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산책(4)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

월미공원 정상광장 위에 설치된 ‘예포(禮砲)’

월미공원 정상광장 위에 설치된 ‘예포(禮砲)’.
월미공원 정상광장 위에 설치된 ‘예포(禮砲)’.

‘정상광장’ 물범 캐릭터 뒤로 난 길로 50여m 오르면 성가퀴를 두른 호미 형태의 포대가 있고, 그 안쪽에 ‘예포’가 한 문 놓여있다. 예포는 전쟁에 이긴 쪽에 대한 경의와 무장 해제의 표시로 행한 중세 시대의 전통 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원수나 고위관리, 고급 장성 등이 국가·부대·함정을 방문할 때나, 군함이 외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등 각종 의례를 할 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일정 수의 공포탄을 발사하는 예식용 대포를 일컫는다.

고종은 즉위 40주년을 맞아, 1902년 9월 17일 거행할 예정이던 칭경예식(稱慶禮式)에 초대될 각국대사를 맞이하는 포대를 월미도에 설치하기로 한다.

이에 1901년 8월 14일 월미도 정상에 포대를 구축하기 시작해 9월 6일에 공사를 마쳤다. 길이 90자(대략 27m) 높이 6자(대략 1.8m) 정도의 성곽을 쌓고, 3~4개의 반달형 포문을 설치했으며, 포차에 실린 야전포 2문을 배치했다. 그러나 콜레라의 유행과 영친왕의 두진(痘疹 : 천연두와 홍역)으로 ‘칭경예식’이 연기돼 예포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고 의정부 찬정외부대신 서리 외부협판 최영하가 인천감리 하상준에게 보낸 훈령에 보면 “귀항 월미도 포대를 건설하고 각국 군함과 예포하여 응답포로 한성 각 영사에 알려 훈령하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인천항을 드나드는 각국 군함에 예포를 발사하여 입출항에 응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을사조약(1905)이 체결돼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그 이듬해인 1906년 8월 8일 통감부의 명령에 따라 월미도 포대가 폐쇄된다.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에는 ‘선박의 입출항을 알렸던 예포’라는 제목으로 보다 자세하게 실려있다.

인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월미전망대’

월미전망대.
월미전망대.
월미전망대 2층에 있는 ‘달빛마루카페’.
월미전망대 2층에 있는 ‘달빛마루카페’.

월미공원 ‘정상광장’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200여m 내려가면 2005년에 준공한 ‘월미전망대’가 나온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구조 전망대로 조망을 위해 겉은 유리로 둘렀다.

높이는 23.75m로 별로 높지 않은 것 같아 ‘올라가 봐야 뭐 별 것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반드시 올라보길 권한다. 전망대는 나선형 계단을 걸어서 오르거나 노약자를 위해 설치한 승강기를 타고 오르면 된다.

2층은 현재 ‘달빛마루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중구노인인력센터가 중구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 7월에 개업한 중구 실버카페 1호점이다.

일을 하는 어르신들도 매우 친절해 자리를 잡고 앉으면 저절로 마음이 포근해진다. 이곳에서 음료를 마시며 창밖을 보면 자리에 따라 인천항과 인천대교, 영종도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직원 어르신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실버카페로는 국내에서 가장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장소이며,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마다 색다르게 치장하는 둘레길 경치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낙조가 떨어질 때와 야경이 더 멋있다는데 다음에는 계절마다 시간을 바꿔가며 와봐야 할 것 같다.

월미전망대 3층에서 바라본 풍광.
월미전망대 3층에서 바라본 풍광.

아마도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노약자들이 찾아오기 어려운 애로사항도 이야기한다. 이곳에 오르는 물범카가 시간 편성이 많지 않아 자주 다니지 않고, 비나 눈이 오면 운행이 정지돼 노인들이 찾아오기 쉽지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월미둘레길 남쪽에서 전망대에 오르려면 전망대길 계단(266계단)이 가파르고 노인들이 걸어서 오르기 쉽지 않아 남쪽 구간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좋겠다고 한다. 또 자유공원과 월미도, 연안부두를 잇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멋진 바다풍경도 볼 수 있어 좋겠다고 한다.

물론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은 3층 전망대이다. 360도를 빙 둘러 유리로 난간을 만들고 전망대 망원경을 설치해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도 구석구석 가깝게 당겨서 볼 수 있다.

우선 한 바퀴 돌며 곳곳을 조망하고 사진을 찍어본다. 풍광이 워낙 넓게 펼쳐져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사진에 담아보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사진 한 장, 한 장에 다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핸드폰 파노라마 기능을 활용해 최대한 넓게 펼치며 찍어본다.

이곳에서는 인천 시가지는 물론 인천항 1부두에서 8부두까지, 멀리 산세를 보면 왼쪽부터 계양산, 천마산, 원적산, 만월산, 소래산, 문학산, 청량산, 그리고 서쪽 바다 쪽으로는 송도신도시, 인천대교, 무의도, 용유도, 인천국제공항, 영종도까지 파노라마처럼 막힘없이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다. 날이 맑고 시계가 좋은 날 올라보기를 권한다.

월미산 정상과 ‘아타고신사(愛宕神社, 애탕신사)’

아타고신사(愛宕神社, 인천시 제공).
아타고신사(愛宕神社, 인천시 제공).

월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정상광장’을 중심으로 ‘월미전망대’와 정반대 방향에 있다. 정상까지는 대략 200m로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을 오르다 보면 정상에 못 미쳐 쉼터에 ‘아타고신사’에 대한 안내판과 사진이 있다.

신사(神社)란 일본의 민속신앙인 신도(神道)신앙에 근거해 만들어진 종교시설이다. 일본인은 신도의 신(神)을 ‘카미’라고 부르는데 800만의 카미가 있다고 한다. 이 수많은 카미들의 기원은 주로 조령(祖靈), 즉 조상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모든 자연물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신도의 카미 중에는 자연물을 신격화한 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곳 ‘아타고신사’는 1908년에 세워졌고 1929년 9월에 한 차례 개축했다고 한다. 교토지역을 화재나 천재지변으로부터 보호하는 신을 모시는 ‘아타고신사’는 교토의 아타고야마(愛宕山)에 있는 ‘아타고신사’가 총본산이라고 한다.

신사 입구에는 청일전쟁 때 사망한 일본군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비을 세웠다. 이곳 신사는 광복 후 파괴돼 봉안전에 오르는 계단만 남았다가 한국전쟁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월미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월미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월미산 정상 전망대 남서쪽으로 바라본 풍광.
월미산 정상 전망대 남서쪽으로 바라본 풍광.

월미산 정산에는 ‘산과 바다를 품어라’란 글귀가 써진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나무들이 아래를 가려 ‘월미전망대’처럼 풍광이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월미산에 가려 볼 수 없었던 북쪽의 드넓은 광경을 다 조망할 수 있다.

월미산 정상 전망대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부터 영종도와 그 뒤로 강화도, 물치도, 영종대교, 인천북항 배후단지와 북항제4부두, 계양산, 천마산 등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남서쪽으로는 왼쪽부터 송도신도시, 인천대교, 무의도, 용유도, 인천국제공항, 영종도의 백운산과 석화산까지 보이니, ‘월미전망대’와 월미산 정상 전망대 두 곳에 오르면 월미도를 빙 두른 인천시의 모든 곳을 조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무선통신을 한 ‘월미도 무선전신소’

월미도 무선전신소(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월미도 무선전신소(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우리나라에서 직접 설치한 무선전신 시설은 ‘월미도 무선전신소’와 항로표시 시찰과 세관감시선인 탁지소 소속의 ‘광제호’에 장치한 것이 그 효시가 된다. 1910년 6월 대한제국은 예비비 3만원을 지출해 월미도, 항문도, 목포, 소청도, 원산 등의 해안국과 광제호에 무선설비를 장착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 결과 1910년 8월 15일 무선설비공사를 착공해 1910년 9월 5일 완공된 ‘월미도 무선전신소’와 당시로서는 최신설비를 장치한 ‘광제호’ 간에 무선전신을 처음으로 개시한다.

물론 일반 대중의 전보는 취급하지 못하고 군사적으로 이용되는데 불과했지만, ‘월미도 무선전신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소라는데 의의가 있다.

‘월미도 무선전신소’는 월미도 포대자리에 설치됐고, 1923년 인천무선 전신국이 문을 연 데 이어서 2년 뒤 경성무선 전신국이 확장되면서 ‘월미도 무선전신소’는 폐지됐다. 그리고 폐지 후에는 안테나와 전신소 건물만이 월미도 산정에 남아 있었으나 1932년 봄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고 말았다.

‘월미둘레길’ 한 바퀴

월미둘레길 모습.
월미둘레길 모습.

월미산 정상에서 ‘월미둘레길’로 가려면 다시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야 하는데, ‘정상광장’을 거쳐 ‘월미돈대’에 도착해서 왼쪽 경사로로 내려가면 된다. 여기만 짤막한 경사로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넓고 평탄한 길이다. 길 양쪽으로 각종 나무들이 훤칠하게 자라 그늘을 드리우니 걷기도 무난하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으로, 여름에는 싱그러운 청록색 그늘로, 가을에는 울긋불긋 채색한 단풍들로, 겨울에는 하얗게 덮인 설경으로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길이다. 길 중간중간에는 쉬어갈 쉼터와 체육 시설, 정자 등이 있어 잠시 쉬어가며 주변 경치를 누리는 것도 좋다.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내려가는 해넘이 언덕 위에는 석양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인천대교와 무의도가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일몰의 광경이 멋질 것 같다.

해넘이 언덕 위에는 석양정.
해넘이 언덕 위에는 석양정.

계속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 계단 아래로 ‘월미 평화의 나무’ 중 세 번째 ‘평화의 어머니 나무’를 볼 수 있다. 월미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현재 수령은 252년에 높이 22m, 밑동 직경은 2.2m이다. 나무가 워낙 위로 자라면서 넓게 펼쳐져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다.

길을 계속 걸으면 쉼터와 체육시설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월미도 남단을 돌아 왼쪽 위로 가파른 계단으로 돼있는 전망대길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쳐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언뜻 나무 틈새 사이로 인천항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월미둘레길’에서 월미도 바깥 풍경을 보려면 나뭇잎이 다 떨어져 숲이 온통 나목이 된 겨울에 와봐야 할 것 같다.

인천항 제6부두의 중간쯤 되는 둘레길에 진양정(進洋亭)이 있다. 바다로 나아가는 정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8부두와 제1부두 사이로 자유공원이 보인다. 개항 이후 가장 번성했던 부두이다.

진양정(進洋亭).
진양정(進洋亭).

조금 더 가니 나무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제7부두와 제8부두가 바로 눈앞에 성큼 다가오며 정박한 대형화물선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 멀지 않은 곳에 해군 장병들이 월미산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만 그루 식수에 즈음한 1997년 4월 5일에 세운 ‘만 그루 식수 기념비’가 있다.

계속 걸으니 오른쪽으로 월미전통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왼쪽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인 벙커가 보인다. 과거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탄약고인데, 내부를 수리해 갤러리로 활용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조금 더 가니 내무반으로 사용했음직한 벙커가 있는데 ‘숲속 작은 휴게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월미둘레길’을 출발할 때 만났던 두 번째 나무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가 있다.

월미전통공원 부용지.
월미전통공원 부용지.

이렇게 월미도 산책을 끝냈는데 월미공원 입구에서 월미전통공원을 둘러보고 양진당이 있는 후문으로 나와 제6부두를 따라 바닷가로 월미도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의외로 차량 통행이 없어 봄이나 가을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도 무난한 길이다. 이왕 이 길로 돈다면 인천항 갑문 홍보관과 한국이민사박물관에도 들러보자.

연인과 같이 왔다면 월미도 등대길, 2024년 6월 설립될 국립인천해양박물관, 월미문화로를 따라 바닷가에 늘어선 각종 시설물들을 구경하고, 월미도 선착장에서 낙조가 떨어지는 시간에 맞춰 인천 앞바다를 도는 유람선도 타보자.

바다에서 인천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이라면 ‘월미테마파크’에서 각종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천항 갑문과 홍보관.
인천항 갑문과 홍보관.
월미도 등대.
월미도 등대.
월미테마파크 놀이기구.
월미테마파크 놀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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