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양 인하대 다문화융합연구소 초빙연구위원(교육학 박사)

추석 연휴를 보내고 어느새 10월이다. 10월 둘째 주 일요일인 제576돌 한글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한국 곳곳에서 열렸다. 바쁜 학업으로 한동안 뜸했던 중도입국청소년 대상 한국어 교육도 이번 달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춘양 인하대학교 다문화융합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이춘양 인하대학교 다문화융합연구소 초빙연구위원

16년 전 한국 땅에 발을 처음 내디뎠을 때, 할 수 있는 한국말은 단 ‘안녕하세요.’ 한 마디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러 가신 시아버님께 전화해서 ‘빨리 와, 밥 먹어’라고 하시던 시어머니의 말을 반말 그대로 전했다.

한국 입국 한 달 후 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시댁 가족의 모습을 보고, 고향 생각에 참았던 눈물이 물같이 터졌다.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이 안 돼 생애 처음 고향을 등지고 객지를 떠다니는 신세가 됐다는 말의 참뜻을 뼈저리게 느꼈다.

첫 번째 명절은 그렇게 보냈고 시댁 어른 따라 어딘가를 향해 낯선 길을 나섰다. 도착한 곳은 글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나이 든 어르신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한 복지관이 운영하는 한글 교실이었다.

교실 한구석에 젊은 여성 한 명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왔다고 자기소개를 한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아직 입도 귀도 열리지 못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어른들과 함께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첫 교재를 손에 쥐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책이었다. ‘곰이 엉금엉금 나무에 올라갔습니다.’라는 문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받아쓰기는 항상 100점 만점을 받아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몰라 무척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게 7년 뒤 한국어 교원 자격을 취득했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게 됐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해 내가 한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와 같은 난처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초보 학습자를 위해 작은 공부방을 열었다. 주말에 중국어로 강의하는 온라인 한국어 학습 모임이다.

수업은 토요일과 일요일 밤 8시부터 2시간 정도로 진행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습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보람을 느꼈다.

10살이 된 중도입국 학생 찬이는 3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지만, 알아듣지 못해 학습에 계속 어려움을 경험했다.

40대 초반 현아 씨는 사회통합프로그램에 3번이나 참여했다. 하지만 한국어로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에서 선생님의 한국어 설명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결국 3번 도전했다가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50대의 영이 씨는 그동안 일하느라 바빠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필요성을 느껴 배우려고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게 어려워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더 이상 공부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막 돌이 된 아이를 혼자 양육하고 있는 한아 씨는 육아와 일 양립에도 불구하고 기관에서 진행되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외계어를 듣는 것과 같아 오히려 더 힘들어졌고, 깊은 우울감에 잠겨 무력감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공부방 학습자이 한국어 공부를 어려워하는 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현재 대부분의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직접교수법에 적응하지 못해 공부에 거부감이 생겨 한국어 배우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한아씨 사례처럼 혼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한부모이주여성 같은 경우,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 활동의 무거운 짐까지 지고 시간을 내어 평일이나 종일 교육 과정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사회 구성원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삶을 살고 싶어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자 귀화 시험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귀화 신청의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원활한 한국어 구사 능력이다.

하지만 한국 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다문화가족센터 228개와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 366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운영하는 한글 공부 모임에 들어온 학습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중도에 도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자 3000여명을 길러낸 유학의 시조이자 사상가이며 교육자인 중국의 공자는 제자에 따라 다르게 가르쳤다. 여기서 ‘인재시교(因材施教)'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제가 운영하는 한글 학습 모임에 들어온 학습자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중도에 한국어 학습을 포기하는 일이 더 발생하지 않게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576돌 한글날을 맞이해 한글과 외국어로 강의가 가능한 한국어 강사를 도하고, 한글 학습현장에서 사용하는 한국어 교재에 다종언어를 병기해 표기하며, 온라인으로 정규 교육 과정을 개설해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육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본문에 등장하는 학습자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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