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5. 라오스(상편)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어느 곳을 가느냐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고 있고, 내가 끝까지 사랑할 사람들과 하는 여행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지난 1월 9일부터 15일 아침까지 5박 7일간 라오스에 다녀왔다. <뉴욕타임스>에서 ‘2009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꼽았던 나라 라오스.

비엔티엔 왓따이국제공항

▲ 루앙프라방 공항.
1월 9일, 안개 자욱한 영종대교를 지날 때 비로소 나는 ‘또 떠나는구나’를 실감한다. 생각보다 공항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난 ‘잘 다녀오겠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렸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늘 편치 않았는데, 오늘은 특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이다.

“우리 다윤이 흔적이라도 찾게 해 달라. 올해 다윤이 생일(10월 1일)은 꼭 집에서 남은 가족들이 함께 지내고 싶다. 올해는 다윤이를 꼭 찾아 분향소에 사진을 올리는 게 소원이다” (실종자 허다윤양 아버지 허흥환씨).

라오항공은 처음 타본다. 기내에서 라오 맥주를 마셨다. 약간 쌉싸래하다. 기내식으로 나온 초코파이. 처음 봤다. 기압 때문에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늘 위 맞구나. 라오스에서는 귀한 음식인가? 어쨌든 기내식으로 초코파이는 처음이다. 같은 시간에 탑승수속을 밟았는데 일행 여덟 명 중 세 명은 맨 앞자리, 세 명은 중간, 나와 친구인 이신 사장은 맨 뒷자리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편한 자리에 앉아서 다행이다. 중고 비행기를 수입했는지 비행기 내부는 좀 낡았고 영화를 볼 수도 없었다. 가져온 박상률 선생 시집 ‘국가공인미남’을 읽다가 신문을 보다가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다섯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비엔티엔 왓따이국제공항에 잘 도착했다. 그런데 입국수속이 너무 느렸다. 이제 한국 사람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못 견딘다. 나도 화가 나려다가 생각을 가다듬었다. 아, 여기는 라오스지? 나라 이름 ‘라오스 인민민주주의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을 라오스에서는 ‘서두르지 마세요(Lao Please Dont Rush)’라고 읽는다지? 2008년 9월부터 무비자로 15일간 입국이 가능하다.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 김경준 선생을 만났다. 우리는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부랴부랴 짐을 끌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국내선 청사로 갔다. 청사라고 할 것도 없는 그냥 소도시 시외버스터미널 풍경이다.

그런데 공항에서 진귀한 물건을 발견했다. 도트 프린터. 1990년대 초반 286시절에 쓰던 그 도트프린터. 그런데 라오스에서는 ‘직직’ 소리를 내며 잘 돌아갔다. 루앙프라방 행 비행기 안에서 또 행운을 누렸다. 딱 한자리 비었는데 바로 내 옆자리가 비었다. 손가방과 신문과 시집과 벗어 놓은 옷과 안경을 올려놓으니 횡재한 기분이다. 일등석이 부럽지 않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 감동한다. 라오맥주 한잔 하며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신문을 보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가 가져온 박상률의 시집을 봤다. ‘치명적인’이 눈에 들어왔다.

상수리나무 휘감고 올라가는 칡넝쿨, 거침없다.
휘감은 자리마다 나무의 살 깊게 패인다.
나무의 굵은 허리 지나 가슴에 이르도록
세게 휘감은 사랑의 자국
상처 되어 깊이 박힌
치명적인 사랑에 붙들려
나무는 가만히 선 채
신음만 나직하다
(사랑하되 너무 깊이는 말고)
칡넝쿨은 그런 소리 아랑곳없이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거릴 때마다 휘감을 사랑 또 찾는다
깊이 붙들어 매지 않으면 아니 될 운명, 치명적인
<박상률 ‘치명적인’ 전문>

이번에는 삼각 김밥을 준다. 엉뚱한 얘기 하나, 삼각 김밥 비닐 포장을 발명한 사람, 대단하다.

루앙프라방의 몽족 야시장

▲ 루앙프라방에 있는 몽족 야시장의 상인들.
루앙프라방까지는 채 40분도 안 걸렸다. 무사히 잘 도착했다. 가방을 찾는데 한 시간에 한 개씩 나온다. 아, 급할 것 하나 없는 라오스지? 드디어 라오스 여행의 시작이다. 다 잘 될 것이다. 시장에 가서 밤에 먹을 과일을 샀다. 망고ㆍ파파야ㆍ람부탄ㆍ망고스틴ㆍ바나나ㆍ파인애플ㆍ수박ㆍ코코넛 등, 싸고 흔하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라오스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라오맥주 곁들인 음식들은 입에 대체로 맞았다. 한국에서는 귀한 계란이 흔하니 신기했다.

소화를 시킬 겸 몽족 야시장을 구경했다. 몽족들이 한때 수공예품을 만들어 옹기종기 모여 장사하던 곳인데 여행자들이 모여들면서 대규모로 변했다. 해질 무렵부터 좌판을 깔고 라오스의 소수민족인 몽족이 직접 짠 스카프와 가방 등을 팔고 있다. 그런데 시장이 시끄럽지 않다. 심지어 시장도 소란하지 않은 라오스다.

루앙프라방의 랜드 마크 역할을 하는 유명한 곳이라 해서 조마레스토랑을 찾아갔더니 문을 닫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나라라 문을 일찍 닫는다. 숙소로 돌아와 여행 첫날 회포를 풀 겸 술 한잔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라오스 여행에서 라오맥주는 실컷 마셔보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과했다. 라오 맥주는 체코 기술로 만들었다. 동남아 맥주 중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라오스에 와서 한국 소주와 라오 맥주를 섞은 ‘소맥’을 마시니 감개가 무량하다. ‘소맥’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성비’ 최고의 술이다. 소주는 약간 과격하고, 맥주는 약간 싱거우며, 양주는 돈이 아깝다. ‘소맥’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술이다. ‘소맥’과 함께 라오스에서의 첫 밤이 지나갔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고 있고, 내가 끝까지 사랑할 사람들과 하는 라오스 여행이니, 그들과 모여 앉아 밤 깊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사회주의국가 라오스

▲ 루앙프라방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근처 상가 모습.
라오스라는 나라를 잠시 공부해보면, 라오스의 다수 종족인 라오족은 원래 중국 운남 지역에서 난짜오왕국을 세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몽고의 침입에 의해 멸망하자 현재의 라오스 지역으로 이동해왔다. 라오족은 문자가 없어, 건국신화나 여타 고대사가 모두 구전돼왔다. 14세기 초까지 통일된 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도시 여러 개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먼저 루앙프라방을 중심으로 란쌍(100만 마리 코끼리라는 뜻) 왕국을 세웠다. 란쌍 왕국은 18세기 초 왕위 계승 문제로 왕실 간 다툼이 발생했고, 결국 비엔티엔ㆍ방비엥ㆍ루앙프라방ㆍ참빠싹으로 분열됐다.

오늘날의 라오스 국경은 프랑스의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정해졌다. 프랑스는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라오스를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루앙프라방의 왕을 라오스의 국왕으로 승격시켰다. 그런데 라오스가 내륙국이고 인구가 적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애초 프랑스가 의도한 중국 진출 교두보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식민정부는 라오스 개발을 등한시했다. 일시적으로
라오스를 점령했던 일본이 패망하자 지하에서 활동하던 라오스인들의 독립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53년 10월, 라오스는 입헌군주제인 왕립 라오정부를 탄생시키며 완전한 주권국가의 지위를 확보했다. 그런데 베트남ㆍ중국ㆍ소련은 라오스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국내 공산주의 세력인 라오인민혁명당(LPRP)을 지원했고, 그에 반해 미국과 태국은 왕립라오정부를 지원했다.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공산화하기 위해 지원한 군수품 보급로가 라오스 동부를 경유하자 미군은 이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전 국토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던 파텟 라오는 1975년 8월 마침내 중앙정부를 장악했고 입헌군주제를 폐기하는 한편 까이썬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라오스는 라오인민혁명당 외의 정당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당체제의 사회주의국가다.

1991년 제정된 신헌법을 보면, 국가수반은 대통령(국가주석)이다. 라오스 문화의 핵심은 소승불교. 란쌍 왕국이 건국되면서 불교는 국가 종교이면서도 왕조의 통치 이념으로 작용했다. 각 마을마다 세워진 사원은 종교기관이기도 하지만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승려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계층,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지방행정기관과 라오스인민혁명당 청년동맹의 허가를 얻어야한다.

라오스는 전 국토의 80%가 산악ㆍ구릉ㆍ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고온다습하며, 5∼10월의 우기와 11∼4월의 건기로 나뉜다. 연중 기온은 12∼2월 한랭기에 16∼21℃, 우기 직전인 3∼4월에 32℃ 이상, 우기에 27℃ 정도다. 국토의 대부분이 열대성 수림으로 덮여 있고, 농경지는 3%에 불과하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1.1배다. 라오스 표준시는 한국 표준시보다 2시간 느리다. 메콩 강 연안의 저지대에 사는 라오룸(68%), 낮은 산악지대에 사는 라오텅(24%), 해발 600m 이상에 사는 라오숭(10%) 등, 소수민족 49개가 모여 산다. 라오어는 태국어와 성조와 단어가 유사하다. 인구는 2012년 기준 650만 명 정도다. 주 16개와 특별시 1개로 구성돼있다.<두산백과 참조>

루앙프라방의 새벽 탁발

▲ 루앙프라방의 새벽 탁발. 스님들이 탁발을 위해 줄을 길게 섰다. 탁발은 라오스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행해지는 종교의식이다.
본격적으로 루앙프라방을 돌아볼 시간이다. 라오스 제2의 수도인 루앙프라방은 1975년에 수도가 비엔티엔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라오스의 수도였다. 새벽 5시께 일어나 루앙프라방의 새벽 탁발을 구경했다. 탁발은 라오스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행해지는 종교의식이다. 비가 오락가락했다. 탁발 스님 일행보다 더 일찍 나온 커피 파는 청년한테 라오스 커피를 사마셨다. 진한 커피에 연유를 듬뿍 넣었다. 너무 달았다. 이게 라오스 식 커피인가? 우리 일행도 싸이밧(=찹쌀밥)과 과자 등을 사서 탁발에 참여했다. 전부 맨발이다.

벌레 하나도 죽이지 않겠다는 ‘불살생’의 의미다. 탁발하는 스님들 덕분에 개들도 덩달아 포식한다. 새벽에만 열리는 ‘새벽시장’에 가서 아침식사 때 먹을 생선을 한 마리 샀다. 그런데 생선 크기가 사람 얼굴만 하다. 노란 박스에 시커먼 것들이 꿈틀거린다. 두꺼비를 잔뜩 잡아다 놓았다. 두꺼비도 먹나? 찹쌀 튀김을 사먹었는데 너무 짜다.

비는 계속 내린다. 새벽 메콩 강 위로도 비는 계속 내린다. 거리도 사람도 배도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모두 젖었다. 건기라더니? 지구온난화는 라오스의 건기와 우기도 무색하게 만드는구나.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 신현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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