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억원서 15억원···협의회, “사실상 문 닫으라는 통첩”
중앙선관위, “사업 없어 역할 없어지면 사라질 수도”

세계선거기관협의회 등 국제기구 16개가 입주해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 G타워.

비정규직 실직위기에서 협의회 사무처 존폐위기로

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사무처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위원회가 A-WEB 사무처의 내년 예산을 추가로 삭감해, 비정규직 실직 위기를 넘어 사무처 유지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A-WEB는 한국 정부가 주도해 105개국이 참여한 준 국제기구다. 민주주의 발전을 희망하는 나라를 위한 선거제도 전파, 선거기술 지원, 교육 지원 등의 사업을 한다. A-WEB 사무처는 인천시가 유치에 성공해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틀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A-WEB 사무처 내년 예산으로 81억 원을 반영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54억 원만 승인했고,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이를 21억 원으로 삭감했다. 이어서 국회 예결위 소위가 다시 15억 원으로 줄였다.

국회 안행위가 21억 원으로 삭감했을 때 정규직(8명)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가 약 9억 원이었고, 나머지가 사업비였다. 이 삭감만으로도 사무처 유지를 장담하기 어렵고, 비정규직( 17명)이 실직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15억원으로 삭감한 예결위 소위 안이 최종 확정되면 사무처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의당 대표인 이정미 국회의원 등이 나서 ‘사업비 삭감에 따라 비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지고, 예고돼있던 내년 국제 사업 취소로 국제 신인도 하락이 예상된다’며 중앙선관위와 예결위 소위를 설득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국회 안행위와 예결위 소위의 예산 삭감은 A-WEB 사무처가 예산을 목적 외로 사용하고, 건거 개표기 수출 부정 알선에 연루됐다는 중앙선관위의 감사에서 비롯했다.

중앙선관위는 엘살바도로 언론의 ‘부정 알선 의혹’ 제기를 토대로 올해 1월 A-WEB 사무처를 감사했다. 이어서 ‘김용희 A-WEB 사무총장이 콩고민주공화국과 이라크 등에 선거 개표기 수출을 부정 알선하고, 보조금(예산)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며 지난 3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A-WEB 사무처는 ‘무리한 표적 감사였고, 혐의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사무처 관계자는 “중앙선관위가 인용한 엘살바도르 언론사 <크로니오(Cronio)>는 자국 기자협회에 등록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주소지가 없다. 이런 곳에서 쓴 허위 기사로 중앙선관위가 감사하고 수사를 의뢰한 건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목적’은 12월로 예정된 중앙선관위 상임위원(1석) 선출을 놓고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인 A-WEB 사무총장을 옥죈다는 것이다.

또, A-WEB 사무처는 ‘선거 개표기 수출의 경우, 콩고민주공화국과 이라크가 국제 입찰을 실시해 계약했고, 보조금 사용의 경우 A-WEB 사무처에 파견된 중앙선관위 공무원이 중앙선관위에 보고하고 승인받은 뒤 집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는 “이정미 대표가 국회 예결위 소위 의원들을 설득했는데, 분위기가 안 좋다고 했다. 의원들이 복원(기재부 안 54억원)하려해도 오히려 중앙선관위가 부정적이라고 했다”며 “중앙선관위는 A-WEB 사무처가 이 문제를 외부로 노출한 자체를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협의회 사무처, 총리실에 중앙선관위 신고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의 말은, 중앙선관위가 일종의 괘씸죄를 적용해 A-WEB 사무처 예산을 추가 삭감하는 데 나섰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상임위원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이라는 의혹을 부인했고, 국회 예결위 소위가 추가 삭감한 것은 A-WEB 사무처의 부정한 모습을 보고 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예결위 소위가 더 삭감하려했던 것을 그나마 설득해 15억원으로 방어했다”고 말했다. 상임위원 자리다툼 의혹에 대해선 “전혀 무관한 일이다. 감사 결과 부정이 드러났고, 고발로 이어졌다. 그게 전부다. 국회가 A-WEB 사무처의 부정을 보고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추가로 삭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A-WEB 사무처는 ‘검찰이 혐의를 인정해 기소한 것도 아니고, 설령 기소하더라도 재판까지 진행해야하는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국회에서 주장하며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A-WEB 사무처의 반박에도 불구, 예산 복원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재부 안으로 복원하려면 중앙선관위가 다시 요청해야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A-WEB 사무처 관계자는 “총액 기준 15억원으로 삭감하면 비정규직 유지는 고사하고 정규직 일자리도 불투명하다. 이게 다 중앙선관위가 행안위 소위 때 국제연수 등의 사업을 장비판매로 매도하고 참관 사업을 중앙선관위 해외출장과 동일하다고 위증한 데서 비롯했다”라며 “사실상 A-WEB 사무처더러 문을 닫으라는 얘기다. (사무처를) 다른 나라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사업비가 대폭 축소되면 A-WEB 사무처 기능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중앙선관위도 내다봤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사업비 감소로 사업이 줄어들고, 사무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A-WEB 사무처 비정규직은 17명이다. 이들의 인건비는 사무처가 진행하는 국제연수 등의 사업비에 반영됐다. 올해는 A-WEB가 인천에서 진행한 국제연수에 중남미ㆍ러시아권ㆍ아프리카ㆍ아시아 등의 33개국 선거관리기구 관계자들이 참여했고, 내년에는 개발도상국 중 45개국 선거관리기구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연수가 계획돼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정보통신기술(ICT) 특화 연수 사업 예산 20억 원이 전액 삭감돼, 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들이 실직 위기에 처했고, 여기다 추가로 총액 기준 6억원이 삭감됐다.

이에 A-WEB 사무처 직원들은 국무총리실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중앙선관위의 감사와 예산 삭감 협박 문자 등은 부당한 권력 적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총리실은 이를 감사원과 고용노동부가 조사하게 했다. 이 조사는 검찰의 ‘부정 알선 의혹’ 수사와 더불어 중앙선관위와 A-WEB 사무처 간 갈등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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