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45. 라오스(중편)

란쌍 왕국의 고도(古都), 루앙프라방

▲ 왓 씨엥탕의 ‘생명의 나무’.
1월 10일, 숙소를 파라다이스리조트로 옮기고 둘째 날 일정을 시작했다. 라오스 제2의 도시인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유일 통일왕조였던 란쌍 왕국의 고도(古都)로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먼저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왕이 살던 곳이라 왕궁박물관으로도 부른다. 프랑스인 건축가가 설계했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프라방(=불상)이 모셔져있다. 왕궁 정중앙에는 집무실이 있다. 왕들이 쓰던 방과 집기 등을 전시해놓았다. 여자화장실을 우리말로도 써놓았는데 ‘여인’이다. 재미있다. 박물관 한구석에 왕들이 타던 승용차도 전시해놓았는데 특이하게 운전기사들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 박물관 앞에서 삥막꽈이를 사먹었다. 구운 바나나인데 맛이 괜찮다.

왓 씨엥텅으로 갔다. 여러 사원 가운데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규모와 완성도, 역사적ㆍ예술적 가치 등에서 가장 뛰어난 사원이다. ‘왓’은 사원, ‘씨엥’은 도시, ‘텅’은 황금이라는 뜻. 황금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박물관에 모신 프라방이 라오스에 들어오기 전에는 루앙프라방의 지명이 씨엥텅이었다. 국왕의 대관식이 열렸고, 사원 앞쪽 강변은 과거 루앙프라방의 관문이었다. 건물 벽 대부분은 유리로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생명의 나무’가 유명하다고 해서 땅에 심어놓은 나무인지 알았더니, 대법전 벽에 유리조각을 붙여 만든 모자이크 벽화다. 1960년에 만들었다. 힌두교와 불교에 바탕을 둔 우주론을 형상화한 것이다.

강에서 스님 한 분이 올라왔다. 어디 다녀오시는가? 이번 여행을 도와주고 있는 가이드 김 선생은 원래 사진작가 출신이다. 약간의 연출을 하니 역시 내가 찍는 사진과는 격이 다르다.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라오 전통 소주 짬빠라오를 반주로 마셨다. 거의 40도. 마치 우기처럼 비는 양철 처마 위로 퍼붓듯 요란하게 내리고, 여행이고 뭐고 퍼질러 앉아 빈대떡에 낮술이나 퍼마셨으면 좋겠는 라오스의 오후다. 내 친구 김상배 시인의 ‘낮술’이란 시가 생각난다. 단 두 줄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김상배 ‘낮술’ 전문>

경제수준에 비해 물가는 전반적으로 비싸

▲ 꽝시 폭포 앞에서 ‘세월호 1000일’ 피케팅.
한 40분 정도 달려 꽝시 폭포로 갔다. ‘세월호 1000일’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일행들이 폭포 앞에서 피케팅을 했다. 내려오다가 말레이 곰 보호센터를 들렀다. 이곳을 운영하는 ‘프리 더 베어스’는 메리 허튼이 설립한 단체다. 라오스구조센터는 지난 2003년 문을 열었다.

루앙프라방 시내로 들어오다가 옥폽똑 리빙 크라프트센터에 들렀다. 옷감 짜기 체험을 하고 판매도 한다. 메콩 강변이라 풍광이 매우 수려하다. 정자 이름을 ‘My Office for Day(마이 오피스 포어 데이)’라고 붙여 놓았다. 이신 사장이 ‘멍 때리는 곳’이라고 번역했다. 기막힌 번역이다. 실크 염색을 하는 인간문화재 할머니는 시간을 잊은 듯 실크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고, 급할 것 하나 없는 긴 꼬리배가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루앙프라방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어제 대충 봤던 야시장을 또 들렀다. 라오스 돈 ‘킵’ 계산하는 법을 잠시 알아보자. 우리 돈으로 대충 계산해 보려면 0을 빼고, 1.5를 곱한다. 예를 들어 국수ㆍ스프링 롤ㆍ소시지 등, 현지 음식을 뷔페식으로 파는 노점 식당에서는 한 접시 가득 퍼 담아 1만 킵. 그러면 우리 돈으로 얼마? 그렇지 약 1500원이지. 1500원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니, 싸다. 선물을 몇 개 샀다. 그러나 라오스의 경제수준에 비해 물가는 전반적으로 비싸다. 제조기술이 부족해 생수ㆍ맥주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필품과 공산품은 모두 태국에서 수입해오기 때문이다. 태국보다 50% 이상 비싸다. 동전은 없고 모두 지폐다. 모든 지폐에는 라오사회주의공화국 창시자이며 국부로 추앙받는 카이손 폼위한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각자 자유롭게 시장 구경을 하다가 만일 헤어지면 어제 못 들어가 본 조마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일행이 두 패로 갈렸는데, 내가 속한 팀은 길을 잃었다. 헤매다가 물어물어 조마레스토랑을 찾아갔는데 어제 가봤던 그곳이 아니었다. 아니 루앙프라방에 조마레스토랑이 두 군데란 말인가? 루앙프라방이 그렇게 넓어? 나중에 찾아보니 인기가 좋아 2호점을 열었고, 비엔티엔과 베트남 하노이에도 지점이 생겼다.

여행 이틀째 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소맥’ 속으로 내 위장이 풍덩 빠졌다.

술과 옷감으로 유명한 반쌍하이 마을

▲ 옷감과 술로 유명한 반쌍하이 마을.
1월 11일.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도와주던 누양, 27세다. 전형적인 라오스의 웃음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라오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 나서 좀처럼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라오스인들은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일하지 않는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머리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을 가엽게 여긴다. 베트남인들이 쌀을 심는다면, 캄보디아인들은 쌀이 자라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라오스인들은? 쌀이 자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행 3일째. 아침마다 누룽지탕을 끓여 먹으니 속이 편안하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각자 가져온 물품 중 최고의 히트작은 누룽지. 배를 타고 반쌍하이 마을에 가기 위해 생명의 강 메콩으로 내려갔다. 이번 여행에 준비해온 물품 중 두 번째 히트는 블루투스 스피커. 메콩 강 물결소리와 함께 성시경의 노래 ‘두 사람’도 함께 흘러간다.

반쌍하이 마을은 술과 옷감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라오스 위스키인 ‘라오 라오’를 만들어 판다. 그래서 별명이 위스키 마을이다. 술 몇 병을 사고 마을을 둘러봤다. 작은 절도 있고, 여러 군데 스카프나 옷감, 공예품등을 파는 가게들도 줄지어 있다. 절 다락 위에 있는 노스님은 내게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도무지 짐작 안 가는 표정으로 앉아있고, 아기는 반갑다는 건지 반갑지 않다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마을에서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우강 입구의 빡우 동굴로 갔다. ‘빡’은 입, 우는 우강이란 뜻이다. 전쟁 때 마을 사람들이 집에 있는 불상들을 가져와 모셔 놓은 곳이다. 불상이 무려 2500개가 넘는다. 동굴 구경을 하고 내려와 루앙으로 돌아오다가 반쌍하이 마을에서 산 물경 50도짜리 전통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셨다. 메콩 강 위에서 배에 흔들리며 낮술에 취하니 천국이 따로 없구나. 이런 기분으로 이태백은 바로 호수로 달을 따러 들어갔나? 술에 취해 돌아가면서 노래까지 부르니 부러운 게 없다.

▲ 우강 입구에 있는 빡우 동굴.
비몽사몽으로 배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다. 사진작가 네덜란드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식당에서 나와 잠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만일 헤어지면 조마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어찌하다가 오늘은 나만 외톨이가 돼 길을 잃었다. 일행들과 떨어져 완벽하게 혼자가 됐다. 일행 중 아무도 전화를 안 받고, 배에서 낮부터 마신 술은 깨지 않아 비몽사몽이고, 비는 내리고, 나는 메콩 강만 따라 계속 오르내렸다.

그런데 저기 보이는 가게에 앉아있던 가이드 김 선생이 벌떡 일어나 내게로 다가왔다. 무슨 구세주 만난 것 같다. 그저께 시간이 늦어 못 들어갔던 조마레스토랑, 어제 못 찾았던 조마레스토랑, 오늘도 못 찾을 뻔한 조마레스토랑. 카메라와 전화기를 내려놓고 바닐라라테를 마셨다. 내 눈물은 그쳤는데, 라오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잘 기억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사원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또 술을 마셨고, 라면을 끓여 먹었고, 진흙탕 길을 걸어 숙소 근처의 카페에 가서 또 맥주를 마셨다. 라오스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신다. 노래를 신청하고 자기 자리에서 부른다. 진흙탕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와 또 한잔을 마셨다. 내 삶도 저 길 같을까? 아닐까? 한 12시간 쯤 술을 마셨다. 술 마시러 라오스에 왔다.

방비엥에서 3일이나 머물렀다. 그새 정들었던 루앙프라방의 사람들과 헤어지려니 가슴이 아팠다. 이 세상 슬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으랴! ‘싸바이디(잘 가요), 폽깐마이(다시 만나요)’ 말 나온 김에 라오스어 몇 마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싸바이디. 안녕하세요, 편안하세요, 잘 가요, 좋아요, 잘 지내요 등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다음은 컵짜이, 감사합니다. 행운을 빌어요는 쏙디, 괜찮습니다는 보펜냥.

방비엥으로 가는 길

▲ 옥폽똑 리빙 크라프트센터의 옷감 짜기 체험.
1월 12일, 루앙프라방을 떠나 방비엥으로 향했다. 참 햇볕 구경하기 어려운 라오스 여행이다. 건기라더니 비 안 내린 날이 없다. 파카를 입고 다녔다. 내가 파카 입으려고 라오스에 왔나, 자괴감이 든다. 이것도 다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김경준 선생의 지난번 여행팀이 보낸 옷을 전달하러 푸쿤에 있는 방갈로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시설이 거의 학교라고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선생님들의 월급도 우리 돈 15만원 정도라고 한다. 옷은 해어졌지만 아이들의 얼굴만은 밝았다. 학교를 걸어 나오는데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라오스는 아직 의료시스템이 정착하지 못했다. 보건소가 있는 곳은 그나마 낫지만 많은 지역이 상수도도 없고 의료진도 부족하다. 아이가 아파도 바라만 보는 마을도 있다. 라오스의 5세 미만 영유아 사망률은 인구 1000명당 79명(2012년 기준)인데, 루앙프라방 지역은 무려 107명에 달한다.

푸쿤 정상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또 술을 마시자는데 이날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사실은 오바이트를 참느라 버스 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거의 실신지경이었다. 자업자득이니 수원수구하리요? 아주 잘코사니지. 실크로드 여행 때도 게르에서 칭커주를 억병으로 마시고 주접떨다가 결국 다음날 버스 안에서 오바이트를 했다. 이번에는 천만다행으로 그 지경까지는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반성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구름이 잔뜩 끼어서 자연은 또 다른 풍광을 선사해준다. 사진 배경이 마치 사진관에서 흰 막을 쳐놓은 것 같다. 방비엥으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모처럼 해가 났다. 반가운 해. 방비엥이 멀지 않다. 또 버스를 탔다. 초인적인 노력으로 오바이트를 하지 않고 약 9시간 만에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했다.

숙소인 타원쑥리조트에 짐을 풀고 티브이에 나와 유명해진 피핑쏨쓰라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이 특이했는데 삼겹살도 아니고, 그렇다고 샤브도 아닌 퓨전 음식이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방비엥은 거의 80% 이상이 한국인이다. 물 반, 한국인 반이다. 티브이 프로그램이 방비엥을 그렇게 만들었다. 방비엥을 도와주는 건가, 아니면 방비엥을 망치는 건가. 샌드위치 등 거리음식을 사먹었다. 한글이 방비엥 와서 ‘개고생’하고 있다.

남쏭에 가서 맥주 한잔 했다. 역시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신다. 유명하다고해서 사쿠라 바에 갔는데 춤추는 소리에 시끄러워서 있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맞은편에 있는 개리스 아이리시 바가 덜 시끄러워 우리 수준에는 맞았다. 가수 사이먼이 노래를 부르는데 모르는 노래다. 맥주 한잔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더 이상 술이 반갑지 않다.(다음호에 계속)

/글ㆍ사진 신현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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