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최근 성교육 의뢰가 정말 많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문의 전화가 걸려 온다.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사안이 발생했기 때문에 교육이 시급하다”거나 “연말에라도 교육을 해줄 수 없냐”는 질문이 많다.

안타깝지만 필자가 일하는 곳은 올해 교육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 때문이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교육 접수가 끝난 곳도 있으니, 이곳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대다수 성교육 현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의 중복성․유사성”을 지적하며 여성가족부는 내년도 학교 성인권, 장애 아동․청소년 성인권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 상황이다. 규모는 크지 않다. 5억6000여만원이다.

이뿐이 아니다. 주요 청소년 참여·지원 사업 예산 전액이 삭감되었다. 그 결과 관련 사업 90%가 중단되거나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 대표적으로 학교폭력(학폭) 예방 사업, 청소년 노동권 보호 사업 등이 그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으로 닿는 사업들이다.

여성가족부는 다른 부처로 업무를 이관하고 협업을 통해 활동과 예산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다행히 몇몇 지자체들은 자체 예산을 수립해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다수는 사라질 예정이다.

앞으로는 학교폭력을 당하더라도 117학폭신고센터에 전화를 걸 수 없다. 여러 이유로 일하는 청소년들 또한 임금체불, 부당대우 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쉽지 않을 듯 하다.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이 학교 안팎에서, 일터에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차별과 폭력이 청소년들의 존엄한 삶과 일상을 위협하게 되진 않을까 위기감이 든다. 청소년 사업은 그때그때 사회적 필요와 요구에 따라 어렵사리 도입된 것들이다. 학교 성인권 사업의 경우 10년 전인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이어 발생한 끔찍한 성범죄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방안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었다. 성을 매개로 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만큼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장애 성인권 사업 역시 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들에 대한 성착취가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켯기에 가능했다. 끔찍한 사건 후 한참 만에야 장애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특화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마침내 설득력을 얻은 것이었다.

무성적 존재로 여겨지는 어린이․장애인이 성적 존재라는 점, 그리고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성적 감정, 감각, 욕구,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무엇보다 안전하고 평등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한 사회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감에 있어 성은 삶의 많은 순간 작동, 작용한다. 나의 몸에 대해 아는 것, 누군가에게 다가가고픈 마음, 관계맺음과 끝 등 사소해보이고 자연스럽게 터득할 것만 같은 이런 일들에는 사실 배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나 성차별과 성폭력이 없는, 안전하고 평등한 삶을 희망한다. 그래서 “성인권”이다. 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나와 타인을 함께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교육에서는 이것을‘성적 자기결정권’을 통해 가르친다.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배움은 자신과 동시에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는 힘을 길려준다.

그리고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 삶에 대해 질문하고 연습함으로써‘성적 자기결정능력(역량)’을 쌓아간다. 장난과 폭력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며, 사랑과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의 차이, 타인에게 다가갈 때 동의를 묻는 법 등을 배운다.

이러한 성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교육이 사라진 자리, 지난날의 반성이 지워진 사회엔 무엇이 남을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맞이하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지만 끔찍한 사건이 다시 벌어져야만 이 사업들이 다시 부활할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은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꾸준하고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성이 인권이라는 점, 타인의 성을 착취하는 것이 폭력, 범죄라는 당연한 사실은 아직 상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차별과 혐오의 말들, 끔찍한 뉴스들을 멀지 않게 맞닥뜨리며 살고 있다. 누구나 안전하고 평등하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많이, 훨씬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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