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11. “내 친구 장재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 | 파드마삼바바 지음 | 정신세계사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1990년 9월 1일 오후 2시 45분경, ‘여주 섬강교 버스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승객 28명 중 2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고였다. 사망자 중에 사랑하는 내 친구 장재인의 아내 최영애와 그의 외아들 장호도 있었다.

영애는 5일 만인 9월 6일에 섬강에서, 장호는 무려 13일이나 지나 9월 14일에 강화도 한강 하구 주문도 부근에서 한 어부에 의해 발견됐다.

그리고 사고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 15일 새벽에 친구 재인도 가족을 따라 저승으로 떠났다. 돌이켜 보면, ‘섬강교 사고’는 사고 후 처리 과정이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빼다 박았다.

“생사의 차이가 이리도 간결한 것을 무던히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하늘이 지워주신 짐의 무게와 고뇌의 깊이를 용케도 감내하더니 자그마한 행복의 기억들과 함께 이제는 모든 짐을 벗겨주십니다. 험한 삶을 위로하던 처자는 모질게 살다 희망의 입구에서 스러지고 차마 간직할 수 없는 가엾이 고운 추억들만 남겨 주었습니다. 세상을 붙잡으려다 처자를 버리고 이제는 처자를 부여안기 위해 세상을 버리려고 합니다.

불행한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고생만 하던 고마운 아내, 아들의 뒤를 따라 다시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아내처럼 저도 처자를 찾아 떠나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이래 강물을 바라보며 제 마음에 새겨온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행여 살아남아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생의 의무감을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의 세 식구가 지닌 쓰라린 사랑의 메시지보다 더 생생한 경종이 어디에 있겠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우고자 하는 생을 초월한 선택이 어찌 소극적인 결심일 수 있겠습니까. 처자의 삶의 자리를 차분히 정리하여 복받치는 설움으로 그들의 냄새를 흠뻑 마시며 남은 분들에게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지만, 저의 자리마저 그대로 남기게 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처자를 실어 간 섬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제가 기원한 것은 처자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소망이 동요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심 이후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유대가 저를 괴롭힙니다. (...........................) 부디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하지 말 것을 당부드리며 오히려 세 식구의 하늘나라에서의 다시는 헤어짐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헌신적이고 겸손하며 빈곤한 저를 풍요롭게 하던 가없이 고운 아내와 ‘아빠’하고 부르며 저를 향하여 달려오는 듯, 뒹굴며 씨름하자 조르던 아들, (..........................) 저희 세 식구의 주검은 가운데에 아들, 아들의 왼편에 아내, 오른편에 저의 순서로 나란히 관 하나에 묻어 주시고, 묘지는 장인어른의 뜻을 존중하여 주시고, 장례식 집행은 대전 빈들교회의 목사님께 이미 부탁드린 바 있습니다.

저와 아내의 결혼반지는 그대로 끼워 두시기 바라고, 먼 훗날 저의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 화장하여 강물에 띄워줄 것을 부탁합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자랑스러운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더없이 평온하고 즐겁습니다. 1990. 9. 11. 최영애의 남편이자 장호의 아비인 장재인 드림”

친구 장재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유서다. 재인은 대학 시절 나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1980년 초 잠시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 공주대학교 직선 총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역사에 부름 앞에 앞장선 죄(?)로 그 이후 모든 삶이 핏빛 비수로 되돌아왔다. 1년간 감옥을 다녀왔고, 강제징집으로 3년간 군대에 갔다 왔다.

복학해 간신히 대학을 졸업 했지만, 보안 검열 때문에 교사 발령은 나지 않았다. 학원 강사와 월부책 장사 등을 전전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1987년 9월에 서울 덕수상고로 발령이 났고, 영애는 1989년 3월에 홍천군 내면고로 발령이 났다. 주말부부 생활이었지만 재인의 삶에서 처음으로 행복감을 맛보던 때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 | 파드마삼바바 지음 | 정신세계사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 | 파드마삼바바 지음 | 정신세계사

안타까운 죽음은 또 있다. 사진작가 임종진 선생의 아내 윤지영 선생의 죽음이다. 평생을 평화운동가로 선하게 살았는데 유방암과 전이된 암으로 투병하다가 지난달 8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하늘은 그를 너무 일찍 데려갔다. 아마 추석 즈음 49재를 지낼 것이다.

지난 9월 4일은 서이초 교사가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국내 교사들은 이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하고 10만여명의 교사들이 서울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영화 <신과 함께 1, 2>에서도 잘 묘사됐지만, 불교에서는 죽은 후 49일째 되는 날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49일 동안 사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자세히 서술한 책이 바로 <티벳 사자의 서>다.

<티벳 사자의 서>를 지은 사람은 인도인 파드마삼바바다. 그는 1200년 전 티벳 왕의 초청을 받아 히말라야로 여행을 떠났다. 파드마삼바바라는 이름은 ‘연꽃 위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그는 인도에서 갖고 온 신비한 경전들을 티벳어로 번역했고, 모두 100권이 넘었다.

그러나 그는 이 비밀의 책들을 세상에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티벳 전역의 동굴에 한 권씩 숨겨 두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몇 명의 제자들에게 환생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했고, 600년 후 제자들에 의해 세상에 다시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처럼 제자들은 한 명씩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비밀 경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테르퇸’이라고 불렀다. ‘테르퇸’이란 ‘보물을 찾아내는 자’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이들이 찾아낸 경전만 해도 모두 65권에 이른다. <티벳 사자의 서>도 그중의 한 권이다.

<티벳 사자의 서>는 테르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인 '릭진 카르마 링파'가 티벳 북부지방의 한 동굴에서 찾아낸 경전이다.

그 후 20세기 초 영국의 구도자이며 옥스퍼드대학 종교학 교수인 에반스 웬츠가 인도의 한 사원에서 필사본을 구하게 됐다. 그는 이 사본을 가지고 티벳으로 건너간 후 티벳 승려 라마 카지 다와삼둡의 제자가 됐다.

다와삼둡은 영어, 산스크리트어, 티벳어에 능통한 위대한 학승이었다. 이들은 경전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1919년에 번역을 마쳤다. 번역은 다와삼둡이 맡았고, 웬츠는 그가 구술하는 주석과 해설을 받아 적었으며 책의 편집도 맡았다. 그렇게 1927년 옥스퍼드대학에서 <티벳 사자의 서>라는 제목으로 출판됐고, 드디어 인류 앞에 이 경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이다. ‘바르도’는 ‘둘 사이’라는 뜻이다.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사후의 중간상태를 ‘바르도’라고 부른다. 그 기간이 49일이다. ‘퇴돌’은 ‘듣는 것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책의 원제목인 ‘바르도 퇴돌’의 뜻은 '사후 세계의 중간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몇 마디로 요약한다면,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서 나온 환영이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 모든 것이 환영이다. 삶도 죽음도, 모습도, 색깔도,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죽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세계에서 보이는 것도 모든 것이 환영이다. 그걸 깨달으면 영원한 자유와 깨달음을 얻고 열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죽음과 소녀(에곤 실레, 1915,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죽음과 소녀(에곤 실레, 1915,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경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사람이 죽은 후 환생할 때까지 49일 동안 세 단계의 바르도(중간계, 중음계)를 거치는데 첫 번째, 치카이 바르도에서 3일, 두 번째, 초에니 바르도에서 14일,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드파 바르도에서 32일을 머무르게 된다. 의식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약 49일 동안 ‘중간계’(중음계)’를 떠돌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내는 '49재' 또한 여기서 비롯되었다.

죽은 이가 해탈을 하거나 좋은 곳으로 환생하게 하려면 숨이 멎기 직전부터 49일 동안 가족이나 지인들이 소리를 내어 이 경전을 읽어준다. 이때 사자의 배우자나 가족이 흐느끼거나 통곡해서는 안 된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시신을 만지면 안 된다.

시신을 만지면 안 되는 이유는 의식체(영혼)가 정수리로 빠져나오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혹시 시신이 없다면 사자가 쓰던 침대나 의자 옆에서 읽어줘도 된다. 영혼이 옆에 앉아서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다음과 같이 읽어준다.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그대가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순간이 왔다. 그대의 호흡이 멎으려 하고 있다. 이제 그대는 사후 세계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근원의 빛을 체험하려 하고 있다. 이 순간의 모든 것은 구름 없는 텅 빈 하늘같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티 없이 맑은 그대의 마음은, 중심도 둘레도 없는 투명한 허공과 같다. 이 순간 그대는 그대 자신의 참 ‘나’를 알라. 그리고 빛 속에 머물러 있어라. 본래 텅 빈 그대 자신의 마음이 곧 붓다임을 깨닫고 그것이 곧 그대 자신의 참된 의식임을 알 때, 그대는 붓다의 마음 상태에 머물게 되리라.”

두 번째 세계 ‘초에니 바르도’에서는 사자가 자신이 수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며, 친구들과 가족 친척들이 애통해하는 소리를 보고 듣게 된다. 이때 대부분 망자들은 분노의 감정이 차오른다.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례 절차를 대충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망자의 눈에 환영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업보와 자라난 환경에 따라서 보이는 환영이 모두 다르다. 천사를 보기도 하고, 악마를 보기도 한다. 사자는 14일 동안 ‘초에니 바르도’에서의 시간을 보낸 후 여기서 해탈하지 못하면 세 번째 ‘시드파 바르도’로 가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해탈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즉, 다시 태어나는 환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시드파 바르도’엔 거센 바람이 부는데, 우리가 생전에 저질러 온 카르마 즉 업보의 바람이 분다. 사자는 카르마의 바람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데 실은 사자의 의식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사자는 매우 혼란스럽고 지치게 되는 데 이때 죽음의 심판자 ‘염라대왕’이 나타난다.

염라대왕의 옆엔 흰 조약돌과 검은 조약돌들이 있다. 사자가 살아오며 행했던 모든 일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좋은 일을 했을 때는 흰 조약돌,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는 검은 조약돌을 앞에 내려놓는다.

사자는 새로운 몸을 얻고 싶어 하며 흰빛, 초록빛, 노란빛, 푸른빛, 빨간빛, 회색빛 여섯 개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6개의 빛 중 사자가 선택하지만 완전한 사자의 의지는 아니고 자신의 업보에 따라 강렬히 끌리는 빛이 있다.

흰빛은 천상계, 초록빛은 아수라계, 노란빛은 인간계, 푸른빛은 개, 소, 말 등 동물, 빨간빛은 아귀계, 회색빛은 지옥으로 가게 된다. 해탈을 못 하면 자궁이 보이기 시작하며 사자는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낀다.

만일 남자로 태어날 예정이라면 남자의 느낌이 차츰 들기 시작할 것이고, 더불어 아버지가 될 사람에 대한 강한 증오심이 생기며. 어머니가 될 사람에 대해서는 애착과 매력을 느낀다.

여자로 태어날 예정이라면 여자란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할 것이며 어머니에 대한 강한 증오심과 아버지에 대한 강한 애정과 매력을 느낀다. 최고의 환희를 체험하며 그 상태에서 무의식 속으로 기절한다. 이 세상 속으로 다시 오게 되는 것이다.

에반스 웬츠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나는 이곳에 육신을 갖고 태어났는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탄생은 왜 있으며 죽음은 왜 있는가? 등등 인간의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실려 있다고 말했고, 칼 융 또한 ‘해설’에서 “1927년 초판이 나온 이래 수년 동안 이 책은 언제나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서 새로운 생각과 발견을 위한 많은 영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근본적인 통찰력을 얻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에반스 웬츠와 칼 융이 한 말에 전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는다.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해서 그럴 것이다.

윤지영 선생은 지금 어디 있을까? 서이초 교사는? 재인이는 사후 세계를 믿었을까? 재인이의 유서를 보면 그는 사후 세계를 확실히 믿었던 것 같다. 내 친구 장재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영애와 장호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최영애와 외아들 장호를 만났을까? 이승에서 착하게 살았으니 그들은 지금 더 이상의 환생과 윤회의 고를 끊고 열반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을까? 나는 재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누구나 죽는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쨌든 이승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승의 노력으로 열반하면 좋고, 그래야 저승에서도 죽은 후 49일 안에 ‘티벳 사자의 서’의 도움을 받아 열반할 수 있을 테니까.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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