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책으로 세상 읽기 10.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 소노 아야코 | 리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아직 노년이 아니라고? 늙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노년은 중년부터 준비해야 한다. 중년도 아니라고? 노년은 청년부터 준비해야 한다. 아무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를 ‘나이 들고 나서’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더구나 나이 들수록 정신은 더욱 혼미해지기 마련이니까….

먼저 나부터 얘기하겠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걷고 싶다. 걷기로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 인간이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데 걷기와 생각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한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싶다. 생각하는 주제는 따로 없다. 그냥 아무거나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면서 걷고 싶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읽고 싶다. 그러나 이제 읽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니 좋은 책을 골라 읽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권 읽는다고 계산하면…, 너무 적은가?

일주일에 두 권 읽는다고 치면, 한 달에 여덟 권, 조금 부지런 떨어서 한 달에 열 권 읽는다고 치면, 일 년에 120권, 책을 볼만한 눈 상태가 80세까지라고 한다면 앞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고작 1800여권, 조금 부지런 떤다고 치면 2000여권, 아, 지금부터 고작 책 이천 여권 읽고 죽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초조해진다.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을 읽어야겠구나, 다짐하게 된다. 좋은 책을 잘 모르겠거든 일단 고전을 읽어라. 시간을 이기고 남은 책이 고전이니까.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 소노 아야코 | 리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 소노 아야코 | 리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그동안 못다 한 사랑을 나누고 싶다. 가족과 친구와 선배와 후배와…. 너무 막연하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라고? 앞으로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 만나는 사람마다 선물을 주고 싶다. 크고 비싼 게 아니라 많은 돈이 들지 않는 작고 사소한 선물.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1972년 작가가 41세 때 처음 나왔다. 그 후 51세 때인 1982년과 65세 때인 1996년 수정하고 가필해 세 번 출판한 책이다.

그래서 서문도 세 번, 후기도 세 번 나온다. ‘계로록(戒老錄)’이란 ‘늙어서 경계해야 할 것들의 목록’ 정도의 뜻이 되겠다. 한국에서 많이 쓰는 단어는 아니다. 이쯤에서 작가는 어떻게 늙고 싶은지, 어떻게 나이 들고 싶어 하는지 슬슬 궁금해진다.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만 바라면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다.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나이 든 사람들도 남에게 베풀고 남을 위하는 방법은 매우 많다.

몸이 불편한 한 노파가 매일 밤 도로로 난 창가에 등불을 올려놓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 여행자를 위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하거나 단념해야 한다. 노인이라는 것을 일종의 자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나이는 노력해서 먹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일종의 응석이다. 특히,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통이란 어느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책을 내고 축하받기 위해서 바쁜 사람들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돈을 쓰게 하고 우쭐해서 그저 좋아만 한다면 어떻게 그 나이를 먹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나의 생애만 책을 내도 될 만한 극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가란 자신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내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노인은 대체로 자신의 여가를 한가하게 남의 사생활에 참견하는 것으로 소모한다.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불평만 늘어놓는 노인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불평은 그늘진 느낌을 준다. 푸념해서 좋은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명랑하게 행동하는 것은 세상 사람에 대한 예의다.

노인이 돼서도 매사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어른답지 못하다.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이 ‘어른다움’이다. 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늙음은 악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당신에게 책임이 없다. 무시당했다고 한탄하는 것은 부질없다. 태도가 나쁘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무시당했다고 화를 내거나 대들거나 하는 것은 노화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의사가 냉정하게 대해도 화내지 않는다. 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노인에게 정말로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상대는 노인뿐이다. 묘지 등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죽음의 유일한 장점은 그땐 이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인사치레는 포기한다. 타인을 시켜서 자신의 생활 규모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폐가 될 뿐이다. 평균 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않는다. 평균 수명을 넘으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혹은 죽지 않더라도 갑자기 쓰러진다든지 치매에 걸린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무책임한 일이다.

러시아워 혼잡한 시간대엔 이동하지 않는다. 어떤 장소건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 시간이 있는 법이다. 자신이 들 수 없는 짐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누구든지 자신이 짐을 들 수 없게 되면 짐을 단념해야 한다.

인간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젊었을 때 그다지 아름다웠던 것도 아니며 현재가 그다지 추악한 것도 아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얼굴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즈음부터는 물건을 조금씩 처분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건을 줄여나가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방해가 되는 장소에는 가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슷한 또래끼리의 여행은 많이 할수록 좋다. 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향에서 죽는다고 좋은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노인이 돼서 최후로 자식에게 혹은 젊은 세대에게 보여줄 것은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 하는 죽음의 자세다. 죽음의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줄 일이다. 육체보다는 뇌의 노화가 빠르게는 40대부터 시작되는 사람이 있다.

기억력이 나쁘다든지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린다든지 하는 것만 노화가 아니다. 회의 등에 참석해서 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고집을 피우거나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관심하든가 속 좁은 행동을 하고 어떻게 해서든 억지라도 자신의 처지를 상대에게 인정하게 하려 든다.

책을 읽지 않고, 끈기가 없어지고, 남의 소문만 믿으며, 그것만 화제로 삼으려 한다. 인간에게 평생 행복감의 총량은 모두 별반 차이가 없다.

미켈란젤로가 말했다. ‘생명이 바람직하다면 죽음 또한 불쾌한 것일 리 없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생명을 창조한 거장과 똑같은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노년의 가장 중요하고 멋진 일은 사람들과의 화해다.

임종시설에 들어가 최후의 3~4주일에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이들과 화해라고 한다. 노년을 특수하거나 고립된 상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노년은 반드시 지나야 할 하나의 과정이다.

처음부터 노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노년만 떼어내서 문제 삼으려 할 때 자기를 상실하고 절망과 분노가 생긴다. 내 장례식에선 아무도 울지 않아야 한다. 전력을 다해서 살아왔고 나의 삶과 온 힘을 다해 싸워왔으므로 여한은 없다는 정도가 된다면, 죽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에게 상쾌한 기분을 남겨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벌거숭이로 어머니의 배에서 나왔다’라는 말은 구약 성서 중에 몇 번씩이나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재능도, 돈도, 옷도, 건강도 어느 것 하나 지니지 않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아주 조그마한 것일지라도 지금 내가 뭔가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은혜라 아니할 수 없다.

노년의 행복은 이런 판단이 가능한가, 어떤 가일 것이다. 노년의 행복은 (정신이 흐려질 때까지는)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행복을 발견하는 데 책임이 있다. 인생의 마지막 기량을 보여줄 부분이다.

희소식 하나. 작가에 의하면 노년이 안 되는 방법도 있다. 작가는 노인을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진정한 성년이란 육체적 나이와 관계없이 베푸는 사람이며 누군가 베풀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노인이라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받는 사람이 아니라 베푸는 사람으로 산다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노인이 아니다.

이 책 두 번째 서문에서 ‘만년(晩年)’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노년’은 약간 거부감이 들고, 아직 성숙하지 않은데, 앞으로도 성숙할 가능성이 없는데 ‘숙년(熟年)’이란 단어를 쓰기에도 거북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단어 같다.

작가도 서문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얘기들이 모두 옳은 얘기는 아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에 대해 무슨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각자의 다른 생각이 있을 뿐. 만일 이 책을 읽고 나서 각자 책과 똑같은 제목으로 글을 써 본다면 아마도 이 책을 가장 잘 읽은 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등산을 가려고 전철을 탔는데 큰 소리로 떠들다가 젊은 여성한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구절이 있다. “전철 안에서 떠들어대는 것은 초등학생들이라도 묵인될 수 없다. 고령자도 마찬가지다. ‘공해’가 아닌 ‘노해(老害)’라는 말을 젊은이들이 새로 만들어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노해(老害), 노해(老害), 노해(老害)라….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신현수 시인은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서울문화재단 이사, 비영리민간단체 라오스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모임(방갈모) 상임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직무대행),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집행위원 등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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