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구·한전·대책위, 삼산동 특고압 상생협력 협약식
신설 특고압선 굴포천 하부로... 기존 선로 전자파 저감
“지중선로 전자파 허점 여전... 전기사업법 개정해야”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인천 부평구 삼산동 주거지와 학교 바로 밑을 지나는 특고압 송전선 문제로 수년째 마찰을 빚던 한국전력과 주민들이 마침내 합의를 도출했다. 주민들이 스스로 싸워 얻어낸 민관 협치 결과라는 평가다.

이은옥 삼산동 특고압주민대책위원장과 차준택 부평구청장, 김태옥 한국전력 부사장이 ‘삼산동 특고압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부평구)
이은옥 삼산동 특고압주민대책위원장과 차준택 부평구청장, 김태옥 한국전력 부사장이 ‘삼산동 특고압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부평구)

부평구와 한국전력, 삼산동 특고압 설치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는 25일 부평구청에서 ‘삼산동 특고압 상생협력 협약식’을 진행했다.

협약식에는 이은옥 삼산동 특고압주민대책위원장과 김태옥 한국전력 부사장, 차준택 부평구청장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민관대책위원으로 활동하던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협약에 따라 한전은 ‘갈산~신광명 송전선로 건설사업’ 중 부평구 구간에 신설하는 34만5000V용 전력구(터널)를 청천천·굴포천 아래 지하 30m 이하로 설치하기로 했다. 사업은 2단계에 걸쳐 이뤄지며 인천시와 부평구는 관련 인허가 승인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요구했던 기존 15만4000V 지중선 이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한전이 제안한 전자파 저감시설 설치로 대체하기로 했다.

한전은 1단계 사업으로 기존 15만4000V 송전터널에 34만5000V 송전선 2회선을 임시로 설치한다. 2단계는 34만5000V 송전터널이 준공되면 임시 2회선을 이전하고, 1회선을 추가해 3회선을 만드는 방식이다.

1단계 사업은 2023년 7월까지 완료하고, 2단계사업은 2027년 7월 이내 완료할 계획이다. 한전은 1단계 사업 시 임시로 설치하는 34만5000V 전선 배치를 최적화해 전자파 발생량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한 2단계 사업 대상지 선정 시, 지역 주민 의견에 따라 34만5000V 송전터널이 청천천·굴포천 하부를 통과할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다.

부평구·한전·주민들로 구성된 ‘삼산동 갈등해소를 위한 특고압 지중선로 협의회’는 사업 종료 시까지 지속적으로 진행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분기별 점검회의를 진행하며, 필요 시 상호협의로 임시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은옥 주민대책위원장은 “쉽게 해결될 수 있었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큰 결단을 내려준 한전에 감사드린다”며 “특고압 지중선로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지상 송전탑 설치규정이 있듯이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지중선로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차준택 구청장은 “안전은 이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이다. 이번 협약은 사람중심 사회가 되기 위한 계기가 됐다”며 “지역사회와 한전이 주민 안전을 위한 중대한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사회적 신뢰를 축적한 것이며, 협치의 중요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삼산동 특고압 설치반대 대책위원회가 5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인천시청 정문앞에서 인천시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삼산동 특고압 설치반대 대책위원회가 5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인천시청 정문앞에서 인천시 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한전 공사 과정에서 삼산동 특고압 문제 드러나

주거지와 학교 바로 밑을 지나는 ‘부평구 삼산동 특고압선’ 문제는 2018년 ‘수도권 서부지역 전력구 공사’ 추진 과정에서 드러났다. 한국전력은 2019년 6월 완공을 목표로 인천 서구에서 서울 구로구까지 특고압(34만5000V) 지중선로 매설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한전은 특고압선 매설을 위해 보통 지하 30m 깊이로 터널을 뚫는다. 하지만 삼산동 아파트 단지엔 지하8m 깊이에 이미 고압(15만4000V) 지중선로를 설치한 게 드러났다. 이 선로에 추가로 34만5000V 특고압선을 매설하려하자,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주민들이 전문가와 함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이미 매설돼있는 15만4000V 고압선 근처에서 최고 100mG(밀리가우스)가 측정됐고, 실내에서도 15.7mG가 측정됐다. 세계보건기구는 어린이가 전자파 2~4mG에 일정 기간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지난 2019년 4월, 삼산동 아파트 단지에서 자란 중학교 3학년 학생이 2018년에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은 게 알려졌다. 악성 림프종은 전자파와 관련 있는 암으로 학계에 수차례 보고된 바 있어 주민들은 더욱 우려했다.

34만5000볼트 특고압선이 지날 예정이었던 인천 부평구 삼산동의 영선초등학교 일대. 이 학교에는 학생과 교직원 1100여명이 다니고 있다.
34만5000볼트 특고압선이 지날 예정이었던 인천 부평구 삼산동의 영선초등학교 일대. 이 학교에는 학생과 교직원 1100여명이 다니고 있다.

“전자파 문제 실질적 조치 이끌어내 ‘경종’... 주민운동 승리”

이후 부평구는 주민과 시민사회, 정당 대표로 구성한 민관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한전이 특고압 지중선로 협의회를 운영하며 3년간 공식회의 23회와 비공식 면담, 현장방문 등 총 47차례 협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특고압 지중선로 협의회는 이미 설치한 15만4000V 송전선으로 인한 전자파로 불안감을 느끼는 주민들을 위해 전자파 저감시설을 우선적 설치했다.

아울러 구는 총 3차례에 걸쳐 주민설명회를 열고 민관대책위와 주민들이 참여한 저감설치시설 현장방문 결과, 전자파 저감시설 설치 성과(맨홀 구간은 90%의 저감, 산책로 구간 45% 저감) 등을 주민들과 공유했다.

부평구는 해마다 공공갈등 관리대상사업을 선정해 갈등관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번 ‘삼산동 특고압 전자파 갈등’을 포함해 17개의 사업을 종료했다.

삼산동 특고압 갈등해소는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끊임없이 소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우려를 해소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또한 같은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부천시는 정치인들의 도움이 컸던 반면, 부평구는 주민들 스스로 싸워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주민운동의 승리이며 모범사례로 볼 수 있다.

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은 “삼산동 특고압 문제 해결 사례는 주민운동이 시민운동과 결합해 큰 성과를 냈다는 것”이라며 “전자파 피해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내고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향후 특고압 지중선로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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