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5 ‘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 촘스키 편’ 김선명 편저 | 뿌쉬낀하우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지 꼭 1년 됐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무려 2만여명이다. 러시아에서도 17만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 전사자는 4만∼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잘잘못을 떠나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수많은 민중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도대체 언제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에게 촘스키 교수는 처음에는 언어학자였다. 그는 30대에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창시해 최고의 언어학자가 됐는데, 필자가 학창 시절이었던 70년대 말 그의 ‘변형생성문법’은 그 당시 주류였던 구조주의 문법을 단번에 뛰어넘어 금세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았다.

구조주의 문법이 실제 회화에서 사용된 언어만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면, 변형생성문법은 화자가 전에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문장을 포함해 무한히 많은 수의 문장을 ‘생성(generative),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요즘 유행하는 ‘챗GPT’의 바로 그 ‘생성’이다.

간단하게 다시 말하면, 인간의 언어 능력 또는 언어습득 기제는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언어본유설이다.

처음부터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어쨌든 노엄 촘스키 교수는 언어학자, 인지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로뿐만 아니라 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지식인의 책무'를 집필한 후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현재는 정치평론가, 인권운동가, 사회비평가로서 인권, 평등, 반전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이 90이 넘은 현재에도 그는 '미국의 양심', ‘우리 시대의 현자’로 불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김선명 뿌쉬킨하우스 원장이 전해주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현자", 촘스키 교수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생각이다. 편향되고 왜곡된 언론의 시각을 바로잡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한국 시민이 이 사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

‘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 촘스키 편’ 김선명 편저 | 뿌쉬낀하우스
‘세계의 석학들, 우크라이나 사태를 말하다 - 촘스키 편’ 김선명 편저 | 뿌쉬낀하우스

약간 성급하지만, 노엄 촘스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듣기 전 시카고대 미어샤이머 교수의 목소리를 빌려 이 책의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현재 미국과 서방의 일방적인 통념은 러시아에 책임이 있고 특히 푸틴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논거를 믿지 않으며 믿어본 적도 없다. 내 생각에는 서방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2008년 4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NATO)의 일부로 만들기로 한 결과다. 우리는 막대기로 곰의 눈을 찔렀다. 푸틴 등 러시아인들이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은 미국이다.”

저자 김선명 선생의 안내를 받아 미어샤이머 교수의 생각을 좀 더 따라가 보자.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한 원인은 미국이다. 러시아가 멸망 또는 패배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설사 우크라이나가 승리를 거둔다 해도 영토의 황폐화, 수많은 사상자, 800만명 이상의 난민들을 생각한다면 결코 승리자라 부를 수 없다. 이 책임을 도대체 누가 져야 하는가?”

이제 본격적으로 촘스키 교수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촘스키 교수가 본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경은 1990년 2월 9일 고르바초프와 제임스 베이커의 합의. 즉 ‘독일 통일과 나토 가입안을 용인하는 대신 나토는 단 일 인치도 동쪽으로 이동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서방이, 구체적으로는 클린턴부터 바이든 대통령까지 미국이 지키지 않은 것을 첫 번째 배경으로 보았다.

미어샤이머 교수의 의견과 다르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지만 그 원인과 배경에 미국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대리전인가'라는 질문에 촘스키 교수는 그렇다고 답한다. 미어샤이머 교수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지만, 패자는 확실히 우크라이나라는 것이다. 국토는 황폐화 됐고, 국민은 사상자가 되거나 난민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정치계에서 떠도는 말은 '미국이 러시아와 대리전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이용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무기 지원은 평화가 아닌 폭력의 악순환만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군수업체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전쟁과 같이 우크라이나를 구식무기의 사용처로, 신식무기의 실험장으로 변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 위협을 느낀 유럽 등에서 잇달아 무기의 구매가 이루어지고,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등 군사동맹의 강화로 세계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푸틴도 비난의 화살을 비껴갈 순 없다. 푸틴은 미국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범죄적이지만, 그의 관점에서도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미국의 가장 좋은 소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을 황금 접시에 담아 미국에 바친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으킨 가장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바로 환경문제에 대한 둔감화이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는 온 세계가 제1의 화두로 삼고 온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로,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전까지 전 세계가 공동으로 직면한 코로나19 문제와 탄소중립 문제 등을 함께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한 논의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함께 모두 사라졌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촘스키 교수는 현시점에서 지구상의 인간 생명을 파괴하면서 가장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두 기업을 냉철히 지적하고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록히드마틴과 엑손모빌이다. 주요 무기와 화석 연료 생산업체인 두 기업의 경영진들이다.

촘스키 교수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 보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게 전범, 악의 축, 악마 등의 올가미를 씌우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영웅으로 우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선악 구도에 대해 촘스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쟁 범죄임은 틀림없으나 미국이나 영국이 그런 발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이것을 일종의 진실을 회피하기 위한 선동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촘스키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의 행동에 대해 도덕적으로 분노하는 것은 확실히 옳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잔학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분노하는 것보다 이것을 끝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촉구해야 할 것은 강대국과 유엔이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기를 제공해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무기 공급을 중단해 협상을 위한 휴전을 촉구하는 것이다. 단결된 시민의 힘은 이제 모여서 집회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SNS 등 현대적 대중매체를 통할 수도 있고, 유엔이나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 차원의 조치를 촉구할 수도 있다. 이 전쟁의 종식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푸틴을 전범 논란으로 러시아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가장 좋은 전쟁의 해결책은 협상의 타결이며, 푸틴을 궁지로 몰아넣는 순간 우리는 핵전쟁의 위험에 직면한다. 지금은 처벌을 논할 때가 아니라 평화를 논할 때다. 미국은 러시아를 처벌하려고만 하지 말고, 단 한 사람의 우크라이나인이라도 구하라”

이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전쟁이 빨리 종식될 수 있게 당사국의 노력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촘스키 교수의 주장이며, 필자가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결책은 있을까? 존미어샤이머 교수는 말한다. “정복당한 영토 밖으로 러시아를 밀어내고 우크라이나가 승전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재건에는 적어도 1조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재건하진 못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크게 고통 받을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지원비용으로 1100억달러(한화 약143조 원)를 들였다. 전쟁이 한반도식 해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38선과 유사하게 휴전상태로 남는 것이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종전의 열쇠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에 있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바이든이 탱크와 자금, 군사 장비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면 젤렌스키는 협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지칠 때 한반도식 해법이 파국을 면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잠시 젤렌스키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는 이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은 우리입니다. 전쟁을 끝내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에 우리는 그것이 '평화'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고 멋있는 말이지만, 젤렌스키의 연설은 공허하다.

키이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스테파넨코 나탈리아 양이 한국어로 썼다는 일기를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제 봄은 슬펐어요. 전쟁이 시작되고 둘째 날에 로켓이 다른 집을 파괴 했어요. 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로켓, 폭발, 빈 거리, 빈 가게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요. 다음 봄에 저는 하늘에 로켓이 없고, 집에 전기가 있고, 밖에 행복한 사람들과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다음 봄의 일기는 평범하고 행복한 하루하루의 이야기로 채우고 싶어요.”

스테파넨코 나탈리아 양에게 아이들이 행복하게 마음 놓고 뛰어노는 진정한 봄은 올까.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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