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일대 탐방(6)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

‘계양산장미원’으로

‘중심성 터’ 비석 뒤로 난 길 바로 오른쪽으로 중심성 터에 대한 안내판이 있으니 읽고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뒷길을 따라 곧장 위로 올라가면 계양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계양산장미원으로 가다 잠시 보이는 중구봉과 천마산 능선.
계양산장미원으로 가다 잠시 보이는 중구봉과 천마산 능선.

아마도 계양산 정상에 오르는 가장 짧은 길일 것이다. 예전에 계양산 일대 기행을 안내하면 부평도호부로 해서 지금의 계양산성박물관이나 백룡사 쪽에서 계양산 정상에 올라, 능선길을 따라 징매이고개 정상부를 거쳐 부평향교에서 마감했다.

그러나 지금 가는 길은 계양산성박물관 방향이기에 ‘계양산장미원’으로 난 길로 가야 한다. 산길을 따라가다가 계양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나면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거나,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계양산장미원’ 주차장에서 만난다.

나무들이 빈약하게 자랐지만 그래도 숲길이어서 좌우로 보이는 것이 자잘한 나무와 풀들 외에 거의 없다. 그래도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중구봉과 천마산의 능선을 잠시라도 볼 수 있어 답답함을 순간 벗어나기도 한다.

계양산장미원 입구.
계양산장미원 입구.
계양산장미원에 흐드러지게 핀 사계장미.
계양산장미원에 흐드러지게 핀 사계장미.
계양산장미원 물레방아와 원두막.
계양산장미원 물레방아와 원두막.

‘계양산장미원’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단계에 걸쳐 1410여평(4667㎡)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사계절 꽃이 핀다는 사계장미 67종 1만1366주와 금낭화 등 야생화 13종 1만2400본을 심었다.

일 년에 두세 번 꽃이 핀다는 사계장미를 심었기에 어느 때 가도 장미와 야생화들이 펴있어 방문객들을 반겨 맞는다. 다만 활짝 핀 화려한 모습을 보려면 5~6월과 9~10월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장미원에는 물레방아와 원두막도 갖춰져 있어 보기에도 시원하고 쉬어갈 수도 있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나 꽃을 좋아하는 분들이 찾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주차장이 붐비니 인천1호선 전철을 타고 경인교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1.5km 정도 거리를 걸으면 되니 가벼운 차림으로 가도 된다.

문순공 백운 이규보 선생 시비(文順公白雲李奎報先生詩碑)

문순공 백운 이규보 선생 시비.
문순공 백운 이규보 선생 시비.

장미원 맞은 편으로 큰 자연석을 다듬어 세운 비석의 뒷면이 보인다. 2001년에 만든 ‘문순공 백운 이규보 선생 시비’이다.

뒷면에는 이규보가 살아온 삶과 계양부사로 부임했던 간단한 이력이 적혀있다. 앞면에는 계양부사로 근무했을 때 지은 시 한 수가 적혀있다. 이에 ‘동국이상국집’ 제15권에 실린 한시 원문과 그 해석을 싣는다.

雨中觀耕者贈書記(우중관경자증서기)
빗속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보고 서기에게 써주다

一國瘠肥民力內(일국척비민력내)
나라가 잘되고 못 되는 건 민력(백성의 노력)에 달렸고

萬人生死稻芽中(만인생사도아중)
만인(모든 사람)의 살고 죽음은 벼 싹에 매였네

他時玉粒堆千廩(타시옥립퇴천름)
가을날 옥 같은 곡식이 일천 창고에 쌓이리니

請記今朝汗滴功(청기금조한적공)
청컨대 땀 흘리는 오늘의 공을 기록하게나

중앙정치에서 좌천돼 계양으로 내려온 이규보의 심정은 부임하며 조강을 건널 때 지은 한시와 ‘계양 자오당기’, 신세를 한탄하는 한시 등 부임 초기의 글에 잘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백성들의 삶을 보게 되고, 특히 가뭄이 들자 고을의 사또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비가 오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굶주려 죽을 것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제문을 지어 기우제를 올린다. 목민관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 한시 역시 빗속에서도 일손을 놓지 못하고 농사짓는 백성의 모습을 보고,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임을 깨닫는 이규보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중앙에서 호사를 누리며 정치를 했으면 어찌 백성들의 노고를 알 수 있었겠는가.

백성들의 피땀 흘린 각고의 노력이 풍요로운 가을걷이가 되고, 이 결실이 결국 부국강병(富國强兵,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일)으로 가는 기초가 되는 것,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이규보의 모습에서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볼 수 있다.

‘계양산장미원’ 앞에서 시작된 산책로

계양산장미원 앞 산책로.
계양산장미원 앞 산책로.
계양산장미원 앞 산책로에 있는 무장애 나눔길.
계양산장미원 앞 산책로에 있는 무장애 나눔길.

이규보 시비에서 다시 산책로로 나오면 폭 10m의 넓은 산책로가 동쪽으로 500m 정도 이어진다. 계양공원 산책로 중 가장 멋진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길이다.

계양산은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계수나무는 한반도에 자생하지 않아 한국어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계수나무는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을 통해 한국에 도입돼서 그때부터 계수나무란 명칭이 사용됐다는 것을 봐서는, ‘계양’이란 지명이 계수나무와 연관됐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다만 회양목은 계양산에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계양산은 조선 후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로 이루어진 무분별한 남벌(濫伐)로 거의 민둥산에 가깝게 황폐해진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불도 자주 나서 높이 자란 나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197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조림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자생 생태계도 상당히 많이 복구된다.

1991년 ‘계양공원’ 진입도로 공사로 벌목된 나무들.
1991년 ‘계양공원’ 진입도로 공사로 벌목된 나무들.

그래서 1988년 1월 8일 인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됐다. 이후 계양산 서쪽 자락 70만평에 대규모 공원 건설을 추진하려던 계획에 대해 1991년 인천지역 시민·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범시민 반대운동을 펼쳐 철회시킨다.

이때 지역사를 연구하는 단체를 대표해 ‘인천향토교육연구회’에서 기행 담당을 맡았던 필자도 적극 참여했고, 이어서 숲과 환경에 대한 기행코스를 만들어 전문가와 안내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무렵 ‘계양공원’ 진입도로 공사가 추진돼 길을 만드느라 산자락에 있는 나무들을 제거한 모습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으로 남겼다. 산책로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당시만 해도 계양산에 아름드리나무가 숲을 이룬 정경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이런 황량했던 계양산 자락에 여름에도 나뭇잎이 하늘을 덮어 그늘이 만들어질 줄이야.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산책로가 500m 정도에서 끝나 무척이나 아쉽다. 잠시지만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마치 태고의 원시림 속을 걷는 느낌이다. 산책로 한복판에 앉아 가부좌를 틀면 바로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 것 같다.

백룡사로 가는 길

노틀담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노틀담 베이커리.
노틀담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노틀담 베이커리.

넓은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계양산 정상과 계양문화회관으로 갈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계양문화회관 쪽으로 150여m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노틀담 수녀회가 보이고 문 앞에 ‘노틀담 베이커리’라는 현수막이 한쪽 벽에 붙어있는데, 2011년 이곳에 ‘Love & Good 베이커리’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열었다.

제과제빵을 주 생산품으로 선정해 지역 내 20세부터 40세까지 성인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근로 기회와 직무 경험 제공 등을 하고 있다.

이 길은 보통 주말이나 야간에 안내했기에 ‘노틀담 베이커리’가 있는 줄 몰랐다가 사진을 찍으러 가서 처음 알게 됐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운영하니 참고해도 좋다.

노틀담 수녀회 왼쪽으로 계양문화회관 주차장과 건물이 보인다. 계양문화회관은 공연장, 연습실, 분장실, 생활문화센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공연장은 1층 558석, 2층 237석의 객석을 갖추고 있다.

계양문화회관.
계양문화회관.

외부 유수의 교향악단이 참여하는 클래식 공연부터 뮤지컬, 연극, 아트 공연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볼 수 있으며, 계양문화회관 소속 교향악단, 소년소녀합창단, 여성합창단, 풍물단 등 구민들이 참여하는 공연도 가까운 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

생활문화센터에서는 댄스스포츠, 웰빙댄스, 한국무용, 서예교실, 바리스타 등 다양한 강좌를 운영해 구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계양문화회관 앞에는 청동 조각상이 서 있는데 ‘계양찬가’라 제목이 붙어있다.

계양구민의 정감 어린 가족애를 표현한 작품으로, 작품 아랫부분의 은행잎과 왼쪽으로 뻗은 까치 날개는 계양구의 나무와 새인 은행나무와 까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계양문화회관을 나오는 길 계양산 방향으로 콘크리트 긴 담장이 서 있는데, 이곳에 재미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공군 장교였던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벽화를 그리고 명언을 써넣었다.

계양문화회관 입구에 그려진 어린왕자 벽화.
계양문화회관 입구에 그려진 어린왕자 벽화.

어렸을 때 아련하게 꿈꾸었던 장면과 명언을 다시 만나 읽어보니 고개도 끄덕여지며 한결 걸음이 가벼워진다.

이 길은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계양산로와 이어지는데 계속 400여m 길을 가면 경인여자대학교 정문이 보인다. 정문을 지나쳐 경인여자대학교 부속유치원 건물 끝에서 경인여자대학교 후문으로 올라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으로 올라가 후문을 지나면 백룡사가 나온다.

이 길은 하느재고개와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길과 연결된다. 1990년대에 팔각정으로 오르는 길로 계양산 안내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비록 30여 년 전 풍광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을 바꿔 편의시설들이 들어섰으나 한편으로는 숲을 잘 가꾸고 정비해 안도의 숨을 쉰다.

경인여자대학교 정문.
경인여자대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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