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신재생에너지 정책, 주민수용성이 답이다 ⑤
단순한 이익공유 넘어 세계 최초 경제학적 풍력 접근
제주도 에너지 전환 과도기…전기 수요 창출이 숙제
일방적인 굴업도 해상풍력 개발…갈등 되풀이 말아야

인천투데이=이종선기자ㅣ제주특별자치도는 ‘2030 카본 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 이하 CFI)’ 계획으로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0%를 신ㆍ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제주도는 현재 국내 신ㆍ재생에너지 정책을 선도하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주민과 갈등도 많았다. 그만큼 깊은 논의와 숙의를 거쳐 ‘에너지 민주주의’를 정립한 제주도의 모습은 각종 정책 추진 과정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극심한 주민갈등, 마을공모제와 이익공유제로 해결

올해 6월에 열린 제주도 CFI 도민 거버넌스 청소년 분과회의 모습.(사진제공ㆍ제주에너지공사)
올해 6월에 열린 제주도 CFI 도민 거버넌스 청소년 분과회의 모습.(사진제공ㆍ제주에너지공사)

제주도의 에너지 계획은 1994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총 6차례 수립됐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으로 국내 광역자치단체 17개의 에너지 계획 수립 시기를 통일시키려 했다. 이에 제주도는 올해 6월 제6차 지역 에너지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는 주민 참여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도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CFI 거버넌스를 구축해 운영했다. 먼저 연령ㆍ성ㆍ지역을 골고루해 전문가 20여 명으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에너지 거버넌스 구성과 관련한 사무 등을 조언 받았다.

이후 일반인 공모와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센터의 추천을 받아 100명으로 도민 거버넌스를 만들었다. 이들은 CFI 사업과 관련한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 모니터와 자문 등을 담당한다. 주민뿐 아니라 발전사업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0명 내외로 사업자 거버넌스도 구성했다. 모두 에너지정책 수용성을 높여 에너지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시도이다.

제주도 신ㆍ재생에너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처음부터 주민과 소통이 원활했던 것은 아니다. 국내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행원풍력발전단지를 완공한 2003년 이후 신ㆍ재생에너지 주민수용성 문제가 대두됐다. 이때부터 민간사업자들이 풍력발전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신ㆍ재생에너지 업체 (주)유니슨은 2005년 말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풍력발전단지 건설 허가를 획득했다. 이에 인근 주민들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망치고 관광산업을 후퇴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급기야 또 다른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삼달리ㆍ수산리 주민들과 ‘제주 풍력발전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반대운동을 벌였다.

한경면에 위치한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는 연간 8만5000MWh를 생산한다. 제주도 전체 전력의 약 3%, 신ㆍ재생에너지 전력의 약 10%를 책임지고 있다. 전례없는 규모인 만큼 이곳도 주민 반발이 극심했다. 2006년 허가받은 사업이 주민수용성 문제로 9년이나 뒤로 미뤄졌다.

이처럼 제주도의 각종 신ㆍ재생에너지 사업은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등, 정체를 겪었다. 애초에 녹색개발주의로 사업을 밀어붙여 발생한 문제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제주도는 주민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신ㆍ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했다.

제주도는 발상을 전환해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입지를 주민들로부터 신청 받는 방식을 취했다. 마을 네곳이 신청했고, 심사 결과 가시리가 최적지로 꼽혔다.

이렇게 2012년에 탄생한 가시리 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최초 국산화 성공뿐 아니라, 최초 주민참여형 모델로 성공하며 이익공유제를 실현했다.

그 이후 주민수용성을 담보한 제주도의 신ㆍ재생에너지 정책은 순조로웠다. 2012년 국내 최초로 신ㆍ재생에너지 분야 지방공기업인 제주에너지공사를 설립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 개정과 관련 조례 제정 등으로 풍력발전을 공공영역으로 들여왔다.

경제학적 접근으로 풍력자원 공유

국내 최초 국산화 성공뿐 아니라, 최초 주민참여형 모델로 성공하며 이익공유제를 실현한 가시리 풍력발전단지.(사진제공ㆍ제주에너지공사)
국내 최초 국산화 성공뿐 아니라, 최초 주민참여형 모델로 성공하며 이익공유제를 실현한 가시리 풍력발전단지.(사진제공ㆍ제주에너지공사)

제주도의 풍력발전 정책에 기반이 된 개념은 바로 ‘풍력자원 공유화’이다. 단순히 주민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이익을 환원하는 개념이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접근해 바람에 원료 값을 매겨야한다는 논리다.

제주도의 역사ㆍ문화ㆍ생태를 고려했을 때 바람의 의미는 매우 크다. 제주도 방언이 짧고 억센 이유는 잦은 바람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효율적인 방식으로 언어가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있다. 돌로 담을 쌓고 전통 초가집 지붕을 새끼줄로 엮은 이유도 바람 때문이다.

수천 년을 함께하며 고난과 역경의 상징이었던 바람이 외부인에 의해 무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원료가 됐다. 주민들에게 박탈감으로 작용할 법했다.

이에 2011년 5월 ‘제주도 특별법’을 개정하면서 ‘풍력자원의 공공적 관리’ 조항을 신설했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있던 풍력발전사업 허가 권한도 도지사가 이양 받아 보다 독립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도지사가 발전사업 허가를 마음대로 내주는 구조는 아니다. 도지사는 특별법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내용에 대한 동의를 도의회에 받아야한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한 구조다.

2015년에 제주도가 발표한 ‘공공 주도 풍력개발 투자 활성화 계획’에 따라 지금은 제주에너지공사가 풍력발전 개발 권한을 갖고 있다. 민간사업자나 마을 공모 모두 제주에너지공사가 진행한다.

특별법 개정 이후 바람자원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풍력발전사업 허가 및 지구 지정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도가 발전사업 지구 지정을 마치면, 해당 사업자는 6개월 이내에 개발이익 공유 계획을 제출해야한다. 이를 토대로 개발이익 공유화 협약을 맺고 사업자는 일정 정도 기부금을 낸다.

그런데 기부금과 각종 공공 풍력발전 이익의 세입 명목이 일반회계로 분류돼, 이를 다시 에너지 자립 분야에 투입하는 데 애매한 점이 있었다. 이에 제주도는 2017년에 풍력자원기금을 설치했다. 이를 활용해 취약계층 지원과 각종 홍보ㆍ교육 사업을 진행하며, 남은 수익은 미래를 위해 적립한다.

이처럼 제주도는 바람에 원료 값을 매긴다는 개념으로 이익공유제를 실현해 주민수용성을 높였다. 내구연한이 20년 남짓한 풍력발전시설 때문에 최소 100년에서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면 안 된다는 인식도 컸다.

김동주 제주에너지공사 선임 연구원(환경사회학 박사)은 “풍력자원 공유화 개념은 독일ㆍ덴마크 등 신ㆍ재생에너지 선진국에서도 접근하지 못한 전 세계 최초 사례”라며 “제주개발공사가 지하수로 ‘삼다수’를 제조해 팔고 이를 지역에 환원하듯이 바람 개발이익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로 생각하면 제주도 바람이라고 해서 제주도만의 것이라는 생각도 경계해야한다. 이익 공유는 일종의 보상 개념”이라며 “투자자격 대상 범위도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범위도 넓어져 풍력발전사업이 더욱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풍력ㆍ태양광발전 출력 제한하기도…거대한 에너지 전환 중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주 한경면 싱계물 공원 근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주 한경면 싱계물 공원 근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제주도는 신ㆍ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전력 공급과 수요를 맞추기 위해 풍력ㆍ태양광발전기를 일부러 멈추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한국전력거래소가 출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전기는 기본적으로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구축하지 않는 한 저장되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가 일치해야하는 구조다. 경제 성장 시기를 거쳐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전기가 부족했지만, 지금은 저성장 시대인 만큼 전력 수요가 줄었다.

반면 제주도의 신ㆍ재생에너지 확충은 지속됐다. 그만큼 기존 화석연료발전의 수요는 줄어들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화석연료발전을 멈추거나 재개할 수는 없다. 껐다 켜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뿐 아니라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주도의 풍력ㆍ태양광발전시설들은 전력 공급 초과로 피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했다. 제주도가 최종적으로 CFI 계획을 마무리하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이에 제주도는 전기 수요를 늘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육지와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제3연계선 건설이 대표적이다. 현재 해저에 깔려있는 제1ㆍ2연계선은 육지로부터 전기를 받기만 하는 용도다. 또한 전기차 확충도 필수적이다. 제주도 내 전기 생산과 소비 현황을 파악해 일치시키고 실시간 대응할 수 있는 ‘카본 프리 통합관제센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천 비롯한 지자체, 제주도 정책 본받아야

제주도에 비하면 인천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신ㆍ재생에너지와 관련한 갈등이 여전하다. 제주도도 겪은 과정이다. 주민수용성을 얼마나 확보해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했는지가 핵심이다.

인천은 지난해 동구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갈등을 겪고 극적으로 민관 합의를 이뤄낸 바 있다. 갈등으로 인한 각종 민원과 발전소 건립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컸다.

그런데 최근에 또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에서 해상풍력발전사업이 주민들 모르게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씨앤아이레저산업(주)이 신청한 굴업도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지난 18일 허가했다. 신ㆍ재생에너지 사업의 주민수용성 문제가 다시 부각될 상황이다.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씨앤아이레저산업(주)이 신청한 굴업도 해상풍력발전사업을 9월 18일 허가했다.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씨앤아이레저산업(주)이 신청한 굴업도 해상풍력발전사업을 9월 18일 허가했다.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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