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현 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2023년 7월 21일 오후 2시 7분 신림역 4번 출구 골목에서 끔찍한 칼부림 사건이 벌어진 그날. 범죄 발생 시간 30분 전 나는 신림역을 지나갔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소식을 접했다.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잔인한 범죄가 벌어진 것도 끔찍한데 바로 나를 스쳐 지나가다니. 무고한 피해자 중 한 명이 나였을 수 있다는 공포와 평범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잔인성에 충격을 금지 못하고 경악했다.

알다시피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서현역의 흉기 난동 사건과 온라인에서 이어진 살인 예고 협박. 믿기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필자의 일터가 위치한 곳을 범행 장소로 한 예고 글도 있었다. 예고일 하루 전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다.

결국 끔직한 예고 지역에 속한 그 안의 청소년기관들은 모든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종사자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이동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일상은 흔들렸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경찰은 흉기난동범죄에 강력한 대응 방침을 세우고 특별치안활동 선포하고 활동에 들어간다고 했다. 온라인 상 살인 예고 글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8월 30일 기준 언론보도에 따르면 236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범죄 예고 수위가 심각한 20여명은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이들 다수는 자신들의 범행이 “장난이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예고 글이 실제 범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한다. 그리고 온라인 세계의 특성상 다수가 허위 글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되짚어 볼 게 있다. 살인예고 글이 “장난이었다”고 해서 다행일까. 그게 아니라 오히려 “장난이었다”는 사실이 심각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등 폭력이 발생하는 곳에 가해자들은 많은 경우 그것이 “장난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할 때 얻어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장난이었는데, 그걸 진짜로 받아들인 너의 잘못’이 된다.

폭력 사건의 책임 주체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폭력이 마치 “장난”과 같은 사소한 일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이다. 결코 사소한 폭력은 없다. 얼마 전 초등학생 대상 또래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친구 사이 장난이라며 하는 행위들, “몰래 의자를 뺀다거나”, “자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것” 등이 장난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모두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물론 구체적인 관계와 상황에 따라 약간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장난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쪽이 다른 쪽에게 일방적으로 어떤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장난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면 특히 말이다.

그런데도 가해자들이 꾸준히 ‘장난’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 그래야만 책임이 가벼워지거나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이나 학교폭력 가해자들도 늘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며 행위의 결과보다는 의도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하지만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는 의도는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그 일로 인해 실제 벌어진 효과, 많은 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경찰력이 엉뚱한 곳에 동원됨으로써 실제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는 결과가 더 중요하다. 어떤 행위의 성격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가 보여주는 것이다.

성교육 의뢰 중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가 늘어나면서 학교나 양육자들은 장난으로라도 청소년들이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게 “엄하게” 가르쳐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묵인되는 사건들, 실제로 처벌되지 않는 현실의 폭력 사건들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1시간 남짓의 교육에서 “엄하게” 가르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폭력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폭력적인 문화에 민감해지자고 한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가해자들은 금방 풀려난다”,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배움은 교실 안에서만, 수업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가장 큰 배움터이다. 우리 사회가 폭력을 용인하지 않고, 작은 폭력에도 민감해질 때 폭력은 예방된다. 청소년이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고 평범한 직장인들의 아침 출근길이 평화롭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가 폭력의 문제를 “엄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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