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결국 지난달 24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시작했다. 국제사회와 자국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8월 24일 오후 1시를 기해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시작했다.

일본은 30년에 걸쳐 방류한다지만 후쿠시마 원전은 여전히 불 타고 있다. 사람은 진입조차 못하고 원전 완전 진화를 위해 해양수를 언제까지 들이 부어야하는지도 모른다. 삼중수소와 플루토늄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이 포함 된 핵오염수가 해양생태계는 물론 인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처리된 핵오염수라면 일본은 자국 내 육지에 보관하거나 시멘트와 섞어 콘크리트형태로 만들어 지하에 묻는 등의 방식으로 핵오염수를 처리하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단지 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해양투기를 강행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 일본은 다시 인류에 핵오염수 방류라는 환경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일본의 이 같은 인류에 대한 또 다른 범죄행위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환경범죄에 방조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제에 맞선 독립군 장군 흉상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치우고, 그 자리에 독립군 때려잡던 일제 괴뢰국 만주국 간도특설대 친일파 흉상 설치해 다시 독립군 토벌하는 나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00년도 더 넘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1910년(경술년) 한일병탄 경술국치와 다를 바가 없다. 이른바 한일병탄으로 불리는 조약명은 한일병합조약이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고 강제 점령한 공식적인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한일병합조약은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조칙형태로 발표했다. 그래서 29일을 경술국치의 날로 부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1910년 8월 22일 조약이 체결됐다. 일본은 1주일 동안 발표를 안 하고 있다가 8월 29일에 발표 했다.

그러니까 일제가 한반도 침략 강점을 공식화한 113년 전 경술년 국치 주간에 일본은 대 인류 환경범죄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시작했고, 윤석열 정부는 이 해양투기 방조도 모자라 일제에 맞서 싸웠던 항일 독립군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 치우고 대신 독립군 토벌하던 일제 괴뢰국 만주국의 간도특설대 백선엽 동상을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은 윤석열 대통령이 부추긴 엉터리 이념 논쟁의 확산이다. 8.15해방 78주년 기념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을 언급하고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육사가 뜬금없이 홍범도 장군의 1920년대 소련 공산당 입당을 문제 삼아 철거에 나서는 것도 대통령이 활시위를 당긴 엉터리 이념 논쟁과 색깔론을 확전한 것이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독립군 장군 동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독립군 토벌하던 일제 간도특설대 출신 친일파 동상을 세우겠단다. 모든 게 경술국치일 주간에 일어난 일이다. 3.1운동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을 뿌리째 흔들며 나라를 이끌 후대에 친일파를 추앙케 하는 대통령은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특히, 윤 대통령이 부추긴 엉터리 이념논쟁에 왜 홍범도 장군이 표적이 됐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다. 국방부 근거는 홍범도 장군의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입당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 당시 소련은 1917년 레닌 혁명 이후 식민지 국가의 해방을 역설하고 지원하던 나라였다. 레닌의 공산당은 스탈린의 공산당과 전혀 달랐다. 게다가 홍범도 장군은 해방 전에 순직했기에 북한 김일성과 더욱 관련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항일 독립전쟁에 헌신한 홍범도, 지청천, 김좌진, 이회영, 이범석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서 치우고 그 자리에 흉상을 세운다는 백선엽은 독립군 토벌하던 간도특설대의 핵심 인물이다. 간도특설대는 일제는 괴뢰국 만주국을 세워 동북항일연군 등 항일 독립군 조직을 토벌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한 부대다.

간도특설대는 독립군 탄압은 물론 민간인 학살과 약탈, 고문, 강간으로 악명이 높았다. 활동이 매우 악랄해 소속 장교는 물론 사병까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에서 친일청산작업이 실패한 탓에 일본군과 일제 만주 괴뢰국 출신 군인들이 그대로 국군 지도부가 되었고, 그들이 육사 교장을 맡았다.

백선엽은 21살 이던 1941년 일제 괴뢰국 만주국의 소위로 임관했다. 일제가 1943~1945년 만주의 항일 무장세력을 토벌 하기 위해 설립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그는 회고록 ‘군과 나’ 일본어판에서 “주의주장이 다르다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었다”며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백선엽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국가보훈부는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 백선엽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적은 문구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삭제했다.

홍범도 장군은 죽어서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왔는데 다시 간도특설대에 의해 토벌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3.1운동 정신과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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