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30년 지킴이 ㉞ 미추홀구 주안동 베로나 수제화
1978년 명동서 시작해 1997년 인천 희망백화점 입점
손님 전화번호만 4000개 저장... "첫 번째 원칙은 친절"
"신발 디자인과 안목 촉 잃지 않을 때까지 일하고 싶어"

인천투데이=김샛별 기자 |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불편한 신발을 신으면 발걸음이 둔해진다. 세상 하나뿐인 신발이 편하기까지 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발 편한 신발과 함께면 고된 일상도 가벼워진다. 

현재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베로나 수제화를 운영하는 도현동(60) 사장은 1978년 가업으로 구두를 만들던 아버지와 매형을 따라 명동에서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베로나 수제화 도현동 사장.
베로나 수제화 도현동 사장.

도 사장은 “당시 수제화를 싸롱화라고 불렀는데 현재도 싸롱화라고 부르는 게 익숙한 어른들이 많다”며 “신발 만드는 일을 배울 때 많이 혼나거나 맞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 도 사장은 1986년 용산구 신동아쇼핑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이후 압구정 한양백화점(현 갤러리아 백화점)과 잠원동 뉴코아백화점에도 그가 만든 신발들이 입점하게 된다.

인천과의 인연은 1997년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친 신발들은 당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었던 희망백화점에 입점했다.

장사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엠에프(IMF)가 터졌다. 국내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희망백화점도 마찬가지였다.

도 사장은 “IMF는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일이었다”며 “부도난 어음 일부를 보상받아 현재 장소에서 다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가게를 찾은 손님의 발을 그리고 있다.
가게를 찾은 손님의 발을 그리고 있다.

손님 취향 맞춰 만드는 세상 ‘단 하나’뿐인 신발

도 사장의 손을 거치면 세상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맞출 수 있다.

신발 한 켤레는 디자인 고르기-발 치수 재기-공장에서 만들기를 거쳐 완성된다. 완성까지는 열흘 정도 걸리면 모든 과정에 도 씨의 손길이 닿는다.

도 사장은 “꼼꼼하고 자세하게 그려야 신발이 제대로 나온다”며 “내가 그린 대로,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게 수제화”라고 말했다.

먼저 손님이 베로나 수제화에 방문해 진열된 신발을 신어 본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고르고 나면 발을 그리고 치수를 잰다.

손님의 요구사항이 있으면 반영한다. 취향과 발 모양 등에 맞춰 굽을 높이고 낮출 수 있고, 볼을 넓히거나 줄일 수 있다. 남자 신발을 여자 신발로 다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 한 손님이 가게를 찾았다. 발이 편한 신발을 찾는 손님이었다.

길고 살이 없는 얄쌍한 발로, 길이는 235㎜지만 발볼은 240㎜, 발등은 230㎜였다. 편한 신발을 위해 밑창 쿠션을 넉넉하게 깔기로 했다.

한편, 도 사장은 인천에서 활동하는 합창단 단체화를 책임지기도 했다.

인천시립합창단뿐만 아니라 연수구·남동구·미추홀구·부평구·중구 합창단은 도 사장이 만든 신발을 신고 무대에 올랐다.

직접 디자인한 구두. 
직접 디자인한 구두. 

휴대폰에 저장된 손님 번호만 4000개... 장수 비결은 ‘친절’

도 사장 휴대폰에 저장된 손님들의 전화번호는 약 4000개다.

한 번 온 손님이라도 이름과 얼굴뿐만 아니라 취향과 발 크기 등을 줄줄 꿰고 있다. 25년 이상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도 많다.

도 사장은 오랜 시간 고객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친절’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도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는 첫 번째 원칙은 친절”이라며 “아무리 구두를 잘 만들어도 불친절하면 그 가게는 다시 찾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면 손님이 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베로나 수제화.
베로나 수제화.

또한, 도 사장은 일을 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을 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때라고 말했다.

도 사장은 “발이 크거나 틀어져 기성화를 신지 못하는 손님들이 신발을 맞추고 난 뒤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편한 신발을 신지 못했는데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낼 때가 있다”며  “이런 문자를 받고 나면 힘이 난다”고 전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은 제품이 나오는 날짜를 못 지킬 때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거나 예상했던 디자인과 다른 신발이 나오면 종종 완성 날짜를 못 지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 손님에게 변명을 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사과한다.

시간이 흐르며 손님들이 선호하는 신발도 달라진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는 굽이 높은 구두를 많이 찾았지만 요즘은 여성과 남성 모두 운동화와 구두의 중간인 ‘캐주얼화’를 많이 찾는다.

캐주얼화.
캐주얼화.

“체력 아닌 촉 잃지 않을 때까지 일할 것”

해외에서 만드는 값싼 기성화들이 늘면서 수제화가 설 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가업을 잇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체력’이 아닌 ‘촉’을 잃지 않을 때까지는 구두 만드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전했다.

도 사장은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체력도 물론 중요지만 유행하는 디자인을 찾거나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신발을 알아보는 ‘촉’이 더 필요하다”며 “이 촉이 다할 때까지는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로나 수제화.
베로나 수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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