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관위, ‘윤석열 정권심판’ 정당현수막 불법 판단
“특정 정당 반대행위로 보여”... 윤석열=국민의힘 해석
인천 야당 예비후보 선관위 제재 받았다가 번복 촌극
헌재 보장한 시민단체 낙선운동 현수막·피켓 금지 우려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윤석열 정권 심판’을 구호로 하는 선거운동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해석한 문건을 작성해 각 시·군·구 선관위에 배포했다.

정권심판 구호는 매 선거철마다 나오는 단골메뉴인 만큼 정치인의 정치 활동과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참정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인천투데이> 취재를 정리하면, 중앙선관위는 어떠한 정당이 ‘윤석열 정권 심판’과 같이 특정 정당을 반대하는 내용을 현수막이나 피켓으로 활용하는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각 시·군·구 선관위에 배포했다.

중앙선관위가 각 시군구 선관위에 배포한 선거법 위반 게시물 예시 자료집.
중앙선관위가 각 시군구 선관위에 배포한 선거법 위반 게시물 예시 자료집.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제90조(시설물설치 등의 금지)를 이유로 들었다. 이 조항을 보면, 누구든지 선거일 120일 전부터 특정 정당 명칭이나 후보자 성명·사진, 또는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광고물 사용은 금지된다.

즉, 선관위는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을 동일한 주체로 규정하고, ‘윤석열 정권심판’을 ‘국민의힘 심판’으로 해석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제85조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직자다. 그런데 마치 이번 총선에 나서는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는 판단이다.

선관위는 이에 해당하는 비슷한 사례로 ‘윤석열 검찰 독재 심판’을 들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거부권 통치 종식’은 특정 정당 반대로 보기 어려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두 문구의 해석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적시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시 야당 미래통합당 인천시당 차원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을 구호로 현수막과 피켓을 내건 모습.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시 야당 미래통합당 인천시당 차원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을 구호로 현수막과 피켓을 내건 모습. 

인천 야당 예비후보 선관위 제재 받았다가 번복 촌극

이로 인해 인천의 한 지역구 예비후보 선거캠프는 소관 선관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가, 선관위가 번복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선거캠프는 지난 2월 29일 ‘윤석열 정권심판’ 내용의 피켓을 제작할 수 있는지 선관위에 물었다.

이에 선관위는 지난 8일 불가하다는 답변을 했으나, 이내 예비후보자 차원에서 해당 문구를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정정했다. 예비후보는 선거활동을 하는 자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추천·반대 모두 선거운동이라 가능하다는 해석이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여전히 선거에 직접 나서는 (예비)후보가 아닌 정당 차원에서 배포·게시하는 홍보물에 ‘윤석열 정권심판’ 내용을 담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 봤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한 내용은 동일하다.

이에 해당 지역구 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는 윤석열 정권 자체를 여당 국민의힘과 동일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법적 판례는 모르지만, 과거 선례도 이와 같았다고 했다”며 “예비선거운동 기간 정당현수막으로 정권심판을 기재하는 건 안 된다. 다만, 이달 28일 본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면, 각 정당들도 비례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운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정권심판 구호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가 보장한 시민단체 낙선운동 현수막·피켓 금지 우려

또한 선관위 해석의 토대가 된 공직선거법 제90조는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집은 지난 2022년 헌법재판소 판결과도 일부 배치된다.

헌재 판결에 따라 지난해11월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이른바 낙선운동을 펼친 총선시민네트워크(2016총선넷) 활동가들에 대한 유죄판결을 대부분 파기했다.

낙선운동 당시 2016총선넷은 각종 보도자료와 유인물을 배포하고, 기자회견 때 낙선후보를 명기한 피켓과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이번 선관위 해석대로라면 이번 22대 총선 낙선운동은 말과 구호로만 이뤄져야 한다.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한필운 변호사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진행하는 지역순회 민생토론회가 관권선거라는 야당 비판이 나온다. 정치개입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관위 판단은 편파적으로 보인다”며 ”일상에서 정부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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