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수감 중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횡령과 배임죄로 수감 중인 부영 이중근 회장을 가석방했다. 공정과 정의를 내건 정부가 21세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재확립했다. 매우 유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탄핵한 촛불을 든 국민의 지지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취임과 더불어 자유롭고, 정의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국정농단에 관여하고 뇌물수수로 수감된 재벌총수를 가석방하고, 수만명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배임과 횡령죄로 수감된 재벌총수를 가석방하면서 보란 듯이 스스로 정한 원칙을 걷어찼다. 공정과 정의라는 말이 무색하다.

시민사회단체가 촛불정부의 배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사면은 대통령 권한이고 가석방은 장관 권한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촛불을 든 국민을 모독한 것도 모자라 우롱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광복절을 맞아 가석방된 것과 관련해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범죄 혐의로도 재판 중인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부영 이중근 회장 등을 특별한 사유없이 가석방하는 것은 가석방 제도 취지를 몰각시키고 법치주의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무너뜨린 일이다. 한국 헌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것이다.

자신들이 정한 5대 중대 부패범죄에 해당하는 재벌총수를 ‘경제’를 핑계 삼아 가석방한 것은 문 대통령이 얘기한 평등과 공정, 정의에 대해 국민에게 사실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가석방은 자체가 이미 심사 기준 완화로 특혜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정작 노 전 대통령이 없애고자 했던 반칙과 특권을 스스럼없이 부여했다. 무슨 낯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할 것인가. 참으로 부끄럽지 아니한가 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돼 내년 7월 만기 출소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관행을 보면 가석방은 형기 80% 이상을 채워야 가능했다. 이 부회장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지난 4월 28일 ‘재범 우려가 없는 모범수형자, 생계형범죄자, 노약자 등을 대상으로 5%p 이상 심사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 지침을 7월부터 적용했고, 이에 따라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부영 이중근 회장은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특정인을 위한 지침 변경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지만 눈 가리고 아옹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와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다른 재판 진행 중에 가석방되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이다.

부영 이중근 회장도 마찬가지다. 이중근 회장은 2018년 2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조세포탈, 공정거래법 위반, 임대주택법 위반 등 혐의 12개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2018년 11월 징역 5년 중형을 선고했으나 법정구속 없이 보석을 허가했다. 이때도 유전무죄 비판이 거셌다. 2심 재판부는 2020년 1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이중근 회장은 같은 해 6월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해 140일 만에 풀려났다. 그 뒤 대법원이 지난해 8월 27일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하고 구속했다.

지금도 부영의 임대주택 사업에서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은 피해구제 소송 200여건을 진행하고 있다.

부영은 임대보증금을 부풀려 산정하고, 임대기간 종료 후 분양전환가격을 산정하면서 건설원가를 부풀려 부당이득을 취했다. 대법원이 일부 부당이득을 돌려주라고 판결하고, 아직 200여건에 수만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재판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가석방을 해줬다. 공정과 정의를 내걸고 21세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재확립했다. 촛불을 든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