한다.

1940년에는 다시 부천군 부내면을 인천부에 편입하여 ‘부평’이라 하고, 1968년 ‘북구’로 개칭했다가 1995년 부평구와 ‘계양구’로 분구한다.

현재 부평도호부와 부평향교는 고려 때부터 붙은 이름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1995년에 계양구와 부평구가 분구한 것을 인지하지 못한 분들의 착각이 이런 의문을 도출하는 것이다.

부평도호부 관아의 위치와 형태

부평도호부 관아 측면 팔작지붕.
부평도호부 관아 측면 팔작지붕.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1990년대에 부평도호부를 안내할 때는 부평도호부를 학교가 관리했기에 밖에 울타리를 에두르고, 울타리 안쪽으로 나무들을 촘촘히 심어 관아 건물을 정면으로 보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에 문화재의 훼손을 염려한 학교 측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도호부 건물을 개방하지 않아 안내하며 설명할 때 많은 애로가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도호부 건물 안에서 계양구민과 둘레길 강사 심화과정에 있는 분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겨서 내부 시설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부평도호부 관아는 학교 관리에서 계양구청으로 넘어갔으며, 새롭게 단장해 2016년부터 계양문화원에서 배출한 문화해설사를 배치해 안내를 하고 있다. 해설을 원하는 분들(10인 이상)은 계양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일주일 이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

현재 부평초등학교 운동장 동쪽 담벼락에 붙어있는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은 운동장 북쪽에 있던 것을 1968년 이곳으로 옮겼다. 옮기기 전에는 1m 높이의 석축 위에 지은 “ㄱ”자형 집이었는데 옮기면서 석축과 날개를 떼어버리고 “一자” 건물로 바꿨다.

부평도호부 관아 내부 전시실 모습(계양구 제공).
부평도호부 관아 내부 전시실 모습(계양구 제공).

현재 관아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굴도리집이지만 옮기면서 축대 모양을 바꿨다. 원래 건물은 축대를 쌓고 위로 오르는 계단석을 따로 만들었지만 현재 건물의 정면 기단석은 세벌대의 장대석을 길게 이어 전체를 마치 계단처럼 사용하게 만들었다.

초석은 다듬은 돌로 사다리꼴초석 형태를 취했으며, 마루 아래 터진 곳을 막는 고막이돌을 사방으로 돌렸는데 양 끝 칸과 측면은 통풍을 위해 고막이머름이라는 구멍을 냈다. 기둥은 민흘림기둥이고, 기둥 위에 포작은 올리지 않았다.

처마는 홑처마를 사용했기에 전면부 처마선은 평평하게 보이지만 팔작지붕인 관계로 양 끝에 추녀가 들어가 곡선으로 반전을 이뤄 전체적으로 용마루의 부드러운 곡선과 어울려 안정감을 준다.

건물 내부는 전시실로 만들었다. 과거 부평도호부의 건물들을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배치도도 그려져 있다.

외에도 계양산성이 그려진 고지도들, 사진으로 보는 부평도호부의 옛 사진들, 보수하는 사진들과 보수할 떼 교체한 원기둥, 굴도리, 보머리, 소로 등 목재들, 걷어낸 기와와 창호 등이 전시돼있다. 또 계양 역사의 인물들 설명판 등이 붙어있어 의외로 좁은 공간이지만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평도호부 관아의 역사

내부에 전시된 부평도호부의 옛 사진들.
내부에 전시된 부평도호부의 옛 사진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호 부평도호부 관아가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기 전에 기록에 의하면 도호부 관아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 계양구의 지명변천에서 보듯이 고려 태조 19년(936)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주에 처음으로 안남도호부를 설치한다.

이후 광종 2년(951)에 고부(정읍)로, 성종 14년(995)에 낭주(영암)로, 현종 9년(1018)에 다시 전주로, 의종 4년(1150)에 계양구로 옮겨 수주청사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하나 그 위치는 현재 알 수 없다.

의종 19년(1165)에는 계양산 남서쪽 중구봉 아래 온수동으로 도호부를 이전했는데, 현재 부평향교가 위치한 북쪽 골짜기이다. 이후 조선 초기에 계양산 남쪽으로 이전했다가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는 태종 13년(1413)에 관아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 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 전시된 수키와와 창호.
내부에 전시된 수키와와 창호.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부평도호부 내에는 동헌 외에 객사, 동서 삼문, 근민당(近民堂), 좌우 익랑, 사령청, 향청, 연무당, 화약고, 군기고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아 규모는 인천도호부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는 부평이 고려시대 이래로 큰 고을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근래까지도 동헌, 객사, 근민당, 내아(內衙) 등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09년 이곳에 ‘부평공립보통학교(현 부평초등학교)’ 교사를 신축하며 대부분의 건물이 헐렸다. 현존 건물은 1968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인데 동헌의 일부로 보았으나 예전 형태를 볼 때 수령의 사적 생활공간으로 살림채인 내아로 추정하고 있다.

광여도(廣輿圖, 19세기 초)_에 그려진 부평부 관아 일대(규장각 제공).
광여도(廣輿圖, 19세기 초)_에 그려진 부평부 관아 일대(규장각 제공).
부평도호부 관아의 옛 모습 모형(계양구 제공).
부평도호부 관아의 옛 모습 모형(계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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