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지난해 한 착한 기업의 통 크고 뜻 깊은 후원이 있었다. 덕분에 국내 수많은 청소년이 성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연말에는 백여 명이 넘게 국회에 모여 발표도 하고 정책 토론도 했다. 이들은 1년간 몸소 느끼며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하며 의미 있는 활동이 지속되기를 희망했다.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얼마 전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청소년이 직접 발표한 사례를 소개한다. 한 청소년성문화센터 동아리 ‘사춘기상담소’에 모인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첫 번째 미션은 ‘자신이 생각하는 성(性)과 관련된 물건 가져오기’였다. 다양한 물건들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꿀’을 가져온 한 초등학생이 있었다. 꿀? 성(性)과 꿀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당신이 떠올린 것이 ‘달콤해서’이거나 꿀은 영어로 허니(honey)이니 그렇다면 사랑인가? 혹은 ‘끈적끈적해서’였나. 안타깝지만 모두 틀렸다.

하지만 서운해마시라. 필자도, 수십년간 성교육을 해온 그 누구도 맞추지 못했으니. 답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바로 “성에는 건강도 중요한 것 같기 때문에”라는 것이 그 답이다.

어느 초등학생의 엉뚱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핵심을 간파한 것. 성 건강은 국내외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바로 “성ㆍ재생산 건강권(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인간의 생애와 밀접한 성과 재생산(임신, 출산, 양육) 영역을 건강권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월경을 들어보자. 성교육의 단골 주제이기도 한 월경은 이전에는 임신, 출산의 관점에서 설명됐다. 즉 월경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착상되지 못한, ‘임신에 실패한 결과’라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월경을 터부시하는 문화로 인해 ‘그날’, ‘마법’, ‘생리(현상 중 하나)’ 등으로 불리며 ‘두통 치통 생리통’ 쯤으로 퉁 쳐 왔다.

이러한 인식은 2차 성징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성교육 시간에 월경을 귀찮은 일, 끔찍한 것이라고 말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대하는 청소년들을 자주 접하곤 한다. 몸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 거부감 등을 종종 드러낸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올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성에 관한 관심을 가지면 어른들이 불편해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아이들은 갑작스런 어른들의 태도 변화가 이상하다.

사춘기 시기가 되니 어느 날 성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성은 ‘위험한 것’, ‘숨겨야 할 것’이라고 배웠는데, 갑자기 등 떠밀듯 ‘너도 곧 어른이 될 테니’ 알아야 한다고 하니 낯설기만 하다.

그리고 과학적인 지식, 실제로 필요한 정보보다 먼저 도착하는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 ‘조심해라’이다. 아이들 입장에선 알 수 없는 불안감, 당혹감 또는 무관심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다. 게다가 월경은 부끄럽고 감춰야 할 대표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사람도 안 하는 사람도 불편한 주제인 것이다.

월경 교육으로 돌아가 월경을 다시 정의해보자. 2차 성징이 시작되는 10대에서부터 30년 이상 지속되는 월경은 한 인간의 생애에서 보편적, 지속적인 일상의 경험이다.

실제로 월경을 하는 사람은 ‘월경 시작했네’라고 하지, ‘내가 임신에 실패 했구나’라고 하지 않는다. 월경은 ‘임신의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의 경험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 10대의 향후 출산율은 얼마나 될까(2023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이고, 최근엔 0.65로 떨어졌다) 획기적으로 한국의 출산율이 높아진다 해도 월경보다 일상적인 경험이 될 순 없다.

그러므로 지금 청소년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월경 그 자체에 대한 것들이며, 이것이 청소년들이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한다.

청소년들에게 일회용 생리대를 잘라보게 한다.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알려주고 흡수력 테스트도 한다. 월경 기간 다 합한 월경혈의 양이 80ml에서 많게는 120ml로 요구르트 한 병(65ml)보다 살짝 많다는 설명에 아이들은 놀란다. 매일매일 피를 철철 흘리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면 무섭지 않단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면월경대, 월경팬티, 탐폰, 월경컵 등을 직접 보여주고 만져보게 하면 청소년들은 신기해한다. 상황에 따라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월경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진다.

좋아하는 물놀이를 앞으로도 갈 수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월경혈이 샐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기까지 한다.

성 건강권에서 말하는 건강은 질병·기능 저하, 장애가 없는 상태를 포함하여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의미한다. 건강한 삶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성 건강 역시 그러하다. 성에 관해 하나만 다르게, 제대로 가르쳐도 아이들은 더 건강해진다. 훨씬 더 행복해진다.

처음에 언급한 ‘자신이 생각하는 성(性)과 관련된 물건 가져오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성에 관해 가져왔던 생각들, 성은 음란한 것이며 성적 관심, 행동은 위험한 것이라는 편견, 그로 인한 무지와 혐오 대신 그 자리에 ‘꿀’, 건강을 놓는 건 어떨까. 청소년들이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타인을 더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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