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현 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인천투데이|학교에서 교사들을 만날 때면 가끔 듣는 말이 있다. 이제 학교가 많이 성평등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점이 그런지 질문을 던져 보곤 한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출석부’를 꼽는다.

학교는 출결을 포함해 생활지도 상 편의를 위해 학생들에게 번호를 부여하는데 그동안 관행적으로 남학생에게 앞번호, 여학생에게 뒷번호를 부여했다.

변화가 시작된 건 최근이다. 한 학부모가 이러한 방식이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것이다.

2019년 인권위는 “어린 학생들에게 남녀 간에 선후가 있다는 차별의식을 줄 수 있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출석번호 지정 관행을 개선해 성차별을 방지하라는 권고를 각 교육청에 전달했다.

출석부가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성별 구분을 없애고 가나다 또는 생일 순으로 번호 부여하는 등 방식이 달라졌다. 구분이 있는 경우엔 해마다 번갈아 순서를 부여하기도 한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인권위의 권고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의미 있는 결과이다.

이러한 경험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차별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일상에서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석부라는 작은 변화가 ‘성평등의 징표’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느끼는 변화의 의미, 그 크기와 다르게 2023년 현재 초등학생에게 이런 변화는 그저 ‘옛날 옛적 이야기’이다. 2010년 이후 출생자인 초등학생들은 2019년까지 이러한 관행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다고 여긴다.

왜 굳이 성별을 나누고 그에 따라 번호 순서를 다르게 했는지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상 속 성차별의 문제를 아이들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의 경험과 생각은 매우 뚜렷하다. 초등학생의 경우, “남자애들만 무거운 거 들라고 시켜요”라거나 “여자애가 얌전하지 못하다고 혼났어요”라고 억울함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취급받는 것을 성차별이라고 인식하며 이것이 불평등이기에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들의 사례는 좀 더 다양하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두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먼저 교복이다.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활동성을 고려해 생활복을 도입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복의 기본은 남학생은 바지, 여학생은 치마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바지는 선택사항이다. 본인이 원한다면 입을 수 있지만, 치마를 필수로 구비하고 바지를 옵션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구책으로 치마 안에 체육복을 입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적사항이 되곤 한다. 아이들에겐 이 역시 성차별로 인식된다.

두 번째로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탈의실이다. 체육 수업을 위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아직 여학생용 탈의실만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에 대해 누군가 성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나는 교실이 더 편한데”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교실이 모두가 편할지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면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두 사례가 모든 학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학생들 안에서도 이에 관한 생각과 원인 분석, 해결 방법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매일 익숙하게 경험하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은 이미 차별을 느끼고 있고 그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차별로 볼 수 있을지, 그렇다면 누구에게 차별인지, 해결법은 무엇인지에 진지하게 고민한다.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게 말하기 위해 근거를 찾고 타인의 의견이 타당하면 수긍하는 것도 빠르다. 이때의 전제는 모두에게 더 나은 학교, 성평등한 학교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더욱 관찰하고 공감하기 위해 애쓴다.

우리 사회가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 성평등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현재 좀 더 성평등해졌다는 것이 오늘날 성차별이 사라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앞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차별은 아주 가까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해서 지금까지 이뤄온 오늘의 성평등에서 좀 더 나아가 더 나은 내일을 성평등을 원할 순 없을까.

오늘의 성평등에 만족하지 말고 오늘의 성차별은 무엇일지 살피고 꺼내 이야기 나누는 건 어떨까. 교복과 탈의실처럼 작아 보이지만, 우리 일상에 가까운 것부터 청소년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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