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산책(3)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

‘월미 평화의 나무’와 현충시설로 지정한 ‘해양경찰 흉상’

거의 50여년간 군사보호구역으로 개방하지 않았던 월미산을 2001년 인천시가 매입해 산책로를 만들어 개방하자 인천시민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월미산에 오를 수 있는 기대감 때문이다. 현재 월미산 산책로는 수목이 기대 이상으로 우거져 인천시민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항상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월미산 정상광장까지 운행하는 물범카.
월미산 정상광장까지 운행하는 물범카.

월미산은 비록 해발 108m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오르지만 계속 오르막길이라 유아나 노인을 동반했을 경우는 월미공원 안내소에 있는 물범카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물범카 배차 간격은 기본 20분으로 비나 눈이 내리거나 방문객이 많아 길이 혼잡한 경우 안전을 위해 운행을 하지 않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쉬니 참고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월미산 산책로를 돌며 ‘월미 평화의 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월미 평화의 나무’는 인천상륙작전 이전부터 월미공원에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목 7그루를 발굴해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론 더 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2015년 선정 당시 70년 이상 된 나무로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산책로를 걸으며 견학이 가능한 나무들로 뽑았다.

월미 평화의 나무 위치도.
월미 평화의 나무 위치도.
전시된 해양경찰 206 경비정.
전시된 해양경찰 206 경비정.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된 해양경찰 흉상들.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된 해양경찰 흉상들.

월미공원 안내소에서 월미바다열차 레일을 따라 길을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해양경찰 206 경비정이 전시돼있고, 2011년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을 단속하다 안타깝게 순직한 해양경찰 이청호 경사 흉상과 2015년 응급환자 구조를 위해 긴급 출항을 했다가 충돌사고를 당해 순직한 해양경찰 오진석 경감 흉상이 서있다.

이 흉상들은 모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됐는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한 상황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월미둘레길’을 따라

맞은편에는 월미산으로 오르는 ‘월미둘레길’이 보이고 그 옆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덱(deck)과 계단이 있는데, 계단 옆으로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여러 가지가 하늘을 향해 한껏 벌리고 서있다.

월미 평화의 나무 중 치유의 나무.
월미 평화의 나무 중 치유의 나무.

‘월미 평화의 나무’ 중 첫 번째로 ‘치유의 나무’이다. 나무의 형태가 가장 멋지고 품격이 있으며, 사람들과 친숙해 시민들을 힐링해 주기에 치유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령 89년에 높이가 19m이니 여름철에는 그늘이 넓어 그 밑에서 쉬어가기 적격이다.

계단을 올라 공연이나 행사를 하는 만남의 광장을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가면 ‘한국전통공원’을 바라보는 전망대 옆에 수령 111년인 두 번째 나무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가 있다. 나무 밑동 둘레가 4m가 되는 노거수로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일품이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이 주위에 함포사격으로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졌는데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월미둘레길’은 기본적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게 포장도로가 나있고 오른쪽 한편으로는 흙길이 조성돼 원하는 길을 걸으면 된다.

그리고 숲을 보호하기 위해 길 양쪽으로 울타리를 쳤는데, 월미도에 있던 일본석탄고와 임해학교 등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한 안내판과 4계절 꽃길 구역별 종합 안내판, 월미공원에서 볼 수 있는 새들 안내판과 새 사진들 등을 보며 올라가다 보면 월미돈대에 다다른다.

‘월미돈대’

1872년 지방지도인 _영종지도_에 그려진 월미돈대.(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872년 지방지도인 _영종지도_에 그려진 월미돈대.(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월미돈대를 추정해 만든 모습.
월미돈대를 추정해 만든 모습.

돈대(墩臺)는 성곽 시설의 하나로 성벽 위에 석재 또는 벽돌(塼, 전)로 쌓아올려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든 높직한 누대를 일컫는다. 1872년 지방지도인 ‘영종지도(永宗地圖)’를 보면 월미도 남서쪽 4부 능선쯤에 원형의 돈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월미돈대의 축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강화도에 설치된 돈대가 숙종 때 건립된 것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반원형의 성벽과 성가퀴, 포대(砲臺) 1개를 설치했지만 과거 ‘월미돈대’가 있던 자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돈대로 추정되던 이 주변은 여러 채의 군인막사가 설치됐기에 안타깝게도 돈대는 초석 하나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영종지도’에만 표시로 남아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곳 성벽에 오르면 인천대교와 영종도가 한눈에 보였는데 수림이 우거지고 건축물을 공사하느라 시야를 가려 바다를 제대로 조망하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다.

‘사랑의 나무’ 연리지

해군 제 2함대 사령부가 있던 터 사진.
해군 제 2함대 사령부가 있던 터 사진.

‘월미둘레길’ 산책로는 수림이 우거져 여름에도 그늘이 많기에 더위가 한창인 때도 그리 땀이 많이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곳곳에 쉬어갈 쉼터도 많아 그늘에 들어가 앉으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수목의 내음이 잔뜩 묻어와 저절로 가슴이 활짝 펴진다.

정상광장으로 오르는 길 역시 울타리에는 월미공원이 조성되기 전의 사진과 조성과정을 알 수 있는 연표와 각종 사진, 월미공원 숲의 역사, 식물 이름에 얽힌 안내판 등이 걸려있다.

2004년 ‘인천향토교육연구회’ 선생님들과 함께 월미공원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던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의 사정을 듣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해군 제 2함대 사령부가 있던 터를 봤던 기억이 가물거렸는데 걸려있는 사진에서 다시 보고 확인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조금 더 오르니 길 왼쪽에 빨간 쌍하트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는데 모양이 재밌다. 아마도 연인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연인들이 사진찍기 좋은 장소.
연인들이 사진찍기 좋은 장소.

의자 2개를 맞붙였는데 가운데를 기울여놓았기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몸이 서로 밀착될 수밖에 없게 했다. 연인들이 앉아 손으로 하트를 만들면 멋진 추억의 사진을 연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까닭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뒤쪽에 연리지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월미 평화의 나무’가 7그루 선정됐는데, 안내판을 보니 이 나무는 ‘월미공원의 나무’ 여덟 번째 ‘사랑의 나무’라 이름을 붙였다.

‘월미 평화의 나무’를 선정한 이후에 붙인 이름인 것 같다. 연리지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원래는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한다.

‘사랑의 나무’ 연리지.
‘사랑의 나무’ 연리지.

책 ‘후한서’에 담긴 ‘채옹전’을 보면, 채옹은 효심이 지극한 효자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3년 동안 계절이 바뀌어도 옷 한 번 벗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지극정성으로 병구완을 했다. 그리고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채옹의 집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랐는데, 점점 가지가 서로 붙어 하나가 됐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해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처음에는 지극한 효심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훗날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이다. 한 도사가 선녀가 된 양귀비를 만나서 들은 내용으로 당 현종 천보 10년(751) 칠월 칠석에 현종과 양귀비가 화청궁에 거동해 노닐며 장생전에서 나눈 사랑의 맹약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헤어질 무렵 은근히 거듭 전하는 말이 있었으니 / 그 말에는 둘이서만 아는 맹서가 들어 있었지 / 칠월 칠석 장생전에서 / 깊은 밤 남몰래 속삭인 말 /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자 / 장구한 천지도 다할 때가 있지만 / 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

월미공원 ‘정상광장’

정상광장에 있는 인천시 물범캐릭터들.
정상광장에 있는 인천시 물범캐릭터들.

정상광장 중앙에는 인천시의 대표 캐릭터인 물범 애이니(인천을 사랑한다는 애인과 인천의 ‘ㅣ’를 결합), 꼬미(꼬마 물범), 버미(씩씩한 점박이 물범)가 반가운 표정으로 산책객을 맞이한다. 여기까지 물범카를 운행한다. 이곳에서 월미전망대와 월미산 정상으로 갈 수 있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길이 갈린다.

광장 오른쪽 숲에는 편히 쉴 수 있는 긴 의자들이 늘어서 있고, 그 오른쪽에는 ‘월미공원 귀환 기념비’와 월미도와 관련된 역사나 사건을 기록한 ‘월미도 연표’비가 나란히 서있다. 건강을 위해 산책하는 분들이야 무심히 지나치지만 그래도 연표를 읽어보면 월미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월미공원 귀환 기념비’와 ‘월미도 연표’비.
‘월미공원 귀환 기념비’와 ‘월미도 연표’비.

숲속 한쪽 끝에 ‘월미 평화의 나무’ 네 번째 ‘영원한 친구나무’가 있다. 수령 107년의 상수리 나무로 정자목(亭子木)처럼 왕성한 모양을 갖추고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다람쥐의 서식처가 되기에 붙인 이름이다.

정자목이란 서당·정자·향교 등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심은 나무로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월미 평화의 나무_ 중 ‘영원한 친구나무’.
월미 평화의 나무_ 중 ‘영원한 친구나무’.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