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문화도시로 가는 길, 시민문화가 대안이다 ⑥
일본 시민합창단 '우타고에'

<편집자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시민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 시민들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시민들의 동아리 모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하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지원은 전문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에 국한된 것이 현실이다. 또한 문화의 불모지로 꼽히는 인천광역시와 부평구는 문화도시를 꿈꾸며 큰 규모의 축제를 열기도 하고 대규모의 예술회관을 짓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화도시로 가는 길은 더뎌 보일 뿐이다.
전문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과 축제, 대규모 예술회관 등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시민들의 자발적 문화·예술활동에 주목해야한다. 이미 오래전 문화선진국들에서는 시민들의 문화·예술활동이 활발히 이뤄졌으며, 국가는 정책적으로 이를 지원해왔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기획보도를 통해 인천과 부평의 예술·문화 환경에 대해 점검하고, 국내 타 지역과 해외의 시민 문화·예술활동 사례들을 살펴, 향후 문화도시로 가기 위한 시민문화 활성화 방안을 그려보고자 한다.

<연재순서>
1. 현대사회에서 문화·예술활동의 의미
2. 인천·부평 문화도시, 어디까지 왔나?
3. 시민문화활동으로 하나 된 지역사회(국내편) 상
4. 시민문화활동으로 하나 된 지역사회(국내편) 하
5. 시민문화활동으로 하나 된 지역사회(일본편)
6. 시민문화활동을 넘어 문화단체로의 활성화(일본편)
7. 문화도시 만들기를 위한 시민문화 활성화

평화와 민주주의를 노래하는 우타고에

▲ 우타고에 전국협의회 오자와 히사시 사무국장.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평화의 원천이 되고, 그 노래 소리가 사람들의 투쟁과 함께하는 목소리가 되고, 한 명의 목소리가 여러 사람들에게 울려 퍼지도록 함께 합창하는 것이 우타고에(한국어로 풀이하면 노래소리) 운동의 목적이다”

6월 23일 만난 일본의 최대 시민합창단인 우타고에 전국협의회 사무국장인 오자와 히사시씨는 우타고에 운동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타고에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 최대 조직의 시민합창단이다. 현재 전국 47개 현 중 45개 현에 조직이 있으며, 전국협의회에 가입해 회비를 납부하는 합창단만 400여개,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은 6500여명이다. 지역에서 행사가 열리면 그곳에 참가하는 등 교류하고 있는 합창단으로 따지면 1200여개, 1만여명의 회원에 달한다. 지역에서 우타고에의 활동에 동의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까지 치면 수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우타고에 관계자는 설명했다.

우타고에 60주년 행사가 3일 동안 열렸던 2008년에는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을 1만 8000여명이 꽉 채웠을 정도다.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언플러그로 마이크 없이 1000명이 동시에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우타고에가 처음 시작된 날은 1948년 2월 10일. 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일본 원자폭탄 투하로 마무리 되자, 평화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날로 높아졌던 당시 세키 아키코씨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목적으로 합창단을 설립한 것이 기원이 됐다.

▲ 우타고에신문사 미와 스미에 편집국장.
아키코씨가 살던 자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우타고에 전국협의회와 우타고에신문사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우타고에가 애초 평화와 민주주의를 노래하는 것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우타고에는 ▲아름다운 일본민족의 노래 ▲세계 여러 나라 평화의 노래 ▲사람들의 생활과 투쟁의 노래를 창작하며 부르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노래 보급 사업과 새로운 합창단을 만드는 활동을 함께 벌여내고 있다.

우타고에가 출범할 당시 원폭의 피해를 겪었던 일본 시민들은 핵무기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우타고에의 활동과 함께 진행되면서 ‘원폭 용서치 않으리’라는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는 세계 7개국에서 불렸으며, 우타고에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큰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협의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타고에 활동의 특징 중 하나는 민주주의와 관련한 시민들의 활동이나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노래가 나오고, 이 노래가 문화예술전문가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노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1954년 미국이 ‘수폭실험’을 했을 때 이를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핵무기 반대운동과 노래가 동시에 전파됐다.

1960년대 중반에는 합창단의 활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지역 합창단을 만들었고 전국 축제인 ‘우타고에 축제’가 열렸을 때는 5만명이 참가하는 등 활동이 고조됐다. 창단 20주년이 되는 1968년에는 가극 ‘오끼나와’ 제작운동을 전개했다. 1970년대가 우타고에 활동의 절정기로 가극 ‘오끼나와’는 전국 규모의 공연 60회를 했고 수십만명의 관객이 이를 관람했다. 이후 우타고에는 합창회와 기악곡 등 대형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공연했으며,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노래들을 많이 불렀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반핵과 평화를 바라는 다른 단체의 활동과 결합하면서 연간 200번 이상의 음악회를 열었으며, 음악회를 통해 전쟁의 비참함이나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들을 많이 발표했다. 특히 평화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담아 어린이의 목소리로 구성한 노래 ‘코끼리 열차가 달린다’는 10만여명이 합창했으며, 공연을 관람한 관객만도 100만명이 넘었다.

현재 우타고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여성·장애인·복지·청년·노동자·교육·시민운동 등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핵도 기지도 없는 세기로! 자유와 평화의 노래 울려 퍼져라’는 구호 아래 합창단 활동과 사회변혁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민주주의 노래 부르며 사회관도 변화

▲ 도쿄부 신주쿠에 위치한 우타고에 전국협의회 사무실의 녹음실 모습.
우타고에는 매년 한 차례의 전국 합창 축제를 연다. 이 축제에서는 ‘1000명 대합창’이나 전통공연, 장애인·노동자들의 공연, 국제교류공연 등이 진행된다. 또한 지역에서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지역의 현안이나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음악회나 축제를 연다. 지역에서 훌륭한 공연이 나올 경우에는 전국 축제의 중앙무대에 올라갈 수도 있다.

또한 우타고에 협의회는 지역협의회뿐 아니라 산업별 협의회인 교육·통신·철도 관련 협의회가 있어 이곳 노동자들의 절실한 내용을 표현해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도쿄부 신주쿠에 위치한 전국협의회 사무실에는 전국협의회 사무국과 우타고에신문사가 함께 있는데, 6명의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1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건물에는 녹음실과 프로덕션이 함께 있는 음악센터와 세미나·연습실 등이 있다. 음향 조절 기술자를 양성하는 스쿨도 있다. 1955년에 창간한 우타고에신문은 유료신문으로 우타고에의 활동과 함께 사회문제도 다룬다.

우타고에는 시민합창단이지만 전문예술인들과 협력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질적인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타고에의 목적에 동의하는 최고의 예술가를 초청해 강의를 진행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협력이 잘되는 것이다.

우타고에신문사의 미와 스미에 편집국장은 “우타고에가 합창단이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만, 평화나 민주주의를 담은 노래를 계속 부르거나 신문을 읽으며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된다”며 “현재 일본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심각한데 이런 내용을 가진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배운 노래를 다시 요양원이나 보육원을 찾아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등 보급 사업과 실천을 하며 노래가 퍼지고 사회를 조금씩 바꿔내는 데 기여한다”고 덧붙였다.

▲ 도쿄부 신주쿠에 위치한 우타고에 전국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신문사, 녹음실, 프로덕션, 세미나실, 연습실 등도 한 건물에 있다.

전문예술인·시민합창단, 협력으로 ‘윈-윈’

우타고에 전국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난 다음날인 6월 23일 오후,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우라와구에 위치한 사이타마 합창단을 찾았다. 합창단은 주 2회 정기적인 연습을 나카모토 공민관에서 하고 있었다. 공민관은 평생학습시설로, 우리나라의 동네 작은 문화회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공민관 2층에 모인 20여명의 합창단은 지휘자와 반주자에 맞춰 연습하고 있었다. 지휘자와 반주자는 모두 전문예술인들이었다.

▲ 6월 23일 사이타마시 우라와구 나카모토 공민관에서 사이타마 합창단이 연습을 하고 있다.
“도오~죠”, “세~노”
카나이 마코토 지휘자는 합창단이 노래를 시작할 때마다 박자를 맞출 수 있도록 추임새를 넣었다. 지휘자는 합창단이 조금씩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노래를 멈추게 하고 아주 자세하게 지도했다. 또한 중간 중간 던지는 농담으로 연신 즐거운 분위기에서 연습이 진행됐다.

“입의 모양을 결정했으면 그 입모양을 바꾸지 말고 소리를 내세요. 그러면 큰 소리도 작은 소리도 모두 낼 수 있어요. 좋은 발성법으로 노래하면 정말 잘 들려요. 결정한 입모양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건 괜찮지만, 모양을 지켜서 불러주세요”
“자, 이 노래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느낌으로 부르세요”

2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연습임에도 불구, 단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연습은 11월에 있을 콘서트를 위한 것이었다.

사이타마 합창단이 만들어진 것은 1961년이다. 현재는 22세부터 79세까지 다양한 연령대 52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매주 2회 정기연습을 하고 있으며, 콘서트가 다가왔을 때는 토·일요일에 숙박시설이 있는 공립복지관에서 합숙하기도 한다.

7년 동안 합창단 활동을 했다는 무나가타 즈토우(37)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타고에 합창단 활동을 해 그 영향으로 30세부터 하게 됐다”며 “테너를 맡고 있는데 일이 힘들고 바빠도 합창단에 오면 즐겁고 건강해지는 것 같아 평생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42년 동안 활동한 키타주메 타카오(62)씨는 “전부터 노래에 관심이 있었는데 20세 때 전봇대에 붙어있던 ‘모두 함께 노래하자’는 합창단의 포스터를 보고 활동하게 됐다”며 “첫째로 노래가 좋고, 둘째로 우타고에의 목적에 동감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휘자 마코토씨는 “처음 합창단을 알게 됐을 때는 반신반의하며 같이 했지만, 함께 부딪치면서 이들의 열정과 진지함을 느끼고 서로 좋아져 지휘자까지 맡은 게 벌써 20년이 됐다”며 “프로는 압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프로 이상의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전달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들의 마음이 관객의 눈을 열어준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눈을 열도록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 프로이기에 프로 음악가라면 제대로 된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우타고에는 시민문화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사회를 바꿔나가는 문화단체로서 그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 6월 23일 사이타마시 우라와구 나카모토 공민관에서 사이타마 합창단이 연습을 하고 있다.

* 이 기사의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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