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ㅣ말은 권력이고 약속이다. 정치인은 대중에게 자신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말로 얘기하며 정치를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 변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2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현행 ‘준연동형’으로 치르겠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예상했던 대로 후퇴했다. 이제 위성정당 출현은 현실이 됐고 남은 과제는 준연동형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 한국 정치를 살리는 길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 개혁으로 선의의 정책경쟁이 가능하게 하겠습니다.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비례대표 제도를 왜곡하는 위성정당 반드시 금지시키겠습니다. 피해를 입은 정당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이재명의 명동연설이다. 그리고 뒤집었다.

국회 과반을 점한 제1야당 대표가 준연동형으로 치르겠다고 했으니 큰 이변이 없는 한 22대 총선에서 비례 47석은 지난 21대 총선과 같은 방식으로 치러지게 된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은 이 구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거대양당이 독점하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문제점과 표심대로 반영이 안 되는 병립형 비례대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는 21대 총선 당시 처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제도이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도와 다당제를 도입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 또한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출현시키며 취지를 무색케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위성정당 출현은 이미 현실화됐다. 이 대표가 준연동형으로 치르겠다고 하면서 병립형으로 퇴행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이 대표는 자신이 대중에게 선언한 정치철학과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문제를 안고 준연동형제의 본래 취지를 최대한 살리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준연동형제를 발표한 지난 5일 광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세력과 함께 ‘민주개혁 선거대연합’ 형태의 ‘통합형 비례정당’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비례선거용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는 이 대표가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철학과 신념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이 대표는 “결국 준위성정당을 창당하게 된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이미 일찌감치 ‘국민의미래’라는 위성정당 창당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고심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제 결정 과정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특히 민주당 의원 80여명이 공동 발의한 위성정당 방지법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현실과 국민의힘을 탓하며 자신들의 약속을 나몰라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총선이 불과 6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준연동형제는 이제 22대 총선의 현실이다. 이 대표가 말한 윤석열 정권 심판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세력과 함께 ‘민주개혁 선거대연합’의 취지와 본래 준연동형제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민주당이 소수정당에 통 큰 양보를 해야 한다. 민주당 자신들 만의 의석수 확보에 연연하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이 대표의 준연동형제 발표 이후 8일 민주당이 녹색정의당·진보당·새진보연합과 연합정치시민회의(정치개혁과 연합정치를 위한 시민회의)에 ‘범야권 지역구-비례선거 대연합’을 위한 연석회의 참여를 공식 제안했다.

박홍근 민주당 민주개혁진보선거연합 추진단장은 8일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선거연합은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라는 국민 염원을 받들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선택”이라며 이같이 제안했다.

민주당은 민주연합의 구상으로 ▲민생 정책 중심의 공동 총선 공약 ▲공정한 시스템으로 유능한 인재 선출 ▲‘이기는 후보’ 단일화 원칙의 지역구 연합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제안이 명분 있는 강력한 전략이 되려면 민주당이 먼저 양보로 진보정당에게 설자리를 열어줘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 역시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한국 정치구조의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민주진보진영에 해당하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각각 41.1%와 6.2%를 얻었다. 합하면 47.3%이다. 보수진영에 해당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4.0%, 국민의당 안철수는 21.4%, 바른정당 유승민은 6.8%를 기록했다. 세 후보의 득표율은 52.2%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혁명 직후 치러진 선거임에도 민주진보진영의 득표율이 더 낮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 진보정치의 큰 별 죽산 조봉암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합비례정당은 국민을 위한 정치, 한반도 평화와 민생을 살리는 정치, 여전히 1987년 체제에 갇혀 있는 정치체제를 개혁할 수 있게 개헌선을 확보할 수 있는 연대와 연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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