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협동과 공동체로 건강한 마을 만들기
8. 건강한 마을 만들기로 고령사회 대비해야(마지막 회)

지난 11월 5일 방문한 일본 네야가와시에 위치한 케이한의료생활협동조합을 방문했다. 이날 ‘미이노 사토(=고령자 주택)’ 개소식이 열리고 있었다. 개소식에서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이후 다과회에서 70대 조합원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하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이 노인은 싱크대에 놓인 많은 맥주 캔들을 가리키고 “친구 둘과 함께 이 술을 다 먹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술을 잘 마시고 건강하다”며 농담을 던지고 크게 웃었다.

다른 조합원 히라마츠(70)씨는 인터뷰에서 “1주일에 세 번 치매나 병에 걸린 노인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한다”며 “이를 통해 나도 건강해지고 만나는 노인들도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조차 건강 지키며 살기 어려운 현실

취재를 위해 11월 4일부터 8일까지 일본의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3곳을 방문해보니, 일본이 고령화사회임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각 의료생협의 간부나 주요 활동 조합원들을 보더라도 대다수가 60대 이상이었다. 조합원 수와 세대 수를 비교해 보면, 세대 수가 조합원 수의 두 배가 채 안 된다. 혼자 사는 노인이 절반을 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의료생협 조합원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의료생협에서 배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전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는 한국의 의료생협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약간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금 건강한 노인이 아프거나 병든 노인을 돌보는 것이었다. 일본의 의료생협 조합원은 해당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개호보험시설이나 기관(우리나라의 장기요양보험시설이나 기관)에서 자원봉사로 치매 노인 등의 케어(=돌봄)활동을 하기도 한다.

일본은 1994년에 이미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전체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09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됐다. 2015년에는 26%를 넘어 인구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개호보험을 전면 도입해 초고령사회에 대비해왔다. 하지만 가난한 대다수의 노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도 많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간병하기 위해서는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는 말과 병에 걸린 노인을 돌보는 비용만 5년에 1억엔이 든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이에 맞춰 일본의 의료생협도 개호보험과 관련한 시설을 상당수 운영하고 있다. 방문했던 케이한의료생협의 경우는 70%를 개호보험 관련 사업에 치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의료생협 조합원은 전체 인구의 5%정도에 머물고 있다.

케이한의료생협의 ‘미이노 사토’ 개소식에 함께 갔던 재일한국인은 “월 일정액의 비용을 내고 시설에 입소하는 노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노인들”이라며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시설이나 기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집에서 혼자 쓸쓸히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겸임교수가 쓴 책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3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사는 세대로 가난에 직면했다”고 적혀있다. 전 교수는 기본생활도 힘든 빈곤노인이 많으며, 국민연금 수령인구 900만명 중 절반이 사각지대에 있다고 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돼있다는 일본조차도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건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고령화사회, 위기의 건강주권

▲ 12월 2일 열린 인천평화의료생협 창립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체조모임 조합원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0년에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전체의 7%가 넘는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2018년엔 14%에 이르는 고령사회, 8년 후인 2026년에는 20%에 육박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때문에 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고, 사회보장(연금이나 의료복지, 노인장기요양 등)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대비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이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과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고민해야한다. 특히 주민들이 스스로 건강해지기 위해 펼치는 활동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 또한 병에 걸리면 치료를 하는 것에 앞서 예방의학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다. 시민들의 건강주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존엄한 권리이다’

지난 10일 창립한 한국의료생협연합회 창립 취지문의 첫 문장이다. 한국의료생협연합회는 2003년 6월 출범한 한국의료생협연대를 해산하고 새롭게 창립한 단체다.

1994년 4월 안성의료생협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창립한 후 의료생협이 7곳으로 늘어나자, 이 의료생협들은 함께 2003년 6월 ‘건강마을 만들기! 이제는 전국으로’라는 기치를 들고 한국의료생협연대를 창립했다. 한국의료생협연합은 의료생협연대의 활동 성과와 과제를 계승, 발전시키는 조직으로 현재 준비위를 포함해 16곳의 의료생협이 속해 있다.

한국사회는 점점 양극화되고 시민들의 건강권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 고령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치료시기를 놓쳐 암·심혈관질환·만성호흡기질환 등 만성질환을 치료받지 못하는 인구는 늘어만 가고 있다. 때늦은 치료는 보건의료 비용을 늘려 사회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아울러 국민들의 상당수는 건강에 신경쓰지 못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병원 문턱은 더욱 높아지고, 사회적 약자들은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생명을 담당하는 의료기관도 비용 지불 능력에 따라 치료를 하고 돈 되는 의료서비스만 하고 있다.

건강한 마을 만들기, 국가정책 전환 이끌 수도

한국의료생협연합회는 창립하면서 “더 이상 자본과 소유의 가치관에 묶여,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야만적인 물질주의 사회와 의료복지체계에 우리의 건강을 맡길 수 없다”며 “의료인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시민들의 건강할 권리를 확대해나가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형 의료생협이 전국 자치구마다 만들어지도록 확산 ▲주치의 사업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 운영과 재가간병 서비스, 요양원 확산 등 고령사회에 대비한 의료복지체계 구축 ▲시민단체, 지자체, 보건소, 의료원 등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해 건강한 마을 만들기를 위한 협력 강화 ▲주민참여형 건강마을 만들기 사업모델 개발과 연구·교육·홍보·정책 활동 강화 ▲의료인들이 의료생협에 적극 참여하도록 비전 제시와 네트워크 강화 등 과제를 제시했다.

한국의료생협연합회가 창립 취지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역을 건강한 마을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주민 스스로가 건강해지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의료인 등 전문가의 도움과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이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협동과 공동체에 근거한 협동조합 활동이 적합할 수 있다. 인천평화의료생협의 경우 출자금 1구좌(=1만원)를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출자한 조합원 가족 모두가 조합원 자격으로 동등하게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의료생협도 외형 확장, 재정 고민과 함께 지역주민들을 기반으로 해서 지역 시민단체나 지자체 등과 다양한 활동을 펼쳐야한다. 지자체도 고령사회와 건강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에서 건강 마을 만들기 활동을 펼쳐왔던 의료생협과 함께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중앙정부는 현재의 의료와 노인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령사회를 대비한 대안들을 내놔야한다.

건강한 마을 만들기는 건강한 삶을 위한 시민들의 의지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료생협을 통한 협동조합 활동, 지방의료원과 보건소 등을 통한 지자체와의 협력 등, 삼박자가 잘 굴러가야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마을 만들기는 또한 국가의 의료정책이나 복지·노인정책을 바꾸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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