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23일 만국공원서 한성임시정부 선언
한성임시정부, 13도 대표자가 참여 정통성 있어
홍진 선생, 한성임시정부 수립 주도한 인물

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국방부가 지난 8월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겠다고 발표한 후 오히려 소설 범도 등 홍범도 장군을 다룬 도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소설 범도는 홍범도 장군만이 아니라 당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소설 범도를 집필한 방현석 작가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독립군들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천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다. 한성임시정부를 주도한 홍진 선생과 한성임시정부를 선포한 장소인 인천 자유공원이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열사가 일제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날인 1909년 10월 26일과 홍범도 장군 순국 80주기(10월 25일)를 맞아 <인천투데이>는 소설 '범도'의 방현석 작가 인터뷰,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독립운동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34회 의정원의원 일동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홍진, 5번째가 김구이다.(국사편찬위)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34회 의정원의원 일동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홍진, 5번째가 김구이다.(국사편찬위)

인천 중구 송학동에 위치한 응봉산 정상에 있는 자유공원은 1888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 공원이다.

세워진 당시 만국공원이라고 불렸고, 일제강점기엔 서공원, 해방 후 다시 만국공원으로 불리다 1957년 자유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1919년 3.1운동이 있고 나서 4월 23일 국내 13도 대표들이 인천 만국공원에 13도 대표 국민대회를 열어 ‘국민대회 취지서’와 임시정부 선포문을 선언하면서 한성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당시 인천은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이다.

한성임시정부(1919년 4월 23일 선포)는 노령임시정부(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대한국민의회, 1919년 3월 17일 선포)와 상해 임시정부(1919년 4월 11일 선포)보다 늦게 수립됐다.

다만, 두 임시정부에 비해 정식 절차를 거쳤고 한반도 안에서 수립됐으며, 국내 13도 대표자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가장 정통성이 높은 임시정부로 꼽힌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당시 설립된 임시정부 헌법 1조와 동일해 한국은 한성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13도 대표자가 참여한 한성임시정부가 있었기에 1919년 9월 세 임시정부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고, 3.1운동의 정신이 상해임시정부와 중경임시정부로 이어질 수 있었다.

홍진 선생은 이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평가된다. 한성임시정부, 노령임시정부, 상해임시정부를 합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홍진 선생은 지금의 국회의장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홍진 선생은 1945년 해방 이듬해 사망했다. 당시 홍시 문중이 있던 인천 남구(미추홀구) 관교동에 묻혔고, 이후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됐다.

한편, 현재 자유공원엔 13도 대표자 회의가 열린 것을 기념하는 표지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현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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