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5. 라오스(하편)

중국 계림이나 베트남 하롱베이를 닮은 방비엥

▲ 열기구를 타고 바라본 방비엥의 모습.
방비엥은 비엔티엔에서 약 100km 떨어진 자연도시다. 특히,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태국ㆍ캄보디아와 함께 꼭 한번 다녀와야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방비엥은 비엔티엔 근교의 인구 3만명에 불과한 자그마한 마을이었지만 요즘은 여행자가 해마다 15만명 이상 몰려든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특이한 모습의 산들과 동굴, 메콩 강이 빗어내는 모습이 중국의 계림이나 베트남의 하롱베이를 닮았다.

정확한 발음은 왕위앙이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으로 프랑스식 알파벳 표기로 인한 발음상 오류다. 비엔티엔도 정확한 발음은 ‘위앙짠’이다. ‘위’를 프랑스식 표기인 ‘v’로 했고(프랑스어는 v를 w처럼 발음함), 그걸 영어식으로 ‘w’로 읽다보니 비엔티엔이 됐다.

1월 13일, 열기구를 타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여기저기 들러 사람을 태우더니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무슨 깊은 뜻이 있겠지?

열기구를 타고 일출을 보러 광장으로 왔는데 구름이 잔뜩 끼었다. 타는 사람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더 많다. 터키 카파도키아 갔을 때 못 타서 두고두고 후회했는데 방비엥에 와서 타기를 잘했다. 날이 흐려 일출은 못 봤지만 대신 구름이 다른 풍경을 만들어줬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땅에서 올려다보는 풍경과 전혀 다르다.

열기구 타면서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방송대학교 중문과를 한 학기 다녔는데 열기구를 조종하는 젊은이가 하는 말이 중국어라는 걸 몰랐다. 돈 되는 사업은 이미 중국이 장악했나보다.

아침 먹고 조금 쉬다가 탐짱 공원에 갔다. 코끼리 동굴에 갔는데 포탄 껍질로 만든 종소리가 정말 청아하다. 똑같은 쇳덩어리를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쓸 건지 마음을 정화시키는 종으로 쓸 건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탐낭 동굴로 가서 튜브를 타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줄을 잡고 가면 되는데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줄을 놓쳤다.

▲ 콕싸앗 소금마을의 아이들.
나와서 점심을 먹었는데 음식을 너무 많이 차렸다. 남은 음식은 동네 아이들이나 동물 먹이면 된다는데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티셔츠를 하나 샀다. 라오스 국화인 짬빠가 그려진 티셔츠다. 4000원쯤 줬나? 물만 안 빠진다면 정말 좋겠다. 탐쌍으로 가서 카약을 타고 숙소 쪽으로 내려왔다. 나는 카약의 뒤에 앉아서 노를 젓지 않았지만 타고 있는 것만도 쉽지 않았다. 한 40분 만에 숙소 앞에서 내렸다.

정비를 위해 잠시 쉬었다가 블루라군으로 갔다. ‘푸른색 석호’라는 뜻이다. 자연속 수영장이다. 나무 위에서 곧바로 뛰어내리는 다이빙으로 유명한 곳.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은 남성 3명, 여성 5명 등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다이빙을 남자는 한 명도 안 했고, 여성만 3명이 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숙소 발코니에 비스듬히 누워 바라보는 쏭강의 붉게 물든 노을이 아름답다. 라오스 메콩 강의 일몰이 잠시 행복감에 젖게 한다. 저녁을 먹고 까무족 푸딩뎅 마을축제에 갔다. 다트로 풍선 터뜨리기가 제일 인기가 좋다. 너무 일찍 갔는지 시작할 생각을 안 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춤도 가르쳐 주고 한다는데 꼬치안주에 맥주만 마시다 왔다.

어쩌다 보니 벌써 라오스의 마지막 밤이다. 방비엥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 한잔 하고 게리스 아이리스 바에 가서 한잔 더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이번 여행 최악의 순간이 발생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오토바이치기를 당했다. 팔짱을 낀 채 오른손에 핸드폰을 들고 갔는데 그 핸드폰을 낚아 채갔다. 라오스 청년들의 소행은 아닐 거라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일하러 온 베트남이나 태국 청년들의 소행일 거라고 했지만, 어쨌든 라오스 방비엥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라오스도 마음 놓고 돌아다닐 나라가 아닌 것이다. 맥주 한잔 더 마시고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비엔티엔과 메콩 강

▲ 쏭강에서 롱테일이라는 배를 탔다.
1월 14일, 여행 마지막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카약킹을 했던 쏭강에서 롱테일을 탔다. 원래는 롱테일을 타고 강 위에서 일출을 보려는 계획이었는데 날이 흐려 기대난망이었다. 그러나 사물에는 늘 양면성이 있는 법, 일출을 못 보는 대신 운해를 보면 된다. 일출도 보고 운해도 볼 순 없다. 원래 우리 삶이 그렇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운해를 보면서 아침을 먹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다니 꿈만 같다. 방비엥을 떠나 비엔티엔으로 향했다.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처음에는 무슨 축사인줄 알았다. 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비엔티엔이 가까워 오니 번듯한 휴게소도 나온다. 비엔티엔은 인구 80만도 안 된다. 동남아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다. 망고농원에 가서 과일을 먹고 탕원 유원지에 가서 선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상하게 생긴 선풍기가 있어 무슨 선풍기인가 했더니, 선풍기를 틀어봐야 뜨거운 바람만 나오므로 얼음을 저장해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게 만든 선풍기란다. 라오스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해를 만났다. 처음으로 땀도 흘렸다. 그래, 이게 라오스지, 라고 느꼈을 때 라오스를 떠나야했다.

콕싸앗 소금마을에 들렀다. 라오스는 아주 오래 전 바다였던 곳이다. 지반이 융기하면서 콕싸앗 소금마을처럼 지역에 따라 지하수가 소금물인 곳들이 있다. 아이들이 한국말과 우리 노래를 제법 한다. 누가 가르쳐줬을까?

다음 행선지는 부다파크. 메콩 강변에 만들어 놓은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불상 공원이다. 씨앙쿠안이라고도 불린다. 길이 50m가 넘는 와불상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불상 200여개를 만들었다. 비록 시멘트로 만든 조악한 조형물이지만 불상의 표정들이 나름 재미있고 발랄했다. 거인을 형상화한 3층 구조물 꼭대기에 오르니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루앙 뿌의 작품이다.

이제 라오스와 이별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우리 여행을 도와준 과묵한 버스기사 씨엥텅, 고마웠다. 우리와 함께 여행한 라오스 가이드 ‘티’, 소리 없이 우리 여행을 도와줬다. 33세. 작년에 결혼. 아직 아이 없음. 한국에 와보고 싶어 함. 티, 꼭 다시 만나자.

비엔티엔은 ‘백단향의 도시’ 또는 ‘달의 도시’란 뜻으로 메콩 강을 따라 길게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메콩 강 건너편이 바로 태국 농카이다. 라오스에서 보면, 태국은 선진국이며 강대국이다.

탓루앙 사원으로 갔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이다. 부처님의 가슴뼈 사리가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1566년 세타티라수왕이 건립했다. 매해 11월에 대제가 열린다. 시멘트에 금색 칠을 했다.

▲ 메콩 강변에 있는 부다파크.
빠뚜사이로 갔다. ‘라오스의 개선문’으로 불리는 빠뚜사이는 1957년에 만들었다. 공항을 건설하라고 미국에서 제공한 시멘트로 만들었다고 해서 ‘수직 활주로’라는 별명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독립투쟁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기리고, 프랑스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흉내 냈다. 아이러니다.

밤이라 전망대에는 올라가 보지 못했다. 빠뚜사이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해놓았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그동안 촛불집회에 개근했다. 다른 지역에서 집안 행사 있던 날도 부랴부랴 올라왔고, 다른 지역에서 동문 행사 있던 날은 그곳 집회에 참여했다. 부득이 라오스 빠뚜사이 앞에서 피케팅을 했다.

건널목이 이상하다. 끝을 막아 놓았다. 차량용 신호등은 있는데 보행자용 신호등은 없다. 차가 부서졌는데 비닐 끈으로 묶었다. 둘러보면 낯선 것들 천지다. 여행은 낯선 것들을 이상한 것으로 보지 않는 훈련이다. 여행자거리로 가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여행자거리 시사방봉 로드는 불과 200m 남짓한 작은 거리다.

메몽 야시장을 구경했다.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코스. 여행자거리에서 가까운 곳에 메콩 강변을 따라 장이 섰다. 직물에서 각종 공산품, 먹거리까지 다양하다. 모두 짝퉁이겠지만 샤넬 향수에서 나이키 운동화까지 별의별 상표가 다 있다. 가이드 김 선생이 라오스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라오스 부인과 함께 공부해서 가이드 자격증을 딴 부인의 친구들도 만났다. 인연은 또 이렇게 새롭게 시작된다.

공항에서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여행은 서로 가슴을 열어놓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결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편안해지는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나는 과거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나? 싸바이디! 여행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인사말. 안녕하세요? 당신, 편안한가요? 그리고 당신, 행복한가요?

<후기>
여행을 다녀온 뒤 며칠 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라오스 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방갈모)’을 제안합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간 방갈로초등학교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만나고 나오는데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도저히 교실이라고, 교무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을 보면서 뜬금없이 꿀꿀이죽이 떠올랐습니다. 내 가난했던 유년기가 떠올랐습니다. 라오스 방갈로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데 굳이 다른 나라 아이들을 돕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은 계속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조직은 없습니다. 이름만 ‘라오스 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으로 하구요, 그냥 정기적으로 돈을 모아 아이들을 돕고, 라오스 여행도 하고, 가서 아이들과 놀다 왔으면 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어느 부모에게 태어났든 아이들의 삶은 존중받아야합니다. 친구 여러분, 방갈로 아이들과 함께 해주세요”

그랬는데 놀랍게도 48시간도 안 돼 함께하겠다는 친구가 무려 100명 가까이 됐다. 10여명으로 소박하게 시작하려했는데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일꾼도 뽑고 목표도 크게 잡았다. 궁극적으로 사단법인을 만들어 라오스에 도서관이나 학교를 세워보려 한다. 독자 여러분도 동참해주시기 바란다.

/글ㆍ사진 신현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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